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표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호흡 조절에 들어갔다. 여권에 각종 악재들이 쏟아지면서 박 전 대표의 지원유세를 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지원 여부와 그 수위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 것. 지방선거와 관련된 발언 자체를 아끼는 모습에 정치권에서는 그의 지원유세가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당 중진이자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라는 가볍지 않은 위치 등으로 인해 소극적이나마 지원유세가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지방선거 속 박 전 대표의 역할과 그 속내를 따라가 봤다.
친이계 지방선거 유세 요청 묵묵부답 박근혜
선거 시작과 동시에 안팎서 압박 더 강해져
지방선거가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한나라당의 구애가 애타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표심을 갈구하는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유세를 청하는 당 지도부의 ‘러브콜’이다.
박 전 대표가 6월 지방선거에서 ‘빅카드’가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최근 잇따라 불거진 각종 설화와 사건들이 여권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명숙 전 총리의 무죄판결이 더해져 지방선거에서 여권의 악전고투가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살릴 수 있는 이로 박 전 대표가 주목받고 있는 것.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는 박 전 대표는 각종 선거에서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당은 이러한 능력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다시 재현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 지방선거가 가까워오면서 박 전 대표를 향한 당 지도부의 러브콜 수위도 점차 올라가고 있다.
백만대군 파워
‘선거의 여왕’ 모셔라
정병국 사무총장은 “당의 입장이나 선거를 담당하고 있는 내 입장에선 박 전 대표와 같은 분이 전면에서 도와준다고 한다면 백만대군을 얻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며 지방선거에서 박 전 대표의 지원을 기대했다.
정 사무총장은 아예 “박 전 대표가 이번 지방선거의 일선에서 도와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주시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직접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당 지방선거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두언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지방선거 지원을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며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가 위기에서 구한 당이고, 박 전 대표의 당이기도 하다. 남의 당이 아니지 않는가”라며 박 전 대표의 지원을 압박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박 전 대표가 움직일 기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최근 지방선거 지원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난번에 다 말했다”며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시켰다. ‘선거는 지도부 중심으로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격인 유정복 의원은 “천안함 사고, 세종시 문제 등 각종 현안들로 정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박 전 대표의 선거지원 여부는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지방선거 지원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다. “박 전 대표는 다음 대선에서 유력한 주자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남의 일 하듯이 하겠는가”라는 정 의원의 말처럼 당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비록 친이계가 당권을 잡고 있기는 하지만 박 전 대표 또한 당의 중진이자 유력 차기 대권주자다. 때문에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패했을 경우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당 내 중진이자 차기 대권주자로서 지방선거에 어느 정도 책임은 당연하다”며 “지방선거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차라리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방선거 참여 여부와 그 결과에 따라 탈박현상이 가속화되거나 ‘선거의 여왕’이라는 그의 입지마저 흔들릴 여지가 있다”며 “벼락이 치면 주변에서 가장 높이 솟은 나무가 맞는다. 최악의 경우 지방선거의 책임이 그를 향할 수 있지 않겠냐”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지방선거 결과와 그로 인한 파장을 확신할 수 없는 만큼 친박계 내부에서도 박 전 대표의 지방선거 지원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를 지원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몇몇 인사들은 박 전 대표에게 지원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시 정국으로 약해진 세를 회복하고 ‘선거의 여왕’이라 불린 박 전 대표의 위력을 재확인시킬 필요성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옆구리 찌르는 친박
“세가 많이 약해졌는데…”
이번 지방선거가 현 정부이자 현 정권의 중간평가장인 동시에 박 전 대표가 자기 사람을 심고 대권을 준비하는 ‘대선 예비전’의 성격까지 지녔다는 것도 ‘이번에는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은 “지방선거 지원 여부에 대해 박 전 대표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는 말로 정치권의 수많은 관측을 일축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조차 박 전 대표의 지방선거 지원을 바라지 않는 이들에게는 박 전 대표가 선거에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박 전 대표의 지방선거 지원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박 전 대표가 선거 지원에 여지를 둔 것으로 풀이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정가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지방선거에서 ‘소극적 지원’에 나설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몇 가지 조건이 선행되고 지원 범위도 한정되겠지만 지방선거 참여를 하는 편이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친이계와 정면충돌이 일어날 수 있었던 몇몇 광역시도단체장 선거에서 친박계가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한 것 자체가 ‘소극적 지원’일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당초 친박 인사들의 연이은 불출마 선언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 전 대표의 부담감을 줄이고 친이계가 박 전 대표에게 지원유세를 요청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부분열을 일으키느니 친박계 인사들의 출마를 단념시켰다는 분석이 이보다 앞섰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지원유세에 나서기 위해서는 세종시 원안 처리가 먼저일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 이성헌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국민에게 공약한 약속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을 때 본인이 나설 수 있지, 공약은 해놓고 나중에 ‘그때 표 얻기 위해 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곤란하다”는 말로 ‘세종시’를 거론했다.
또한 광역시도단체장 선거는 철저하게 당 지도부의 책임 하에 치르고 자신은 일부 지역 혹은 ‘풀뿌리’를 겨냥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친박계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에서 ‘알짜 지역’ 공심위원장을 차지한 바 있다. 숫자는 친이계와 비슷하지만 기초단체장과 시도의원 자리가 많은 수도권과 영남에 친박계 인사가 공심위원장이 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 친박계에 우호적인 인사를 공심위원장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여 놓은 것.
당권 향한 독 품고
지방선거 지원 나선다?
다가올 대선을 고려, 지방선거를 통해 하부조직 관리에 들어가는 동시에 지방선거에 대한 책임 문제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를 점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지방선거 지원을 결정할 경우 양발이건 한발이건 ‘책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만큼 또 다른 복심이 숨어있을 수 있다. ‘반격’ 카드다.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경우 친박계가 시도단체장 못지않은 알짜자리를 점하게 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졌을 때도 현 정권이 급격한 권력이탈 현상을 겪는 것과는 달리 박 전 대표는 반격의 기회를 잡게 된다. 지방선거 이후로 잡힌 전당대회가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거나 친박 인사, 친박계에 호의적인 중립성향의 인사까지 다양한 카드를 제시, 당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친이계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 “서울시장 선거 등 주요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선거 후 곧바로 당권이 친박계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 정권이 야권의 공격을 받는 동안 숨죽였던 박 전 대표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현재권력의 힘이 약해질 시점이 정해지겠지만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현재권력이 미래권력으로 바뀐다는 점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박 전 대표는 조용히 내실을 기하며 이 ‘때’를 기다려 온 것.
정가 한 인사는 “차기 대선까지 긴 호흡을 하고 있는 박 전 대표가 갑작스럽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방선거와 전당대회는 그가 대권을 향한 숨고르기를 하는 중요한 길목에 있다”며 “멀리 봤을 때 박 전 대표는 친이계 중심으로 짜여있는 당내 구조를 ‘박근혜 표’로 돌리기 위한 행보를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