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선진당을 박차고 나온 심대평 전 대표의 뒤로 그의 속내를 점치는 정치권 인사들의 입담이 따라붙고 있다. 심 전 대표와 이회창 총재가 1년 6개월 만에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 총리론 무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탓이다. 총리론 무산 과정에서 나타난 당 지배력과 충청맹주에 대한 갈등이 좀 더 근본적인 탈당 배경일 것이라는 관측이 거세지고 있다.
심대평 전 대표가 자유선진당을 탈당했다. 17대 대선을 앞두고 정계에 복귀한 이회창 총재와 당을 만든 지 1년 6개월 만이다.
심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총재와 당을 같이 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면서 자유선진당을 떠나고자 한다”며 “설득이 통하지 않는 아집과 독선적 당 운영으로 당의 지지율이 2%대에 머물러 있는데도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는 구태적 사고에 함몰돼서는 더 이상 당의 미래에 희망이 없음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이 총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심 전 대표의 탈당과 교섭단체 탈퇴로 선진당과 이 총재는 큰 타격을 입었다. 창조한국당과 결성한 ‘선진과창조의모임’이 국회 교섭단체 지위를 잃었으며 이로 인해 선진당은 9월 정기국회 등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졌다. 독단적인 당 운영을 지적당한 이 총재의 리더십도 흔들리게 됐다.
손 털고 선진당 나와
심 전 대표는 “총리직 위해 당적 버린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충청총리론’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이 총재와 사이가 벌어진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심 전 대표는 총리직을 원했지만 이 총재의 반대로 번번이 성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청와대와 심 전 대표, 이 총재 사이에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골자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 총재가 심 전 대표의 총리행을 두고 사전교섭을 했는데 교섭 조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렬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섭 조건을 두고 주장이 엇갈린다.
이 대통령과 심 전 대표는 이 총재가 조건으로 제시했던 ‘강소국 연방제’와 ‘세종시 건설’ 중 ‘강소국 연방제’가 교섭 결렬 요인이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 총재는 ‘세종시 건설’을 이유로 들었다. 청와대가 심 전 대표를 총리로 삼고 세종시를 유야무야 하겠다는 속셈이라는 것.
이 총재는 청와대를 비판하는 한편 서둘러 대전을 찾아 민심 수습에 나섰다. 그는 심 전 대표의 탈당에 대해 “제가 부덕해서 벌어진 일”이라며 “심 전 대표를 비롯해 당을 떠난 동지들은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복당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 전 대표는 이 총재의 당 복귀 요구에 대해 “당의 비공개 의총에서 출당조치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을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 대표가 어떻게 당을 지켜나가느냐”며 “이 총재의 복당 제안은 충청민에게 보내는 립서비스”라고 일갈했다.
또한 자신의 탈당 배경으로 총리직 인선 문제가 오르내리는 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탈당도 내가 총리로 못 가게 되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며 총리소동이라는 말로 폄하하면서”라며 “이 총재는 (청와대와의 총리 입각 교섭과 관련해) 구체적 설명 없이 ‘그런 얘기가 있었으니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시오’라고만 했다. 모든 게 그런 식이다. 내가 오죽하면 설득이 통하지 않는 아집과 독선으로 당을 운영했다고 했겠나. 그게 가장 중요한 사유”라고 이 총재를 정조준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심 전 대표가 이 총재의 당 운영에 불만을 제기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심 전 대표가 방식을 고치거나, 총재를 바꾸거나, 자신이 총재를 하는 등의 방식을 택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 한 인사는 “심 전 대표의 탈당은 총리직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당내 위상을 되돌아보면서 결심하게 된 것 같다”면서 “당내 역할에 대한 고민과 내년 지방선거, 2012년 대선에서 충청권 맹주가 되겠다는 계산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선진당은 심 전 대표가 맡고 있던 국민중심당과 이 총재가 힘을 합쳐 만든 당이다. 하지만 그동안 당이 이 총재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상대적으로 심 전 대표의 입지는 축소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당이 이 총재 중심이 되면서 심 전 대표는 충청권에 대한 주도권이 이 총재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이 총재 중심으로 굳어진 당을 벗어나 충청권에 대한 자신의 영향을 확인하려 한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충청권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심 전 대표의 탈당 후 충남 지역 지자체장들의 동반 탈당이 줄을 이었다. 심 전 대표의 탈당 선언 하루 만에 유한식 연기군수와 진영은 의장 등 연기군의원 7명, 최홍묵 계룡시장과 류보선 계룡시의원, 이준원 공주시장과 김태룡 의장을 비롯한 공주시의원 8명 등 기초단체장들과 지방의원들이 동반 탈당했다. 박광기 대전대 교수, 강희춘 예산군 당원협의회 운영특위 부위원장 등 핵심 당원들의 탈당도 이어졌다. 충남 정가가 술렁이면서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예비 후보자들도 동요하고 있다.
‘충청맹주’는 누구?
심 전 대표는 신당 창당에 대해 단호히 선을 그었던 처음과는 달리 창당은 물론 한나라당 입당 등 독자세력화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충청신당 창당 가능성에 대해 “지금은 반성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정리해서 지역과 국가를 위해서 앞으로도 더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판단이 되면 스스로 결심을 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는 물론 차기 대선에서도 중요한 ‘캐스팅 보트’를 쥘 충청권 맹주 자리를 두고 진검승부를 각오한 것이다. 여기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국무총리에 내정되면서 ‘충청 맹주’를 둔 각축전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