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국정감사 ‘총성없는 전쟁터’ 국회는 정보 전쟁 중
박지원 의원, 천성관 후보자 입출국 자료·명품 쇼핑 내역 제시
‘알짜 정보’ 아는 전·현 정권 실세, 국정원 출신 두각
국회는 한마디로 ‘총성없는 전쟁터’다. 인사청문회나 국정감사에서는 누가 얼마나 중요한 정보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최근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낙마의 결정적 요인은 천 전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였다. 청문회나 국감은 이른바 ‘정보전’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당내 경선이나 대선에서도 정보전은 치열하게 펼쳐진다. 좁게는 국회 혹은 국내에 대한 것에서 넓게는 국제 관계에 이르기까지 ‘정보전’의 선두에 선 이는 누구며 이들의 ‘정보망’은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살펴봤다.
대선보다 의원들의 정보망이 바쁘게 가동되는 때는 없다. 하지만 의원들의 정보망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대선보다는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인 경우가 많다. 대선보다 자주 치러지며 정보라는 총알을 쥔 총잡이 개개인에 세간의 시선이 맞춰질 수 있는 개인전이라는 이유에서다.
여당+정부 합동전에서
의원 개인전으로 변화
특히 최근 국회에서의 정보전에서는 의원 개개인의 정보망이 중요하게 동원되고 있다. 전에는 정부와 여당이 손을 잡고 야당을 경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같은 공식이 많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참여정부 이후 정부에 자료를 요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박지원, 박영선 의원실 관계자들은 “천 후보자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을 때 정부 부처에서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원과 보좌관들이 모두 현장을 뛰며 정보를 캐냈다”고 말했다.
국회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원성이 높다. 여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신들의 치부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불편하겠지만 가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야당은 그렇다 쳐도 여당이 요청하는 자료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 어쩌란 말이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자료 요청을 해도 공무원이 자물쇠를 채우니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며 “여러 가지 자료 준비에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정부로부터 ‘지원’이 힘들어지면서 의원 개개인의 역량이 총동원되고 있다. 천 전 후보자의 중도 낙마는 의원의 정보력이 얼마냐에 따라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천 전 후보자 낙마의 결정적인 요인은 세세한 자료를 면전에 들이민 민주당 소수정예 의원들의 활약에 있었다. 특히 박지원 의원이 가진 정보가 큰 역할을 했다.
박 의원은 천 전 후보자와 그가 신사동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15억5000만원을 빌린 사업가 박모씨의 관계를 집중 해부했다. 극비리에 입수한 입출국 자료를 바탕으로 2004년과 2008년 일본으로 부부 동반 여행을 다녀온 사실을 밝힌 것. “같이 간 기억이 없다”는 천 전 후보자의 거짓 해명은 낙마의 결정타가 됐다.
또한 천 전 후보자 부인이 호화 명품 쇼핑을 즐긴다는 것을 알아내 집중 추궁했다. 천 전 후보자 가족의 면세품 구입 리스트를 낱낱이 공개하면서 “후보자 부인이 명품 속옷을 산 자료까지 입수했는데 관세청에서는 거짓 자료를 줬다”고 하는 박 의원에게 여권 의원들도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박 의원은 이외에도 천 전 후보자 아들의 호텔 결혼식과 위장전입까지 알아내 그의 정보력을 실감케 했다.
인사청문회 뒤에도 박 의원의 정보력은 여전했다. 박 의원은 지난달 17일 “어제부터 국정원과 검찰에서 본격적으로 (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면서 “내 주위에서 누가 어떻게 제보를 했는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방해하는 것은 민주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자리를 빌어 국정원과 검찰이 이러한 못된 짓을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천 전 후보자의 의혹을 캐낸 ‘실력’뿐 아니라 자신을 향한 조사에도 민감하게 반응, 진정한 ‘정보통’의 면모를 드러낸 것.
박 의원의 정보망에 대해서는 민주당 의원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2인자로 불리면서 각계에 쌓아둔 인맥이 상당하며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추측만 할 따름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박 의원은 당내에서도 ‘정보통’으로 유명하다. 국민의 정부 시절 거미줄처럼 연결해둔 정보원들이 각계에 걸쳐 있으며 이와 관련한 부분은 다른 의원들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할 정도로 소리 소문이 없다”면서 “당내 의원들도 출신에 따라 독자적인 ‘정보망’을 가지고 있지만 박 의원에 비하면 손색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뜨는 정보통 의원
과거엔 ‘정권 실세’
실제 인사청문회에서 천 전 후보자의 발목은 잡은 정보들은 보좌진들도 모르는 사이 취합됐으며 인사청문회 하루 전에야 보좌진에게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가 한 인사는 “정확한 정보는 그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전·현 정권 실세들에게 몰리지 않겠느냐. 검사가 파견된 청와대 민정라인조차 잡아내지 못한 ‘결함’을 속속 찾아내는 실력이나 인맥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라며 박 의원 외 민주당 몇몇 의원을 ‘실세’로 거론했다.
실세는 아니지만 정보를 쉽게 접했던 부처 출신 인사들도 각 당에서도 ‘알아주는’ 정보통으로 불렸다. 15대부터 17대 국회에서 ‘정보통’으로 날렸던 정형근 전 의원이 그렇다.
18대 총선에서 낙천된 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 전 의원은 출신 부처가 ‘정보’에 빠삭했다. 그는 1983년부터 1995년까지 안기부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각계의 민감한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정확하게 접했다.
18대 국회에서는 이철우 의원이 그 맥을 잇고 있다. 이 의원은 국회 내 유일한 국정원 출신이다. 1985년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에 입부한 뒤 국회 정보위 등에서 활동해 왔으며 경상북도 정무부지사를 거쳐 18대 국회에 등원했다. 북한 군부 등 북한 동향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평이다.
이 의원이 한나라당 간사로 활동하고 있는 국가정보원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보위에는 여야 정보통들이 포진하고 있다. 최병국 상임위원장을 필두로 한나라당 김효재 안상수 이철우 이해봉 정몽준 정진섭, 민주당 박영선 박지원 송영길 이강래, 창조한국당 문국현 의원이 포함돼 있다.
정보 모이는 곳에서
‘정보통’ 나오더라
정치권은 “정보위에는 최고의 정보통들이 모여 있다”며 “18대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도 하나같이 난다 긴다 하는 여야 정보통”으로 꼽았다.
의원들의 ‘정보 라인’에 대해 여당 한 관계자는 “의원들마다 정보를 듣는 라인이 다 다르다. 의원들의 다양한 이력이나 인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법조계나 언론 출신들은 선후배를 통해서 정보를 얻거나 취재를 했던 감각을 살려 파헤치는 데 역량을 보인다. 당시 쌓아둔 ‘취재원’들이 아직까지 도움이 된다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보좌진이나 의원실을 출입하는 기자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 다선 보좌관은 웬만한 의원 뺨 칠 정도의 실무 능력은 물론 정보력도 갖추고 있다는 것. 때문에 의원은 소식이 늦어도 ‘모 의원실 모 보좌관’은 국회에서도 손꼽히는 정보통으로 소문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의원실을 찾은 기자들에게서도 정보를 얻기도 한다. 여권 한 의원은 의혹을 제기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이 의혹의 사실 여부를 묻자 “모 언론사 기자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리 있냐”고 정보원을 스스로 털어놓기도 했다.
정가 일각에서는 의원들의 ‘정보망’과 관련, 언론사와의 관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친분 등을 통해 언론사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며 여론조사기관 등도 ‘정확한’ 정보를 위한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은 정보의 취합 만큼이나 통제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천 전 후보자의 사퇴와 관련 박지원 의원과 함께 주목받은 박영선 의원의 경우 ‘정보통제’에 일가견이 있다. 지난해 국감을 앞두고 피감기관 직원들과 중앙부처와 산하기관의 국회담당 연락관들이 박 의원의 질의서를 빼내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의원들의 대외 활동이 늘어가면서 각국에 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정보를 얻는 ‘외교통’들도 뜨고 있다.
박진 의원과 정몽준 의원은 ‘미국통’이다. 박 의원은 외교통상통일위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고 정 의원은 국회 한미 의원외교협의회장이다. 정 의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 이 대통령의 대미 특사로 미국을 다녀온 바 있으며 지난 6월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에도 수행했다.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박사인 정 의원은 오랜 미국 생활과 의원외교 활동을 통해 미국 내 정·재계에 많은 지인을 두고 있다.
‘일본통’으로 꼽히는 이상득 의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 이 대통령의 대일 특사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바 있다. 18대 국회 한일 의원연맹 한국 측 회장이기도 한 그는 일본 측 연맹 회장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과 막역한 관계이며 일본 정치인들과 친분이 두텁다.
이 의원은 지난 6월 2선 후퇴 선언에서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의원으로서 당분간 대일외교에 전념하겠다”고 밝힌 뒤 이날 저녁 곧바로 일본으로 떠나기도 했다.
김태환 의원은 국회 내 대표적인 일본통이다. 김 의원은 김윤환 전 의원의 친동생으로 김 전 의원의 지일인맥을 이어 받았다. 또한 기업인 시절 금호 일본 법인대표로 근무해 일본에 발이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에 넓은 인맥
‘외교통’들도 한가락
친박계 의원들 중에는 ‘중국통’들이 많다. 구상찬 의원은 대표적인 ‘중국통’이며 한중 의원외교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김무성 의원도 중국 경제계와 문화계에 지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 의원은 “중소기업인들이 중국으로 나갈 경우 김 의원의 조언을 많이 구한다”면서 “전·현직 주한대사인 리빈 링쿠푸이 외교관과도 친분이 두텁다”고 전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제 곧 국정감사”라며 “여야 정보통들이 꽁꽁 싸매고 있었던 ‘정보’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동안 ‘진짜 정보통’이 누구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