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풍속도탐방> 20대 초반 ‘취집’ 열풍

2009.09.08 09:42:57 호수 0호

‘취업’ 안 되는데 ‘시집’이나 가볼까?

불황이 결혼풍속도마저 바꾸어 놓았다. 좁은 취업문을 두드리며 청춘을 보내기보다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경제력 있는 남성을 찾아 결혼하려는 젊은 여성들이 늘어난 것. 이른바 ‘취집’을 하는 20대 초반 여성들이 증가하는 것이다.

안정된 직장과 경제력을 가진 남성을 만나려고 일찌감치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하거나 ‘맞선시장’에 나선 여성도 적지 않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 결혼을 꿈꾸는 여성이 늘어난 데는 취업난이 자리한다. 특히 취업시장에서 젊은 여성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취집 지망생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취업시장서 설 자리 잃은 젊은 여성들 맞선시장으로 GO!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경제력 있는 남성 찾아 ‘동분서주’


내년에 대학교 졸업을 앞둔 대학생 이모(22·여)씨는 몇 달 전 선을 본 남자와의 결혼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어린 나이인 그녀가 맞선을 보고 결혼을 고민하는 것에는 취업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이씨는 “대단한 스펙을 가지고도 아직 취업하지 못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차라리 결혼을 할까’란 생각을 했다”며 “마침 좋은 조건을 가진 선 자리가 들어와 고민 끝에 맞선을 봤다”고 털어놨다.

이씨와 선을 본 남자는 높은 연봉을 받는 전문직 종사자. 비록 그녀보다 10살이나 많지만 ‘맞선시장’에선 전혀 흠이 아니라고. 이씨는 “그저 그런 직장에 다니며 박봉에 시달리는 또래 남자들보단 든든한 경제력을 가진 맞선남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전했다.

취직 대신 ‘취집’



맞선 본 남성도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고 두 사람은 3개월째 교제를 하는 중이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선 얼마 전부터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한다. 결혼을 전제로 한 맞선인 만큼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씨는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꿨지만 내가 가진 스펙으로 취업문을 뚫을 수 있을지에 대해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조건 좋고 경제력 있는 남자와 결혼해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교에 다니다 올해 초 결혼한 김모(23·여)씨 역시 취집을 한 케이스다. 지난해 소개팅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지금의 남편과 만난 김씨는 고민 끝에 학업도 마치기 전 결혼을 했다. 한시라도 결혼을 빨리 해야 하는 남편의 집안 사정에 의해 쫓기듯 한 결혼이었지만 한편엔 안정된 삶에 대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등록금을 낼 때마다 부모님에게 죄짓는 마음이었다는 그녀는 결국 휴학까지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는 “1000만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낼 때마다 아까운 마음뿐이었다”며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마음에 맞는 상대가 있을 때 결혼을 한 것은 잘한 선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집에서 살림을 하는 자신과 달리 취업해 사회생활을 하는 친구나 동기들을 볼 때면 부러운 마음도 생긴다는 그녀. 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는 않는단다.

김씨는 “취직을 한 친구들은 오히려 날 부러워하기도 한다”며 “고생해 취업하고도 박봉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친구들의 푸념을 들을 때면 현재 내 모습에 만족한다”고 털어놨다. 이들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과 취업고민으로 일찌감치 결혼을 하려는 젊은 여성들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취업을 하기 위해 발버둥치기보다는 능력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미래를 보장받겠다는 ‘불황형 신부’ 지망생들이다.

이는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하는 20대 초 여성들의 비율만 봐도 알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결혼정보회사 ‘선우’에 가입한 20~26세 여성의 숫자는 지난해에 비해 3배가량 증가했다. 26세 이하 여성 가입자 비율도 늘어나는 양상이다. 2006년엔 2.31%에 불과했던 26세 이하 여성들의 비율이 지난해에는 5.86%에 달했다. 결혼적령기에 와서야 다급한 마음에 결혼정보회사를 두드렸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듀오’도 마찬가지다. 올 상반기 듀오에 가입한 27세 이하 여성의 비율은 5.9%. 0.9%에 그쳤던 2006년과 비교하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취집 열풍을 보여주는 설문조사도 있다.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20~30대 미혼 여성 구직자 952명을 대상으로 ‘취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라고 설문한 결과 70.2%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 때로는 ‘취업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29.6%)가 1위로 꼽혔다. 이어 ‘친구가 시집을 가서 편안하게 살 때’(23.8%), ‘계속 취업에 실패할 때’(18.1%), ‘입사 지원 자격이 안 될 때’(9.9%) 등의 순이었다. 이들 중 51.8%는 ‘실제로 취집을 할 의향이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취집을 원하는 여성들이 그 이유로 꼽은 1위는 ‘안정적인 배우자를 만나 편히 살고 싶어서’로 나타났다.

이처럼 결혼적령기가 몇 년이나 남은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결혼에 큰 관심을 보이는 첫 번째 이유는 역시 취업난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일자리 감소폭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다는 것은 취집에 대한 고민을 증가시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14만2000명이 감소했는데 이 중 여성 취업자가 13만9000명에 이르렀다. 전체 고용 감소분 가운데 98%가 여성이라는 것.

이는 젊은 여성들로 갈수록 심각해진다. 40~50대 장년층 여성의 취업은 오히려 늘었으나 한창 일할 나이인 20~30대 여성의 일자리는 더욱 감소폭이 컸다. 올 2월 20대 여성의 일자리는 198만3000개로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6만 8000개(-3%)가 감소했고 30대 여성은 206만 개로 15만7000개(-7.1%)가 줄었다.

여기도 저기도 ‘불황형 신부’

이처럼 취업시장에서 젊은 여성들이 설 자리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취업 대신 결혼을 택하는 어린 여성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을 하나의 도피처로 여기는 젊은 여성들에게는 부정적인 시각도 쏟아진다. 전문가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고급인력의 여성들이 결혼으로 능력을 썩히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일 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조건만 본 결혼생활은 본인에게도 큰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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