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만만찮은 파괴력을 보일 것으로 관측되는 빅이슈가 있다. 한 때 모든 이슈들을 집어삼켰던 천안함 침몰사고와 수도권 선거전을 뒤흔들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의 무죄판결이다. 천안함 사태는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보다 기세가 줄기는 했지만 사고 원인이 밝혀지고 그에 따른 대응이 있을 때까지 여전히 살아있는 이슈다. 한 전 총리의 경우 수뢰 의혹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그가 출마할 서울시장 선거를 기점으로 수도권 선거에 적잖은 파급효과가 예상되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은 이 두 이슈가 결합 혹은 충돌하면서 생긴 여파가 6월 지방선거의 중심부를 강타할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천안함 사고 수습 과정 공개…‘한명숙 잡아라’
야권 단 하나의 카드 된 한명숙, 본선서 격침?
수많은 이슈들이 6월 지방선거로의 영향력을 잠재하고 있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와 한명숙 전 총리의 무죄판결만큼 큰 효과를 낼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공통된 견해다.
천안함 사태와 한 전 총리의 재판결과는 일단 여권에는 악재, 야권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천안함 사태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군과 정부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고 이는 지방선거를 통해 정권심판론으로 불붙을 수 있다.
한 전 총리의 재판 결과는 보다 직접적으로 지방선거를 겨냥하고 있다. 법원이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핵심 쟁점이었던 ‘5만 달러 수수’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판결은 한 전 총리의 목소리에 힘을 실은 반면 검찰에는 무리한 기소 혹은 ‘표적수사’ ‘기획사정’에 대한 비판을 가하게 된 것.
몰아치는 후폭풍
지방선거 향해 분다
또한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 선거에 직접 출마한다는 것도 ‘한명숙 효과’의 불씨를 키우는 요소다. 지방선거의 경우 영남은 한나라당이 호남은 민주당이 쥐고 있고 충청권은 자유선진당과 민주당 등 이미 어느 정도 강세지역이 정해져 있다. 때문에 지방선거 결과는 수도권의 선거 결과가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3곳 중 2곳 이상의 승리를 거둔 곳이 승기를 잡았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 중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긴다는 것은 그 정치적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거니와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등 다른 수도권 선거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역대 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의 향배는 경기도, 인천 선거에까지 도미노 효과를 일으켰었다.
즉, ‘한명숙 효과’를 타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기를 잡으면 작게는 수도권 3곳의 선거에, 크게는 지방선거 전체에 후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무죄판결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 전 총리의 지지율은 10% 가량 치솟아 현역인 오세훈 서울시장을 위협했다. 오 시장의 지지율이 상당기간 정체돼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이 같은 상승세는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한명숙 효과’의 상승여력도 충분하다. 한 전 총리의 무죄판결로 서울시장 야권 후보단일화에 속도가 붙은 것. 이번 지방선거가 한나라당 후보 대 단일화후보의 구도로 치러지는 만큼 야권 후보들과 단일화에 성공하면 ‘한명숙 효과’의 기세를 끌어올릴 수 있다.
검찰의 별건수사는 이제 막 무죄판결을 받은 한 전 총리에게는 ‘독’이라기보다는 ‘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획수사 비판을 받았던 재판이 결과를 내기 무섭게 새로 시작된 수사는 정권이 한 전 총리를 겨냥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탄압 받고 있다는 ‘피해자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갈 수 있게 하는 데 주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명숙 효과’는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만나면 폭발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 지방선거를 열흘 앞 둔 시점에 치러지는 노 전 대통령의 1주기를 위해 전국적으로 추모행사가 예정돼 있다는 것. 노 전 대통령의 1주기가 대표적인 친노 인사 중 한명인 한 전 총리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 전 총리와 민주당은 이러한 분석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 전 총리의 재판 후폭풍이 어느 방향으로 불지 몰랐던 이전과는 달리 무죄판결이 ‘순풍’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 전 총리는 지난 12일 민주당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제 정치검찰의 법정에 서지 않고 국민의 법정에 서겠다”는 말로 사실상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했다.
또한 검찰의 추가 수사에 대해서는 “사악하고 치졸한 권력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다시 ‘한명숙 죽이기’를 시작하고 있다”며 “이렇게 끝까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분명한 선거개입으로 50일 남은 선거기간 동안 발목을 잡겠다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한 전 총리를 전략공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한 전 총리 외에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이들의 동의를 얻어 한 전 총리를 바로 야권 후보단일화 테이블로 보낸다는 것.
무죄 받은 한명숙
노풍+한풍으로 진격
민주당 지방선거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민석 최고위원은 “한 전 총리의 출마의사가 확고하고 또 경선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도 사실은 결과가 비교적 많이 예측되는 상황아니겠냐”며 “그래서 당에서는 최근에 다른 예비후보들의 양해가 일정하게 이루어진다면 전략공천을 해서 신속하게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전략공천을 시사했다.
김 최고위원은 또 “다른 야당이나 시민단체 쪽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빨리 결정된다면 함께 뜻을 모아볼 생각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빨리 정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명숙 효과’가 지방선거의 심장부를 겨눌 것으로 보이자 여권과 야권 일각에서는 한명숙 효과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 전 총리가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이미 도덕성이 흠집이 났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조해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혐의가 있어도 명백한 물적 증거가 없으면 입증하기 어려운 뇌물죄 재판의 특징이 이번 판결에서도 그대로 재연된 것 같다”며 “그렇지만 판결의 결론과는 달리 이번 사건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한 전 총리의 부도덕한 실체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도 논평을 통해 “한 전 총리의 도덕성 시비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며 “국민일보와 GH코리아가 최근 실시한 한 전 총리의 무죄판결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검찰의 잘못된 표적수사 결과로 사필귀정’이란 의견(43.8%)과 ‘증거가 부족할 뿐이지 한 전 총리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41.2%)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박현하 선진당 부대변인은 “이 결과는 한 전 총리가 사법부의 잣대를 용케 뛰어넘었는지는 모르지만, 국민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는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 같은 비판들은 ‘한명숙 효과’를 잠재울 만한 효과적인 맞바람은 되지 못하고 있다. ‘한명숙 효과’를 잡기 위해서는 천안함 사태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한 전 총리의 무죄판결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이 이슈는 사고의 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되고 후속조치들이 따를 때까지 팔딱팔딱 숨 쉬는 활어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천안함 사태로 군과 정부여당이 공격당하고 있지만 바람이 멈출 곳은 예측하기 어려운 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북한의 관련 여부가 사실로 드러나면 역풍으로 불수도 있다. 따라서 바람의 방향만 잘 잡으면 여권을 향해 불던 북풍을 민주진영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게 정가 일부 인사들의 주장이다.
천안함 관련 북 개입설
보수진영 ‘보복론’ 부글부글
특히 북한이 이번 사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금강산 관광지구내 남측의 부동산을 동결하는 등 남북관계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도 북풍의 몸집을 키우게 하고 있다.
천안함 사태의 해결 과정에 숨은 청와대의 속내도 북풍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천안함 침몰의 진상조사를 위한 민·군합동조사단을 꾸렸다. 또한 이 조사단에 국제 전문가를 포함, 사실상 다국적 진상조사단이 마련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가 한 인사는 “청와대가 군 기밀 유출을 우려하면서도 국제전문가를 포함시킨 데는 한반도 문제의 이해관계자인 중국과 미국의 움직임을 막겠다는 것과 침몰의 원인이 외부의 공격일 경우 유엔안보리에 제소하는 등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통해 효과적으로 제재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또 “천안함이 외부 공격으로 침몰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만일 이번 사태가 북한의 도발로 밝혀지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기세를 송두리 채 뽑아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천안함 사태가 ‘한명숙 효과’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명숙 효과’를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야권 중심으로 재편되던 지방선거판은 재편될 여지가 있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한 전 총리가 민주당의 ‘유일한 카드’라는 점은 치명타를 안겨줄 약점이 될 공산이 크다.
야권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경우 오세훈 서울시장과 원희룡·나경원·김충환 의원이 경선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경선을 통해 경쟁력을 겨누는 한편 본선의 예비전을 치루고 있는 것”이라며 “만약의 경우 후보가 제2, 제3의 후보가 될 수 있다. 반면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에 뜻을 두고 있는 이들이 있음에도 한 전 총리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서울시장 경선에 나선 이들은 후보를 단련시켜 줄 뿐 아니라 경선 흥행을 통해 후보의 인지도를 키우는데 한몫한다. 하지만 민주당의 경우 사실상 경선이 없거나 형식적인 것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 전 총리도 정책적으로 훈련받아야 한다. 한 전 총리가 본선에서 넘어지면 다음 ‘대안’는 누굴 세워야 하나”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