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논란’…고래 사이에 등터진 정몽준

2009.11.17 13:03:07 호수 0호



세종시에 친이·친박 엇박자, 저울추 잡은 정몽준
쌀쌀해진 동창 안상수 원내대표와 불협화음 골머리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세종시를 둘러싼 친이, 친박계의 물러섬 없는 대치 정국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추가 움직이는 모양새다. 한쪽에서는 당정청의 수레바퀴를 돌려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당의 균열을 막아야 해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정가 주변에서는 정 대표가 제2의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10월 재보선에서 가까스로 체면 유지는 했지만 내홍을 수습하지 못하면 당 지도부의 ‘령’이 살지 않을 것이라는 따끔한 지적이다.



한나라당에 10월 재보선에서 내린 비가 마르기도 전에 소낙비가 들이치고 있다. 세종시 문제를 둔 친이, 친박계의 내홍이 폭우를 동반한 것.

친이계는 원안 수정을 주장하고 있고 친박계는 원안 추진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거 세종시법 처리 과정까지 들먹이며 책임소재를 따지는 등 친이, 친박계 사이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

친이도 친박도 ‘쌀쌀’

이 가운데서 정몽준 대표도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정 대표는 당정청의 원활한 운영과 당내 갈등 해소라는 두 가지 숙제를 떠안았다. 당 대표직을 승계한 후 10월 재보선에 이어 연거푸 두 번째 시험대에 오른 것.

정 대표는 당정청 모임에 참석해 세종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한편 ‘세종시 여론수렴 특위’를 제안했다. 세종시 문제가 당내 계파 갈등으로 확산되자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벌이는 대신 생산적인 논의를 하자는 의도에서다. 계파의 주장은 잠시 뒤로 미루고 국민 여론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자는 것도 특위 구성의 목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 정 대표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특위 참여를 거부한데다 안상수 원내대표와 충돌이 벌어진 탓이다.

정 대표는 지난 8일 박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세종시 문제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다음 날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당내 세종시 논란과 관련, “정 대표와 전화하기도 겁난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당내 특위 구성에 대해 자신이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처럼 보도됐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정 대표가 전화해 TF 얘기를 하기에 ‘그건 나와 상의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엉뚱하게 보도가 됐다”면서 “오늘 아침에도 (정 대표에게) 전화해 지난번 통화도 그렇고 (지난 9월 국회에서) 만났을 때도 안 한 얘기가 (기사로) 나가서 ‘이렇게 되면 이제 전화하기도 겁난다’고 했더니 (정 대표가)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친박계가 세종시 수정을 전제로 하는 특위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불참 의사를 밝히면서 특위는 출발하기도 전에 반쪽 특위로 전락했다. 몇몇 친박 인사들이 계파와는 상관없이 특위에 참여했지만 대세는 아니었다.

친이계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다. 정 대표는 안상수 원내대표와 시시때때로 불협화음을 노출하고 있다. 조기전당대회 개최 문제로 신경전을 벌인 데 이어 세종시 논란에서도 갈등은 이어졌다.

지난 8일 정 대표가 확대당직자회의를 열어 당 대표 직속으로 세종시 특위를 구성한 것이 발단이 됐다. 확대당직자회의는 원내대표가 소집하는 회의인데 이를 정 대표가 소집하면서 안 원내대표와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던 것. 안 원내대표는 회의에 불참하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한 새로운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특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불협화음들은 조기 진화로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 원내대표와 여러 차례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고스란히 정 대표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당이 친이, 친박계로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친이계가 나뉜다면 당의 구심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당력이 안 원내대표에게로 기울고 있다는 것도 정 대표가 짊어진 짐의 무게감을 늘리고 있다. 세종시 특위 첫 번째 회의를 앞두고 정 대표는 “집권여당으로서 전반적인 여론을 수렴하고 국가적 합의를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라며 “앞으로 세종시 특위가 충청 발전과 국가 발전을 이뤄낼 지혜를 모아주기 바란다”고 당내 갈등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안 원내대표는 마무리된 대정부 질문을 회고하며 “우리나라 주요 국정 현안이 마치 세종시밖에 없는 듯한 인상을 줬다”고 화제를 전환했다.

장광근 사무총장도 “정기국회 남은 기간 동안에는 내년 예산안 처리문제에 대해 당력을 집중시키고 원내대표의 의지에 힘을 실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세종시 논란을 자제하고 안 원내대표에게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 안팎에서 정 대표의 리더십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직전 당 대표였던 박희태 전 대표처럼 정 대표가 6선 중진의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인사들은 친박계의 거부와 대안 부재로 조기전당대회론이 수면 아래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세종시도 문제지만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목전에 있지 않냐”며 “지금이라도 선장을 바꿔서 당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까 약일까

그러나 지금의 ‘위기상황’이 정 대표에게 ‘약’으로 쓰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 대표가 세종시 문제로 ‘본격적인 시험무대’에 올랐다”며 “그는 박희태 전 대표에 이어 당 대표직을 승계하고 발 빠른 행보로 당내에 무사히 안착했다. 10월 재보선을 통해 걸음마를 시작했다면 이제는 친이, 친박계 사이에서 자신의 정치력을 평가받을 때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내 리더십은 친이, 친박계 사이에서 무엇을 끌어내느냐 하는 것으로 결정될 것”이라며 “워낙 어려운 문제다보니 ‘독’이라는 견해가 많지만 지난 2년여 동안 정당 활동에 적응했듯 위기 속에서 큰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당 대표의 리더십뿐 아니라 박 전 대표와 정운찬 총리 사이에서 대권주자의 위치를 찾기 위해 정 대표가 어떤 묘수를 낼 것인가에 정치권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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