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국회의원들이 대거 지방선거에 뛰어들고 있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등 여야 거물급 인사들도 눈독을 들이는 ‘금싸라기 땅’은 물론 광역단체장 후보 명단에 속속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 게다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으로 눈높이를 낮춘 이들도 적지 않다. 재선, 3선 등 과거 국회 내에서 중진으로 불렸던 이들이지만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이 고르고 고른 지자체는 정가에서도 ‘알토란’으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기 때문이다.
전직 살려 지자체서 정책 활용하고, 행정 배우고
총선 전 텃밭 가꾸기…지역 돌며 ‘눈도장’ 제대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계가 출마를 위한 준비운동에 들어갔다. 현역 지자체장과 국회의원들은 물론 시·구 의원들과 공공기관장, 보좌관, 청와대 인사들까지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미 2년여 간 절치부심했던 전직 의원들의 ‘독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난 2일 6월 지방선거 시도지사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됐다. 접수 첫날 등록을 마친 이는 서울과 부산 등 14개 시도에 37명이었다. 그리고 이 가운데 12명이 전직 국회의원으로 나타나 이번 선거에서 전직 의원들의 출마 돌풍을 짐작케 했다.
이날만을 기다렸다!
정치권은 국회의원 당선 경력이 있는 ‘검증된 인재’들의 출격에 흥미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에 임하는 전직 의원들의 마음은 ‘비장’ 그 자체라는 게 측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전직 의원들은 한때 금배지를 달고 국회를 종횡무진했지만 낙선 후 처지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을 몸소 느껴야 했다는 것이다.
재기에 성공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나름대로 지역에 영향력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금배지가 떨어지자 찾아오는 이도, 전화를 하는 이도 확연히 줄더라”라며 당시의 서러움을 삼켰다. 그는 “정말 힘든 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의정 활동과 민원 해결 등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일들에서 손을 놔야 했다는 게 가장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총선을 치루고 다음 총선을 치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4년. 2년여 동안 지역구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지방선거는 좋은 기회다. 지역을 위한 정책 추진 등에서 의원 시절 경험을 살릴 수 있을뿐더러 합법적으로 민심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경기도지사의 경우 시정·도정 활동이 수도권 민심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향후 정치행보에 도움이 되는 바가 크다. 때문에 일찌감치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던진 이들 중에는 전직 의원들이 적지 않다.
민주당 이계안 전 의원은 지난 2일 선거관리위원회에 서울시장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후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서울 구석구석 2010km를 걸으며 각계각층 시민들의 소리를 직접 들었다”면서 “오랜 기간을 경제현장을 지켜온 전문가로서 경험과 정치적 식견을 살려 당면 과제인 일자리 창출과 서민생활안정을 제일 우선으로 하는 시정을 펼쳐 중산층과 서민에게 희망을 주는 서울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진보신당 대표를 맡고 있는 노회찬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했다. 같은 당 심상정 전 의원은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사표를 던져 쌍두마차를 가동했다. 인천시장에는 민주당에서만 김교흥·문병호·유필우·이기문 등 전직 의원 4명이 첫날 도전장을 냈다.
세종시 정국으로 어수선한 충청도에도 많은 전직 의원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한나라당 홍문표·김학원·전용학 전 의원 충남도사에 도전 의사를 보이고 있는 것. 대전시장에는 민주당 김원웅·선병렬 전 의원과 자유선진당 염홍철 전 시장이 눈도장을 찍었다.
각 정당의 텃밭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은 경북지사 후보로 거론된다. 전북지사에는 민주당 정균환 전 의원이 예비후보로 접수를 마쳤고 광주시장에는 민주당 양형일·정동채 전 의원이 자웅을 가릴 예정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눈높이를 대폭 낮춘 이들도 적지 않다. 단체장을 역임한 후 금배지에 도전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다면 이제는 그 도전의 방향이 ‘거꾸로’ 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경기도 수원·성남·부천·고양 등에는 민주당 전직 의원들이 잇따라 도전장을 냈다. 최성 전 의원은 지난달 26일 고양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청와대, 국회의원 경험을 바탕으로 말 그대로 생활정치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싶다”고 밝혔다.
콧대 낮추고, 실익 챙기고
이기우 전 의원은 수원시장 출마, 김기석 전 의원은 부천시장 출마를 고민 중이다. 노현송 전 의원의 경우 자신이 민선 2기 구청장을 지냈던 강서구청장에 다시 한 번 도전, 화제가 되고 있다.
복기왕, 이철우 전 의원도 각각 충남 아산시장과 경기 포천시장 출마를 두고 심사숙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기 포천시장 선거에는 이철우 전 의원의 ‘맞수’인 한나라당 고조흥 전 의원도 출마를 준비하고 있어 대결 여부가 기대되고 있다. 고 전 의원은 “일부에서는 의원을 지냈던 사람이 왜 시장에 나가느냐고 하지만 의원 못지않게 기초단체장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한나라당 유준상 전 의원이 서울 광진구청장, 유승규 전 의원은 강원 태백시장 출마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정치권 한 인사는 “최근 정치인의 성장에 행정경험이 중요한 요소로 다뤄지고 있다”며 “국회의원보다 지자체장의 파워가 강한 곳에서 행정경험도 쌓고, 지지기반도 마련하면 ‘꿩 먹고 알 먹는’ 것 아니겠냐”고 말해 전직 의원들의 지방선거 도전을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