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사기도박꾼’ 천태만상 실태

2010.04.06 10:28:21 호수 0호

‘몰카’ 한 대면 상대방 패 ‘훤히’

사기도박 장비들이 나날이 진화하는 가운데 도박꾼들을 등치는 타짜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최근에는 도박판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상대방의 패를 알아내는 방식으로 수백 회에 걸쳐 4억 원의 돈을 뜯어낸 타짜가 덜미를 잡혔다. 카메라와 무전기만 있으면 속이지 못할 도박꾼은 없었던 것이다. 어디서나 손쉽게 사기도박용품을 구할 수 있는 현실은 더 많은 사기도박 피해자들을 낳고 있는 실정이다.

몰래카메라 설치한 도박장에서 판돈 4억 갈취한 일당
손쉽게 구하는 사기도박용품에 너도나도 ‘타짜’ 열풍


사기도박으로 돈을 벌 계획을 짠 강모(31)씨는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도박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장모(36)씨 등 함께 범행을 도모할 사람들을 모은 강씨는 경남 진주시 봉곡동의 한 원룸을 도박판으로 꾸몄다.
강씨가 만든 도박장은 여느 도박장과는 차이가 있었다. 천정 모서리 등 곳곳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것. 이는 카드를 할 때 상대방의 패를 다른 방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든 장치였다. 카메라를 통해 본 상대의 패를 몰래 알려주는데 사용할 무전기도 구했다.

원룸 안에 ‘몰카’



그 후 도박꾼들을 모집한 강씨는 속칭 ‘바둑이’라는 카드 도박판을 벌였다. 일당의 역할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한쪽은 도박장 밖에서 몰래카메라를 통해 찍힌 장면을 모니터로 본 뒤 상대방의 패를 전송했고 다른 한쪽은 도박장 안에서 무전기로 받은 패를 이용해 도박을 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첨단 기기로 무장한 강씨 일당에게 대적할 사람은 없었고 매번 승리는 강씨 일당에게 돌아갔다. 지난 1월22일 벌어진 도박판에서 강씨 일당이 벌어들인 돈은 무려 1억2000만원. 이런 식으로 강씨 일당은 수백 회에 걸쳐 도박판을 열어 4억5800만원의 부당이득을 남겼다.

하지만 이들의 행각은 금세 꼬리를 잡혔다. 경남 진주 경찰서는 지난달 29일 강씨 등 5명에 대해 상습도박 및 사기 등 혐의로 구속 하고 도박에 가담한 장씨 등 10명에 대해서도 상습도박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도박 빚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박가담자를 상대로 폭행과 협박을 일삼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7000만원 상당의 전세계약서를 빼앗긴 피해자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에서 보듯 사기도박으로 인한 피해자는 급격히 늘어나는 양상이다. 최근에는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사기도박으로 돈을 벌다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충북도내 모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박모(40)씨는 고교동창생 김모(39)씨와 짜고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사기도박판을 벌였다. 이들은 충북 보은 지역 모텔과 식당 일대를 돌며 11차례에 걸쳐 도박판을 벌여 1억2000만원을 뜯어냈다.

박씨가 사기도박에 이용한 도구는 형광물질로 숫자가 뒷면에 표시된 화투와 이를 인식할 수 있는 특수 렌즈였다. 하지만 이들의 행각은 거액의 돈을 잃은 피해자들이 사기도박 전문가들과 함께 도박장에 나타나면서 덜미를 잡혔다.

이처럼 최근 ‘타짜’들은 별다른 기술 없이 도구 하나로 사기도박을 벌이고 있다. 한때 사기도박으로 큰돈을 벌어봤다는 A씨는 최첨단 사기용품만 있다면 손놀림이 어설프더라도 사기도박을 하는데 무리는 없다고 말한다. A씨는 “교묘한 사기도박 도구가 계속해서 쏟아지는 탓에 사기도박의 유혹을 받는 이들도 느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처음 A씨가 사기도박계에 발을 들였을 때 접한 도구는 ‘표시목 카드’라 불리는 용품이였다. 카드 뒷면에 타짜들만 읽을 수 있는 특별한 표시를 작게 인쇄해 상대방의 패를 읽을 수 있도록 한 용품이다. 처음 카드가 개발됐을 당시만 해도 A씨는 쏠쏠한 재미를 봤다. 하지만 이 카드가 사기도박꾼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도박꾼들에게 카드의 정체가 알려졌고 더 이상 사기도박을 하는 것은 무리였다고.

이에 A씨는 좀 더 교묘한 사기도박용품을 찾았다. 그것은 일명 ‘렌즈카드’. 뒷면에 특수 형광안료로 무늬와 숫자를 표시해 놓은 카드다. 물론 이 표시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특정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사람만이 카드 뒷면에 인쇄된 표시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진 용품이기 때문이다.

그 후 A씨가 알게 된 용품은 ‘카메라 카드’다. 적외선 카메라 필터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특수염료로 카드 뒷면에 무늬와 숫자를 표시해 놓은 카드다. 이 카드를 쓰려면 좀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도박장에 미리 들어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CCTV를 설치해야 하는 것. 이 CCTV를 통해 상대방의 카드 뒷면에 표시된 무늬와 숫자를 확인한 뒤 무전기를 이용해 같은 팀원에게 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첨단 용품으로 무장한 A씨에게 패배는 없었다. 천하의 도박 고수들도 A씨의 눈앞에서는 패를 다 펼쳐놓고 도박을 하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백전백승일 수밖에 없었던 것.

판치는 사기도박도구

하지만 빠른 시간 내에 돈을 번 만큼 바닥에서 머무는 시간은 짧을 수 밖에 없었다. 도박꾼들 사이에서 사기도박꾼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A씨에게 돈을 잃은 도박꾼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며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도박계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한 경찰관계자는 사기도박용품들이 쉽게 유통되고 있어 피해자들이 늘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인터넷에서도 버젓이 사기도박 도구들을 판매하고 있어 단속의 손길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사기도박과 관련된 특정 단어만 치면 얼마든지 관련 용품 판매자와 연결이 되고 있었다. 한 전문가는 “최근 사기도박판에서는 첨단 장비의 각축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라며 “도박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피해를 보고도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 숨겨진 피해규모는 더욱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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