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전당대회 등 선거전 넘치는 2010년
박근혜 1년 행보 계획 속에 숨은 ‘반전의 묘미’
연말이 되면서 새해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치권도 다르지 않다. 특히 내년에는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재보선까지 굵직굵직한 정치 일정이 가득해 벌써부터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누군가는 출마선언을 했고 누군가는 경쟁자를 향해 칼날을 겨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관심이 가장 집중되고 있는 것은 박 전 대표의 내년 계획표다. 그가 주연급 인물로 떠오른 세종시 정국이 내년 1월 수정안 발표와 함께 재개될 전망이다. 또한 지방선거와 전당대회에서도 그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표는 2010년을 어떻게 보낼까. 거물급 정치인들의 행보를 통해 내년 정국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도 박 전 대표의 움직임은 단연 화제다. 그는 백 번의 움직임을 한마디로 축소해 전달하고 그 한마디로 천 번 행동하는 것 같은 효과를 내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행보는 ‘나비효과’와 같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작은, 한마디의 말로 정국에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효과를 유발시킨다. 그가 말을 하면 여론이 변하고, 그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손짓 한 번에 정국 요동
‘한마디’ 파괴력 엄청나
이러한 정치적 파괴력은 박 전 대표 본인이 이뤄낸 것이다. 그는 현 정권이 출범한 후 두드러지는 움직임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계파모임을 만들자는 측근 의원들을 달랬고 정치 현안에 대한 발언은 최소화했다. 그 결과 박 전 대표의 한마디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여야 정당 대표들의 그것보다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소신’과 ‘원칙’으로 강조한 것들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행보를 보이면서 ‘변하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대중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가진 정치적 영향력으로 인해 내년에 그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에 쏠린 눈은 날로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6월에 열릴 지방선거와 7월로 예정된 한나라당 전당대회다. 지방선거는 현 정권의 중간평가장이 될 공산이 크고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당권 전쟁에서 친이계와 친박계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또한 한껏 움츠리고 있던 박 전 대표가 대권으로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한 정치평론가는 박 전 대표가 내년에 대권가도에 발을 들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내에서 박 전 대표의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고 재보선 때와는 상황이 다른 만큼 박 전 대표도 당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친박계는 친이계가 박 전 대표를 ‘지방선거용’으로 쓰고 폐기처분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에는 몇몇 의원직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전국적인 판세가 걸려 있어 박 전 대표도 결단을 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바라봤다. 일단 박 전 대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권가도에 가속페달을 밟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한나라당에서는 지방선거를 ‘박근혜 체제’로 치르기 위한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내년 2~3월 조기 전당대회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는 이들은 세종시 정국에 대한 우려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세종시 문제는 정부가 수정안 발표를 미루고 여론을 청취하기로 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하지만 내년 1월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면 본격적인 갈등구도는 물론 친이계와 친박계의 해묵은 상처까지 파헤쳐질 수 있다. 이 경우 당이 쪼개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당이 쪼개지지는 않더라도 하나로 뭉치지 않은 상태에서 6월 지방선거를 치르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 3~4월이면 지방선거 공천이 진행되는데 여기에도 계파 갈등의 뇌관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안팎에서 이 상태로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커져가고 있다”며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 법이지만 흐릿해진 정몽준 대표의 리더십과 독주하는 청와대의 모습은 절벽을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을 쪼개느니 박 전 대표에게 당을 넘기는 것이 ‘구명줄’이 될 수 있다”면서 “‘선거의 여인’이라는 전문가가 지방선거를 맡게 될 뿐 아니라 당정청 협의와 당내 여론수렴을 통해 당과 청와대가 보폭을 맞춰나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 안팎의 목소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계파색이 엷은 의원들 사이에서는 “세종시 수정, 4대강 사업 등은 정부가 주도하지만 결과적으로 책임은 정당이 지게 된다”며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는 이들은 따로 있는데 최소한 ‘함께’라도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친이계도 친박계도 탐탁찮은 분위기다. 친이계 한 의원은 세종시 수정이 좌절될 경우 조기전대를 통해 박 전 대표 등으로 지도부를 교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1월에 세종시 초안이 나오면 2월에 법안 수정이든 시행령 개정이 있고 곧 3월이다. 그때 전당대회를 해서 6월 지방선거를 누가 치를 수 있겠냐”며 “물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당권 받고 선거 돕고
친이·친박 윈윈전략
친박계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조기전대에 박 전 대표가 거론되는 것에 대해 거리감을 두고 있다. ‘선거는 지도부를 중심으로 치러야 한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지론인 만큼 지방선거에 총대를 멜 필요가 없는 박 전 대표가 전당대회와 관련돼 언급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당외 박 전 대표의 세력인 친박연대는 지방선거에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계획이다. 친박연대는 지난 4일 “두 차례 회의를 거쳐 2010년 6월 지방선거는 반드시 참여키로 결정했다”며 지방선거에서 전 지역 출마를 목표로 총력전을 펼치기로 했음을 전했다.
정치권은 친박연대가 지방선거에서 전국에 후보를 낼 경우 박심(朴心)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명 변경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친박’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고 당선을 위해서는 박 전 대표가 은연중에 거론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세종시 정국으로 박 전 대표에게 손길을 내민 민주당 등도 지방선거에서 박 전 대표의 ‘심경변화’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
즉, 박 전 대표가 지방선거에서 당권경쟁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낮지만 선거의 흐름을 잡는 중심추가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가 한 인사는 “지방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인 동시에 대선주자들에게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선거 성적표에 따라 오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영향이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 임기 반환점에 서 있는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미래권력이 부상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박 전 대표가 그동안 움츠렸던 몸을 풀고 대선을 위한 준비운동에 들어가면 그가 그동안 품어 온 날개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며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박 전 대표가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에 따라 결과는 수백 가지로 나타나지 않겠느냐. 예상했던 대로 일이 풀릴지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 일어날지는 그때 가봐야 알 일”이라며 여러 가지 상황을 설정, 박 전 대표의 행보를 쫓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편, 정가 일각에서는 2010년이 박 전 대표가 이미지 변신을 하는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내에서 박 전 대표를 향해 “이제는 계파의 보스라는 것보다 나라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살려야 한다. 왜 만날 싸우기만 하는가”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탓이다.
당 원로 중 한 명은 “친이계와 친박계가 계파 싸움을 하는 것이 제일 걱정스럽다”며 “이렇게 한나라당이 친이·친박 간 계파싸움을 계속하면 아무것도 안될 것이며 국민도 등을 돌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특유의 행보
정중동 벗어던지나
이에 따라 박 전 대표의 이미지를 계파를 뛰어넘는 정치 지도자로 키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가 한 인사는 “현 정권이 출범한 후 박 전 대표는 영남과 한나라당 지지자뿐 아니라 충청과 호남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며 “민주당이 텃밭인 호남에서 야권 인사들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에 고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상 그동안 강조해 온 ‘원칙’ ‘소신’ ‘복지’ 등의 키워드를 당 밖으로 확장시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