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산업·관광·무역 요지 ‘하산’, 두만강유한개발공사 개발 전권
군사지역서 자유무역지대로 변신, 중국 견제·개발 ‘두 마리 토끼’
중국 끈질긴 개발 참여 요청…북한 15일 기다려 투자협의서 사인
러시아 연해주 지역 개발을 둘러싼 물밑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내년부터 하산 지역의 비자가 면제되는 등 자유무역지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지나는 데다 알레스타 항로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과 가깝게 교역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기도 해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연해주 지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과 북한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에 이르기까지 선점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또한 연해주는 우리에겐 역사의 한 조각이 놓여 있는 곳이라 역사를 찾기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두만강 유역이 ‘황금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곳은 동북아의 수송과 무역의 중심지로 주목받아 왔다. 최근 러시아가 이곳을 자유무역지대로 만들려 한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그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대두되고 있다.
천혜의 땅 연해주
교통의 요지로 부각
이곳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산 지역의 개발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두만강개발유한공사(오명환 회장)는 교통과 자연환경을 꼽는다.
오명환 두만강개발유한공사 회장은 지난 2006년 연해주 하산지구 자치정부와 의회로부터 추카노보촌 지역 1050ha와 위노그라드나야강 지역 600ha 등 1650ha 면적의 토지를 농지로 제공받았다. 이는 여의도 면적(840ha)의 2배에 해당한다.
오명환 회장이 소유한 다른 법인인 금산각개발유한공사는 추카노보촌 지역 내 4027㎢ 에 달하는 노천광산(예상매장량 9000만t)에 대한 석탄 채취권도 연해주지방자원 이용대리처로부터 취득했다. 오씨는 이들 땅을 러시아 지방정부에 평당 100원의 임차료를 지불하고 50년간 사용하게 된다.
그는 연해주, 하산지역이 동북아의 새로운 요충지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하산지역에는 북한·러시아·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한반도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접한 하산지역은 중국을 거치지 않고 러시아를 오가는 유일한 통로로, 북한의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와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연결되는 곳이다.
오 회장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효율성을 거론했다. 그는 “차기 대권주자들이 철도와 관련된 공약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공약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의선을 이용해 물건을 싣고 유럽까지 가기 위해서는 5개를 나라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과되는 관세로 인해 물류비용이 많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오 회장은 “연해주 지역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면 14일이면 베를린에 도착할 수 있다. 항구가 건설될 경우 알레스카 항로를 통해 미국에 가는 게 부산보다 5000km 가까워진다. 소말리아 해적선을 피할 수 있는데다 거리마저 가까워진다”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천혜의 자연 환경과 자원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이곳이 주목받는 이유다. 군사지역으로 묶여있던 곳이라 자연환경이 훼손되지 않은데다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오 회장은 “이곳은 게르마늄 토양을 가지고 있다. 100년간 그물을 치지 않은 곳이라 수산자원도 풍부하다”고 말했다.
각국 물밑접촉 치열
북한과 계약서에 사인
또한 그는 “연추(크라스키노) 앞 동경성만(東鏡省灣)은 ‘동쪽의 거울같다’는 뜻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면서 태풍이나 해일, 황사가 없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았다.
오 회장은 “지구온난화로 남반구에 있는 곳은 각종 자연재해, 해일이나 태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곳이 새로운 관광의 명소로 떠오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각국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이 지역이 자유무역지대가 된다는 점이다. 당장 내년부터 이 지역의 비자가 면제된다는 것이 알려지자 각국에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관심이 뜨겁다.
중국 정부는 두만강 유역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북지역의 창춘-지린-투먼시를 연결하는 ‘창지투 개발·개방 선도구’ 사업을 승인했다. 이 사업은 오는 2020년까지 창춘과 지린 및 옌볜자치구의 투먼 일대 약 7만3000㎢(남한 면적의 약 73%)를 동북아지역의 물류·공업 전진 기지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중국 정부는 특히 옌볜시와 훈춘시 등 두만강 유역을 집중 개발한 뒤 북한의 나진항을 통한 동해 항로도 개척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회장은 “중국은 이미 이 지역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나에게 90억 달러를 가져가 ‘쓰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중국에 빚지는 것 아니냐. 그만큼의 대가를 가져가려고 할 텐데…”라고 말했다.
일본·미국 등 해외 각국에서도 제안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는 이미 개발협약서를 체결했다. 강성무역인 조선 백설회사와 ‘조선라선지구에 대한 투자와 개발리용에 관한 협의서’를 작성한 것. 협의서에 따르면 “쌍방은 국적, 사상, 종교를 초월하여 유구한 역사 속에 결연히 이어온 한민족의 새로운 발전과 조선민족의 새 시대를 활짝 열기 위하여 로씨야 하싼지구의 력사복원 및 대단위 공업물류중심지구개발과 조선라선지구의 경공업단지의 공동개발을 추진하기 위하여 협의서를 체결한다”고 돼있다.
또한 “두만강개발유한공사는 2009년 11월 중순이후 중국에서 만남 시 조선평양에 입국하기 위한 실제적인 준비사업을 조선 백설회사에 제출해 주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오 회장이 북한과 개발을 같이 하는 대신 “나진 선봉을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오 회장은 이를 상의하기 위해 평양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이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다.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달 입국 시 청와대에서 만남을 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 회장의 구상은 확고하다. 정치인이 아닌 민간위주로 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 회장은 “이 지역에 북한이 농사를 짓고 북한과 국내 기업들이 같이 협력해 사업을 벌여나가면서 평화통일로 갈 기회를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오 회장은 이어 “한민족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싸우지 않고 통일을 이룬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외교는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문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해야 하고 그래야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신평화도시’를 건설, 남·북한과 고려인, 사할린 동포들, 조선족이 함께하는 한민족자치구를 만든다는 구상을 세우고 있다. 이곳을 ‘동북아의 꽃’으로 불릴 물류거점지로 만들고 UN본부와 한민족자치본부를 세운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개발과 보폭 맞춘 복원
‘한민족 역사’ 흔적 찾는다
오 회장이 하산지역의 개발과 함께 중요하게 추진하는 사업은 우리의 역사를 찾는 것이다. 연해주 지역은 고조선과 발해가 시작된 지역일뿐더러 국외 항일 의병이 뿌리를 내리고 활동하던 곳이었다. 1937년 고려인 자치정부가 있었을 정도로 수많은 고려인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던 곳이다. 25만7000여 명의 고려인은 강제 이주를 당하기 전까지 이곳에 터를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오 회장은 국외 항일 의병의 발상지로 불리는 의병부대 터를 발견했다. 연해주 하산지역에 있는 의병부대는 안중근·최재형·이범윤 등이 참여, 사실상의 임시정부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단지동맹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단지동맹은 안중근 의사를 중심으로 김기룡, 백규삼, 강창두, 조응순, 황병길, 강순기, 정원주, 박봉석, 유치홍, 김백춘, 김천화 등 12인이 태극기를 펼쳐놓고 왼손 무명지 첫 관절을 각기 한 칼로 잘라내어 생동하는 선혈로 ‘대한독립’이라 쓰고, ‘대한국 만세’를 삼창하고 조국독립에 헌신하기로 혈맹한 것을 말한다.
이 지역은 이미 러시아 정부로부터 토지사용권을 받았다. 지난 8월 한민족운동단체연합이 의병부대 터를 복원하는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한일병합 100년이 되는 내년부터 이 일대를 복원하게 된다.
이 지역에서는 발해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과 러시아 극동역사고고민속학연구소 크라스키노조사단(단장 블라디슬라브 볼딘)이 연해주의 크라스키노와 체르냐치노의 발해유적에 대해 공동으로 발굴 작업을 벌여오고 있는 것. 이들은 지난 2005년 해안에서 400m 북쪽에 위치한 발해 성터에서 온전한 형태의 쌍구들식 온돌구조를 확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