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①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

2014.12.01 10:16:18 호수 0호

6000원도 없다면서 회장님 행세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무려 40조원에 달했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첫 회는 40억3400만원을 체납한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이다.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이하 나승렬)은 2004년 6월부터 취득세 등 23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수할 체납액은 40억3400만원이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나승렬은 1999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26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둬갈 세금은 38억4600만원이다. 그러나 나승렬은 "돈이 없다"며 10년 넘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버티는 이유는?

기자는 최근 세무당국 관계자를 만나 "나승렬이 서울 한남동 개발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세금 한 푼 내기 힘든 60대 체납범은 어떻게 '회장님'으로 불리고 있을까.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건설현장을 찾았다. 시공사 현대산업개발은 지하 7층, 지상 18층 규모의 대형 주상복합건물을 짓고 있었다. 모두 280세대가 입주하게 될 한남동 IPARK 공사의 발주처는 '만강건설PFV'였다. 만강건설PFV는 나승렬의 친척인 김모씨(1966년생)가 대표로 있는 자본금 50억원의 건설회사다.

김씨는 나승렬 일가가 매입 후 되판 제빵업체 기린의 사외이사, 강원도 횡성에서 생수를 만들었던 운무원(거평식품)의 대표이사, 여행레저 업체인 (주)프레야씨에스의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이들 회사는 모두 나승렬 일가의 지배구조 아래 있었다.


또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올 9월까지 학교법인 만강학원의 이사장을 지냈다. 만강학원은 2014년도 예산총액이 327억여원에 달하는 나승렬 일가의 사유재산이다. 나승렬이 1994년 이사장이 됐고, 아내인 박문자씨가 이사장직을 넘겨받아 장남 나영돈씨에게 물려줬다. 김씨는 영돈씨 다음으로 이사장에 취임했다.

서울시가 발간한 관보에 따르면 김씨는 만강학원 이사장이던 2014년 4월 외국인 마크로버트 마두라스와 공동으로 만강건설PFV를 설립했다. 만강건설PFV는 미국계 헤지펀드로부터 2100만달러(한화 233억원)를 차입해 개발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만강건설PFV로 등록된 주소지에는 사무실이 없었다. 그곳에선 IPARK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자는 수소문 끝에 김씨와 통화했다. 김씨는 "나승렬 회장님을 가끔씩 뵙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승렬이 경영에 참여하는 건 아니라고 부인했다. "가끔씩 조언만 해 준다"고 했다. 또 그는 자신이 "월급쟁이"라면서 "개발 사업을 이끄는 건 회장님의 아들인 영돈씨"라고 말했다. 또 "현재 회장님은 막내딸(나현정) 집에 살고 있다"고 확인했다.

나승렬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동광로에 있는 초고급 아파트에 거주 중이다. 70평형으로 나현정씨가 매입했을 당시 감정가는 25억원이었다. 나승렬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한남동의 한 사무실이다. 징수를 피하기 위해 그곳에 침대를 갖다 놓고, 조사관이 들이닥치면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 주민세를 내라고 하면 "거지라서 6000원도 없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 담당 조사관은 지난 10월21일 "딸 명의로 된 집에 거주하는 것을 CCTV로 확인했지만 나승렬이 '딸 집에 놀러온 것'이라고 부인해 징수에 애를 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취재 결과 문제의 아파트는 지난 8월 법원 경매에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채권자는 솔로몬저축은행의 파산관재인인 예금보험공사였다.

기자는 현정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자택을 찾았지만 아파트 경비업체에 제지당했다. 연락처를 남겼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현정씨는 최근까지 만강학원 이사진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시 40억·국세청 38억 10년째 체납
'땅부자' 직계·친인척은 여전히 재벌급

앞서 감사원은 지난해 1월 만강학원이 소유하고 있는 대구 달성군 소재 D공고의 학교 이전 추진 과정에서 이사장이었던 영돈씨 등이 업무상 배임을 저지른 정황을 포착해 관할 교육청에 통보했다. 대구시교육청 사학담당 관계자는 "감사원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영돈씨 등을 검찰에 고발했으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와 교육청의 설명을 종합하면 영돈씨는 학교 이전 예정부지 약 1만여평을 22억4000만원에 계약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학교위치 변경 승인 전에는 재단명의로 학교이전 예정 부지를 취득할 수 없다"고 고지했다.

이 같은 과정을 미리 예측했던 영돈씨는 만강학원과 특수 관계인 소원기업(구 만강개발)에 부지를 매입하도록 했다. 소원기업은 34억9000만원에 해당 부지와 인근 토지를 사들였다. 이후 만강학원은 소원기업의 부지에 대한 감정평가를 시행했다. 토지 감정가(146억여원)는 학교용지란 이유로 100억원 넘게 부풀려졌다. 감사원의 조사 결과 이전 부지의 적정 시가는 12억47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만강학원은 소원기업의 토지를 75억원이나 주고 매입했다. 교육청은 "만강학원이 38억여원이나 비싸게 준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처분이 까다로운 사학재단의 돈을 빼돌려 관계사를 통해 자금을 세탁한 것이다. 소원기업의 대표는 거평그룹 기획조정실을 거쳐 기린의 비상근 이사가 된 우모씨(1961년생)였다. 당시 우씨는 나승렬 일가가 세운 부동산 관리업체 (주)용인에코벨리의 대표이사도 겸했다.

그런데 (주)용인에코벨리, 소원기업, 만강건설PFV는 얼마 전까지 같은 전화번호를 쓰고 있었다. 한때 소원기업의 주소지로 등록됐던 서울 서초구 소재 고급 비즈니스센터를 찾아갔지만 "그런 회사는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우씨는 영돈씨가 물러난 후 만강학원 이사진에 이름을 올렸다. 교육청은 "재단 소유주의 친인척이나 관계인이 이사가 돼도 이를 제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승렬의 부인인 박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유명 아트홀에서 전통 국악공연을 선보였다. 박씨는 자리를 메운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38세금징수과는 "박씨가 체납한 세금이 있다"고 말했다. 2012년 2월 나승렬은 D공고의 마이스터 고등학교 유치 기념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는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과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이 함께했다.

같은 해 장녀 나윤주씨는 고가의 사치품을 구매했던 것으로 의심됐다. 나승렬의 손녀는 외국인학교에 부정입학했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죄 없는 아이를 볼모로 서류를 조작한 것이다.

D공고의 학교 이전 예정일은 내년 3월1일이다. 만강학원은 학교 이전이 완료되면 남은 후적지에 아파트를 세운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만강건설PFV가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씨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사장님(영돈씨)이 30%, 사모님이 35%, 자매가 5%씩 지분을 갖고 있다. 나는 지분이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김씨를 통해 영돈씨 등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끝내 거절당했다.

가족은 잘 산다

나승렬은 거평그룹 부도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같은 수법으로 거액의 차명재산을 빼돌렸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나승렬 일가 및 측근들은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수십·수백원대 주식·부동산 부자로 등극했다. 거평그룹을 믿었던 임차인, 협력업체 직원들만 피눈물을 뿌렸다. 하지만 세무당국 관계자는 "남편이 세금을 체납했다고 해서 배우자의 재산을 강제로 징세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은 없다"고 답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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