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단체 등 불교계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 봉은사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과 봉은사의 장외토론은 진행 중에 있지만 다시 불거진 ‘외압설’이 다시 한 번 갈등의 불씨에 불을 당긴 것. 명진스님은 청와대가 봉은사 사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막으려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현 정권이 총무원과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과 동국대 약대 신설을 맞바꾸는 빅딜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봉은사 사태의 파장을 더하고 있다.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논란…불교계·정치권·청와대 3파전
청와대 봉은사 기자회견 막으려 회유·협박에 빅딜 의혹까지
봉은사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외압설을 시작으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과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등 현 정권 인사들의 친밀한 관계가 거론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청와대의 외압과 청와대와 총무원간의 빅딜설이 봉은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잠깐의 숨고르기가 끝나면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새로운 의혹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셈이다.
한동안 봉은사 사태와 관련한 발언을 자제했던 명진 스님은 지난 11일 봉은사 일요법회를 통해 새로운 내용을 폭로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봉은사 외압 폭로 기자회견을 하려는 김영국 거사를 회유하려했으며 이것이 통하지 않자 협박과 욕설을 했다는 것이다.
한숨 쉬고 나면 ‘또’ 의혹
명진 스님은 “김 위원이 (안 원내대표의 ‘좌파 주지’ 발언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기 전 날 대통령 직속기구 인사와 만났다. 그 자리에서 김 위원은 이 수석과 통화하며 기자회견을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으나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이 수석이 전화기에 대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했다”고 주장했다.
명진 스님의 주장으로 ‘욕설 파문’에 휩싸인 이 수석은 고소장을 내미는 것으로 이 같은 주장을 일축하고 나섰다. “김영국씨와는 면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직접 통화한 사실도 없다”고 반박한데 이어 명진 스님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기로 한 것.
이 수석은 고소장에서 “나는 김영국씨와 면식이 없고 전화통화를 한 사실도 없다”며 “이번 고소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가려 개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지 명진 스님이나 불교계와 대립하려는 의도로 진행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은사를 둘러싼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동철 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정부여당이 동국대 약대 신설과 불교계 예산 지원을 조건으로 명진 스님 등 ‘좌파 스님’을 척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른바 ‘빅딜설’이다.
김 의원은 “안 원내대표의 봉은사 외압 사건은 동국대 약대 신설과 맞바꾼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 사건”이라며 “이 문제의 본질은 문화재 관리와 보존을 위해 당연히 지원해야할 정부가 지원금을 내세워 불교계를 농락한 것이고, 이명박 정부와 조계종 총무원장이 야합해 직권을 남용한 권력형 비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국대 약대 신설 승인 과정을 거론하며 “자승 총무원장은 동국대가 로스쿨 유치 실패 이후 약대 신설을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던 지난해 11월2일 예방 온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불교계 현안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원만하게 일이 처리되도록 노력하겠다. 원장스님께서 걱정 안 하시도록 하겠다’는 말을 들었고, 12월15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배석자 없이 15분간 독대하며 동국대 약대 유치를 부탁했다”고 구체적인 ‘과정’을 제시했다.
그는 이어 “이 대통령과의 독대 9일 후 총무원장은 박 수석과 충청지역 주요 사찰 주지들을 모아 세종시 홍보에 나선다. 또 1월19일 총무원장을 예방한 진동섭 청와대 교육과학수석으로부터는 ‘잘 살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며 “그리고 나서 며칠 후 임기 중 불과 3개월도 안 지난 총무원장이 ‘약대 유치 못하면 사표 낼 각오’라는 발언을 한다. 이미 사실상 내락을 받았다는 뜻 아닌가. 실제로 한 달 후 약대신설이 확정됐으며, 그 뒤 15일 만에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불교계 내부 문제 넘어서
김 의원은 “이번에 하도 불교계가 소위 한나라당과 정부가 말하는 소위 좌파 스님들이 세종시, 4대강 등 사사건건 정부정책에 반대하니 청와대가 나서서 교과부에 동국대 약대 신설을 승인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대신 그 대가로 정부정책이 비판적인 스님들을 내쫓아 불교계를 친정부 성향으로 바꾸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조계종과 동국대를 모독하는 것으로 불교 전체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도전”이라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이번 의혹 제기로 봉은사 사태는 정치적 해결이 불가피하다는 게 각계의 반응이다. 명진 스님과 이 수석의 대립각과 김 의원의 주장으로 봉은사와 총무원 뿐 아니라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모두 사안의 중심에 얽혔기 때문이다.
또한 봉은사가 18일 일요법회를 통해 봉은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 데다 봉은사와 총무원의 토론회가 이달 중순 이후 마련될 것으로 보여 이달 내내 봉은사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명진 스님의 계속된 주장이 11월까지로 보장된 현 임기와 재임을 위한 포석이 아니겠냐”며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 문제 뿐 아니라 명진 스님의 임기에 대한 문제가 봉은사 사태가 마무리될 시기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