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맞은 국감…시선은 재보선, 전망은 대권
대권경쟁 출발점, 지방선거 앞두고 깊은 고민
여의도에서는 국감이 한창이지만 정치권의 시선은 이미 10월 재보선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중 몇몇은 10월 재보선 후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감에 매진할 뿐 재보선에는 관여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정치적 휴지기’를 보내고 있는 박 전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와 그 이후의 행보를 결정해야 할 정치적 전환점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현 정부에 날을 세웠던 이전과는 달리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을 이뤘고 당 내 계파 갈등도 수그러들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과 손을 잡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전혀 다른 분석들도 속속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박 전 대표에게 선택의 시간이 오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9·3개각을 통해 국정 하반기의 밑그림을 그렸다면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대권도전과 관련된 큰 그림을 그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현재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은 ‘대권도전’에 대해 언급을 삼가고 있다. 정몽준 대표는 한나라당을 맡은 후 자신의 대권구상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여권 대선주자인 정세균 대표, 손학규 전 대표, 정동영 의원의 입에서도 ‘대권’에 대한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모를 바 아니고 아직 먼 대선보다는 눈앞의 과제들이 산적했기 때문이다. 또한 먼저 나서서 매를 맞지 않겠다는 의도도 숨어있다. 지난 대선에서 1년여 동안 여야 후보들의 검증전이 펼쳐지는 동안 중도 낙마한 이들이 숱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중동 속에 담았던 속내
묶어둔 매듭만 만지작
그러나 여야를 막론하고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사정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알게 모르게 대권행보를 취하고 있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박 전 대표는 지난 2년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대권전쟁이 시작될 전망이어서 큰 틀이나마 움직일 방향을 정해야 하는 처지다. 이는 곧 이 대통령의 손을 잡느냐 마느냐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최근 박 전 대표의 행보를 거론하며 그가 이 대통령의 손을 잡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정권 초 이 대통령의 정책과 그 정책의 추진 방식 등을 비판하며 날을 세웠으나 최근에는 이 같은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요청으로 대통령 특사로 유럽 지역을 돌아보고 왔으며 이후 이 대통령과 독대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번 재보선에서는 지난 4월 재보선과는 달리 친이계와 친박계가 협력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 힘을 실어줬던 심재엽 전 의원은 친이계 권성동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과의 공천 경쟁에서 밀렸으나 무소속 출마를 하는 대신 조용히 출마의 뜻을 접었다. 대신 안산 상록을에서 친박계 송진섭 전 안산시장이 친이재오계 이진동 전 당협위원장을 누르고 공천됐다.
친박계의 지원도 대폭 강화됐다. 안산 상록을에는 친박계 중진 홍사덕 의원이 선대위원장으로 나섰으며 경남 양산에는 이주영 도당위원장이 선대위원장을 맡되 친박계 허태열 최고위원이 중심이 돼 진두지휘하기로 했다. 양산에 친박계 유재명 전 연구원이 뛰고 있지만 친박계의 총력지원으로 박희태 전 대표를 지원, 표 분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 다음 대선에 나설 여권 후보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면서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에 속해있는 이상 이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다. 대통령이 공적을 쌓으면 이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실이 생기면 이를 나서서 막지 못했다는 것으로 공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만큼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을 도울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친이계의 행보를 보면 박 전 대표와 친이계는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이 너무도 명확하다”고 말한다.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돌아온 이재오 전 의원과 정몽준 대표가 서로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관측 탓이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복귀 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는 첫 외부일정으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챙겼고 1일1현장을 선언, 곳곳을 누비고 있다. 공무원들의 청렴을 강조, ‘관가의 저승사자’로 떠올랐다.
이 위원장은 “올해부터는 기관들의 청렴도를 순위별로 발표하고, 고위공직자에 대한 청렴도 평가기준을 세워 순위를 공개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공무원 기록에는 항상 청렴성이라는 항목이 따라다니는데 말로만 따라다녔지 그것을 특별히 점수나 계량화 하는 제도가 없었다”며 “그것을 계량화할 수 있는 연구를 검토하고 있다. 해당 부서가 검토하고 있고 필요하면 외부기관에 용역을 맡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권익위는 고발이나 조사권은 있어도 기소나 수사권이 없어서 그런 권한을 갖고 있는 반부패 기관과 연석회의를 하면 좋겠다”면서 권익위, 감사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5대 사정기관 연석회의를 정례화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국정 전반을 종횡무진하는 이 위원장의 행보에 야권은 ‘소통령’이라는 별칭까지 붙여줬을 정도다.
이 위원장의 복귀 후 정 대표와의 ‘연대설’도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시도당위원장 선거가 치러질 즈음 파다했던 이 위원장과 정 대표의 연합설이 이 위원장이 친이계를 장악하고 정 대표가 당을 맡게 되면서 다시 불붙은 것.
이재오·정몽준 연합전선
홀로서기 고민 커질 수도
정치권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이 대통령이 언급한 선거구제·행정구역 개편에 이어 개헌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진다면 정 대표가 이 위원장의 손을 잡고 대선에 나서게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 대표는 한나라당의 대표가 됐지만 세력화된 기반은 만들지 못한 상태고 앞으로도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에서 자신만의 정치세력화를 이루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이 위원장도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기는 하지만 박 전 대표, 정 대표라는 쟁쟁한 거물급 인사들 사이에서 한나라당 대표주자로 꼽히기는 힘들다는 점이 둘의 연합전선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의 측근 대부분은 이제 막 초선으로 정치권에 발을 디딘 이들”이라며 “다음 대선까지 박 전 대표를 꺾을 이를 키우지 못한다면 친한 이웃(정몽준)과 동생(이재오)를 함께 내보내는 것을 대안으로 삼지 않겠냐”고 말했다.
정 대표 체제를 위협할 2월 조기전대론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관측을 키우고 있다. 조기전대를 강하게 주장하던 이 위원장의 측근들이 “조기전대를 치러야 할 이유가 사실상 사라지지 않았느냐”며 정 대표 체제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장광근 사무총장도 “정몽준 대표체제 이후 당이 젊어지고 역동적이 됐다”며 “당 일각의 조기 전당대회 요구는 논리적 근거가 희박하다”고 거들었다. 장 총장은 “현재 정몽준 대표 체제가 안정 궤도를 이루고 있고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가 있기 때문에 9월 조기 전대나 내년 2월 조기 전대의 의미는 퇴색됐다”고 말했다.
한 정치전문가는 이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통해 그의 후계구도를 짚었다. 그는 “이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은 자율경쟁체제”라며 “이는 그가 구상할 후계구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 대통령은 여러 명의 대선주자들을 경쟁시키는 것으로 후계구도를 통제하려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차분히 푼돈 모아
셋방에서 내 집으로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특사로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도, 정몽준 체제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한 것도, 이 위원장에게 국정 전반에 걸친 관리를 부탁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또한 국정 하반기가 되면 강재섭 전 대표 등 새로운 대선주자들도 부각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또 다른 인사는 이 대통령의 의중보다는 당심과 민심에 집중했다.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들의 ‘후계 만들기’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인사는 “아직까지 차기 대선주자 중 박 전 대표를 위협할 이는 없다”면서 “큰 걸음을 시작하기보다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잔걸음으로 당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을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장기전을 준비하는 자세일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