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연일 치솟고 있다. 그야말로 금값이 ‘금값’이다.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의 눈길 역시 금으로 향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을 노린 각종 범죄들이 횡행한다는 것. 최근엔 정권 실세를 사칭하며 금을 싸게 팔겠다고 유인한 뒤 10억원을 강탈한 일당이 덜미를 잡혔다. 가짜 금도 극성을 부릴 조짐이고 전국 금은방들은 절도범의 표적이 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금값에 따른 웃지 못할 사건들을 살펴보자.
정권실세 사칭해 ‘금 싸게 판다’ 사기 쳐 돈만 챙겨
날뛰는 금은방 절도범에 금은방 주인들 보안 비상
박모(45)씨와 한모(33)씨는 연일 치솟는 금값을 이용해 한몫 챙겨볼 생각으로 금세공업자 김모(60)씨에게 접근했다. 이들 일당은 김씨에게 “지인이 전 정권의 실세였는데 ‘IMF 인수위원’을 할 때 확보해 둔 금을 지금도 많이 갖고 있다”며 “이 가운데 순금 30kg을 시가보다 2억여 원 가량 싼 10억원에 팔겠다”고 A씨를 유혹했다.
A씨에게 이 제안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금값 변동을 누구보다 잘 아는 A씨에게 시가보다 2억이나 싼 값에 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것보다 달콤한 제안이었던 것.
금 대신 몽둥이
결국 A씨는 이들과 거래를 하기로 약속했고 지난 9월24일 금과 현금을 맞교환하기로 했다. 약속한 날 A씨는 10억원이 든 가방을 가지고 약속장소인 경기도 양주시 모 호스텔 앞으로 갔다. 그러나 A씨를 기다리는 것은 몽둥이세례였다. 갑자기 날아온 둔기가 A씨의 머리를 쳤고 A씨는 곧바로 기절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현금은 사라진 후였다.
그제야 사기에 걸려들었다는 걸 깨달은 A씨는 경찰에 이들 일당을 신고했다. 그리고 두 달간의 추적 끝에 이들 일당은 경기도 부천에서 검거됐다. 검거당시 일당은 고급 외제 승용차를 구입했고, 남은 돈 8억5000만원을 도피처에 보관 중이었다. 조사결과 이들은 단 1g의 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값으로 울고 웃는 이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전국 금은방 주인들도 비상이 걸렸다. 금을 노린 절도범들의 침입을 막느라 밤낮으로 철통경비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는 한 주인은 “금값이 오르니 금을 사러 오는 사람들 발길은 뚝 끊기고 훔치러 오는 사람들만 늘어나는 모양새다”라며 “수입이 나날이 줄어드는데도 무리해 CCTV까지 설치했지만 불안감은 떨칠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금은방 절도사건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금은방만 골라 금품을 훔친 이모(47)씨가 덜미를 잡혔다. 서울 강서경찰서에 따르면 이씨는 서울과 경기지역 금은방을 돌며 11차례에 걸쳐 2156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쳤다. 조사결과 이씨는 금은방 주인에게 귀금속을 보여 달라고 한 뒤 주인이 한눈을 파는 사이 금품을 훔쳐 달아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훔친 금품은 오모(52)씨 등 10여 명의 장물아비들에게 흘러간 것으로 밝혀졌다.
경남 울산에서는 대낮에 금은방에 침입해 5000만원어치의 금품을 싹쓸이한 2인조 강도도 덜미를 잡혔다. 울산 중부경찰서는 금은방에 들어가 업주를 위협하고 귀금속 수천만원어치를 빼앗아 달아난 김모(27)씨 등 2명이 자수를 해 온 사실을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16일 오후 2시40분쯤 울산시 남구의 한 금은방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들어가 업주 김모(38)씨를 흉기로 위협하고서 진열대에 있던 귀금속(시가 5000만원 상당)을 갖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경찰에서 “병원비와 생활비 등이 필요해 범행을 계획했다”며 “사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수사망도 좁혀진 것 같아 자수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에는 반도체용 인쇄회로기판을 만드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오는 금가루를 몰래 빼돌려 수십억원을 챙긴 반도체회사 직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충북 청주 소재 반도체업체의 간부 김모(51)씨와 전 직원 이모(40)씨가 장본인. 이들은 회사가 매달 말 전기분해망에 걸린 금을 수거해 갈 때 정확한 양을 파악하지 않는 점을 이용해 범행을 도모했다. 이들 일당은 매달 초 회사에서 설치한 분해망을 자신들이 구입한 것으로 바꾸는 수법으로 금을 빼돌렸다. 이 같은 수법으로 2005년 12월부터 최근까지 80여 차례에 걸쳐 훔친 금은 총 120㎏, 시가 50억원어치다.
김씨 등은 12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금의 판매대금을 관리하고 고속도로 나들목 부근이나 휴게소에서 장물업자들을 만나 거래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금을 팔아 월 1억원이 넘는 수입을 거둔 일당은 330여㎡(100여 평) 규모의 빌라와 고급 승용차를 사고 주식투자를 하는 등 호화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당은 장물업자에게 주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직접 금을 녹이는 방법을 터득해 금은방에 팔아 넘겨 더 큰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금값 폭등을 이용해 한몫 잡아보려는 ‘떴다방’들도 늘어나는 실정이다. ‘금 고가 매입’등의 현수막을 내걸고 불법으로 금을 사들이는 이들이다. 주로 이들은 인터넷에 매입광고를 올리고 쪽지나 이메일을 보낸 이들의 집을 찾아가 금을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가짜 금도 판을 칠 조짐이다. 가짜 금괴와 가짜 금덩어리 등이 공항으로 반입된 사실이 드러난 것.
가짜금도 기승
인천공항본부세관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인천시 주안의 모 무역업체 직원 B(36)씨가 휴대 반입한 금덩어리 3㎏(신고가격 7000만원)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금 성분이 전혀 없는 가짜로 밝혀졌다. 이번에 반입된 가짜 금은 1㎝ 크기의 반구형 형태 1500개로 순도 80%의 금덩어리로 신고됐으나 구리와 아연을 섞어 만든 구리 합금으로 판명됐다고 공항세관은 설명했다.
이에 앞서 공항세관은 지난달 14일 한 금 수입업체가 수입 신고한 금 99.9%인 1㎏짜리 골드바 10개(신고가격 3억 원 상당)를 성분 분석한 결과 구리합금을 입힌 가짜 금괴인 것으로 확인한 바 있다. 세관 관계자는 “최근 금 시세가 급등함에 따라 해외에서 차익을 노리고 가짜 금을 반입이 늘어나고 있다”며 “금 제품을 거래할 때 사기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