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회고록 열전’ 들춰보니

2009.09.29 10:05:31 호수 0호

노무현 회한 담긴 인생사, 정객의 돌아본 발자취 눈길
정세균 대표 <정치 에너지>로 김형오 국회의장과 신경전



정가에 ‘회고록’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못다 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부터 정세균 대표와 김형오 국회의장의 신경전으로 화제가 된 정 대표의 정치에세이 <정치 에너지>, 이재오 전 의원의 <함박웃음>, 남덕우 전 총리의 <경제개발의 길목에서>까지 회고록은 다양한 시절,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회고록에서야 담아낸, 그때는 차마 다 말하지 못했던 ‘숨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최근 출간된 회고록들이 정가에 화제를 낳고 있다. 이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못다 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은 정치권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성공과 좌절>은 서거 며칠 전까지 노 전 대통령이 집필하던 회고록이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미완성 원고와 ‘사람 사는 세상’의 비공개 카페에 올린 글, 재임 시절의 비공개 인터뷰 등이 전 청와대 비서진의 손에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온 것.

세상에 나온 ‘마지막 글’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실패와 좌절’에 대한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 사흘 전인 5월20일 남긴 글에서 회고록을 집필하게 된 경위를 적고 있다. “회고록은 한참 후에 쓰려고 했다. 아직 인생을 정리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봉하마을 가꾸기, 시민광장, 정책 연구…. 그래서 ‘우공이산’을 표구하여 붙여놓고 이런저런 일을 시작했다”는 것.


노 전 대통령은 그러나 “여러 가지 장애가 생겼다.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마침내 피의자가 되었다. 이제는 일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이야기를 쓰는 일뿐인 것 같다. 왜 써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다. 일은 삶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나를 지배하는 것은 성공과 영광의 기억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며 “정치를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내 목표는 분명히 좌절이었다. 시민으로 성공해 만회하고 싶었지만 이제 부끄러운 사람이 됐다”며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참담한 심정을 고백했다.

또한 “국민통합, 대화와 타협의 정치, 세력 균형, 동거 정부, 연정, 지역구도 극복 등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며 “대통령이 되려고 한 것이 가장 큰 오류”라고 말하기도 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준비된 조직적 세력도 없이 정권을 잡았고 우리 사회가 미처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개혁을 하려고 한 무리한 욕심이 실패와 오류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1, 2부로 구성된 책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와 ‘나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1부에서는 몸부림, 참담함 등으로 표현되는 막다른 그의 삶을 적었으며, 2부에서는 참여정부 5년과 그의 인생 역정을 흥미로운 일화들과 특유의 유머를 섞어 담담히 회고하고 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의 긴박했던 분위기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인물평 등 막후의 이야기를 비롯해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등 정치적 동지들에 대해 적기도 했다.



정세균 대표는 정치에세이 <정치 에너지>에 언론관련법 처리 과정 뒷얘기를 담았다. <정치 에너지>는 김형오 국회의장이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정정을 요구하고 나서서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 의장은 개인 논평을 내고 정 대표가 ‘김 의장이 한나라당 지도부 모임에 불려가 굴복했다’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 “불려간 게 아니라 당에서 간곡히 요청해 내가 시간과 장소를 지정해 만났다. 의도적인 사실 왜곡이자 명예훼손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이 윤리위원회에 제소당한 건에 대해 정 대표에게 항의전화를 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경위도 문제 삼았다. 정 대표가 ‘김 의장이 통화 사실을 언론에 흘려 기사화됐다.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위였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 김 의장은 “민주당 쪽에서 먼저 언론에 흘린 것이고, 사실관계를 거꾸로 한 명예훼손”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장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도 상대 정치인이나 생존인물에 대해서는 부정적 얘기를 쓰지 않는 게 예의인데 양식을 의심하게 한다”라고 정 대표에게 날선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김 의장의 문제제기 대부분은 같은 사실에 대한 해석의 차이”라면서도 “단지 다르게 이해한다고 해서 뜯어고치겠다는 발상에서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유린당했던 70~80년대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꼬집었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여의도를 떠난 이재오 전 의원은 회고록 <함박웃음>으로 시민들에게 성큼 다가가고 있다. <함박웃음>에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시절, 재야운동 시기, 민중당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재오’가 살아온 인생 역정의 날들이 담겨있다.


DJ·한승수  출간 임박

남덕우 전 총리는 <나의 삶 나의 길-경제개발의 길목에서>에 60~70년대 경제개발 과정의 생생한 뒷얘기를 담았다. 또한 1980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했던 일을 밝혔다.

회고록들이 화제가 되면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출간될 것으로 보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나 한승수 국무총리의 회고록도 주목받고 있다. 한 총리는 1년7개월여의 임기를 마치며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총리 임기 중에 매일 써온 일기를 일부 공개했다.

6권째에 접어든 ‘총리일기’에는 국무회의와 각종 업무를 진행하면서의 소감과 과제, 촛불집회와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등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겪은 총리로서의 깊은 고민과 성찰이 직접 스크랩한 신문기사와 사진과 함께 가득 차있다.

한 총리는 “매일 업무를 마치고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일기를 썼다”며 “나중에 회고록을 만들어 역사의 기록물로 남겨놓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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