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후폭풍> 고개 드는 지도부교체론

2009.05.06 11:09:55 호수 0호



재보선 참패한 한나라당, 수도권 얻고 안방 잃은 민주당
커지는 당 지도부 일괄사퇴 주장 ‘조기전당대회’ 부른다

진보신당은 환호했으며 민주당은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고 한나라당은 고개를 숙였다. 지난 4월 재보선 결과에 따른 당의 표정이다. 하지만 기뻐하거나 낙담할 새도 없이 여야는 재보선 후폭풍의 중심에 섰다. 재보선 결과에 대한 당 지도부의 책임론이 급부상하고 있어서다. 한나라당에서는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물어 지도부 교체론이 제기되고 있다. 당과 청와대의 공동책임이니만큼 청와대의 인적쇄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당을 주도해온 이상득 의원은 ‘2선 퇴진론’ 압박에 당분간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 지도부 내에서는 이달 당협위원장과 원내 지도부 교체, 다음달 중순에 있을 시도당위원장 선출까지 굵직한 행사를 고려, 파장을 최소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전면 쇄신’ 주장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인천 재보선에서 승리했지만 계파 갈등과 맞물리면서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 4월29일 후 여야 지도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한나라당은 ‘0:5’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참패의 ‘책임’을 요구받고 있으며 민주당은 ‘절반의 승리’를 거뒀음에도 텃밭을 정동영 전 장관의 ‘무소속연대’에게 내어준 데 대한 질책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재보선 참패라는 낙제점을 받은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책임론에 휘말렸다. 안경률 사무총장은 “재보선을 총괄 지휘한 사무총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책임지겠다”는 말로 사의를 표했다.

여야 지도부 같은 처지
무소속에 밀려 물러날 판

재보선 기간 내내 노구를 이끌고 인천으로 경주로 지원유세에 나섰던 박희태 대표도 “국민이 내린 채찍으로 생각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면서 “서정쇄신, 즉 정치의 폐단을 고쳐 새롭게 하고 경제 살리기에 신명을 바쳐 국민에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올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등을 거론하며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국정에 잘못이 있으면 총사퇴했는데 이것이 몰락하는 계기였다. 지도부가 패배에 연연해선 안 된다. 민심을 겸허히 수용하고 심기일전해서 국정쇄신을 할 때”라며 지도부 책임론을 사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정몽준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은 관료집단도 아니고 엉성한 친목단체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비난과 함께 “지도부가 전부 사퇴하자고 하면 무책임하다고 할 것이고 그렇다고 대안이 없다고 하면 더욱 심각하다. 이는 당이 무기력하고 스스로 개혁할 능력이 없다는 얘기로 최악의 상태”라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책임론과 함께 사실상 한나라당 중심에서 당 운영을 주도해온 이상득 의원의 ‘2선 퇴진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이 의원은 “앞으로 당 현안과 관련해서는 당이 중심이 돼야 한다”면서 정치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났다. 이 의원측 관계자는 “앞으로 당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재보선은 퇴색되기는 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중간 평가의 의미가 있었던 만큼 수도권에서까지 패한 데는 청와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당청간 공동책임론이다.
청와대는 “지역선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후폭풍의 여파 차단에 골몰하고 있지만 이미 당 안팎에선 개각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은 여당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겠지만 곧 청와대의 인적쇄신 요구가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굿 보고 떡 먹은 친박계
여권 권력지형도 수정 나선다

침통한 한나라당 내에서 친박계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당 분위기상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친박계 정수성 전 육군대장의 경주 재보선 승리로 박근혜 전 대표의 영향력이 재확인되고 당내 기반을 넓힐 기회를 얻는 등 쏠쏠한 재미를 봤기 때문이다.

당 한편에서는 당 지도부 교체과정에서 친박계를 중용, 화합을 도모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으며 이달 있을 차기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박계 좌장인 김무성 의원을 선출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이들의 ‘기’를 살려주고 있다.

한나라당의 텃밭인 부산·울산·경남(PK) 정치권의 권력 지형도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달에는 당 지도부가 재보선 후로 미뤄놓은 당협위원장 교체가, 다음달에는 전국 16개 시도당위원장 교체가 예정돼 있다.
친이계 원외 인사들이 맡고 있는 당협위원장을 현역 의원들의 손에 맡긴다는 당 지도부의 방침대로라면 부산의 김무성과 유기준·이진복·유재중·김세운 의원과 울산의 강길부 의원, 경남의 최구식 의원까지 친박계와 중립성향 의원이 PK를 차지하게 된다.

시도당위원장도 일부를 제외하곤 경선없이 ‘합의추대’돼 온 전례에 따르면 부산과 울산은 재선인 유기준 의원과 강길부 의원이 유력시되고 있다. 유 의원은 현 김정훈 위원장의 뒤를 잇게 되고 강 의원은 같은 재선인 김기현 의원의 양보로 시당위원장을 맡게 된다. 경남에선 안홍준·최구식·김정권 의원이 물망에 올랐다.

한 정치분석가는 “당협위원장 및 시도당위원장은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와 전당대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자리”라면서 “친박계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이어 “이번 재보선을 통해 박 전 대표의 위상이 다시 한 번 확인되면서 친박의 세 확장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며 “내년 지방선거와 차기 총선을 염두에 둔 여권 인사들은 ‘박근혜의 우산’을 절실하게 원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민주당 절반의 승리
‘지도부 심판론’ 몰매


사정이 여의치 않기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인천 부평을과 시흥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구명줄을 마련했지만 ‘책임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전주 재보선 2곳을 모두 무소속 후보에게 빼앗겼다.

당 지도부가 공천 배제를 결정,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한 정동영 전 장관뿐 아니라 그가 손을 내민 신건 전 국정원장까지 전주에서 민주당 후보를 이기면서 당 비주류 일각의 지도부 책임론 주장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종걸 의원은 정동영-신건 당선에 대해 “그것은 현 지도부에 대한 심판”이라며 “그냥 당선이 아니고 70%, 50%가 넘는 득표를 했다. 전주의 민심은 정동영을 밀어서 정세균 지도부를 탄핵한 것이다. 정기국회 이전에 조기전당대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조기전당대회 개최를 주장했다.

당 지도부는 수도권 수성으로 당내 비판을 방어하고 있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정 전 장관에 대한 공천 배제를 언급하며 “수도권 선거에서 그래도 민주당을 지지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당의 방침을 거부하고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나오고 또 무소속 연대까지 해서 당선된 분이 ‘나 이겼으니까 돌아가겠다’라고 했을 때, ‘아, 그러십시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모신다면 과연 국민 눈에 공당으로 보이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인천 부평을이란 수도권 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정세균 대표 체제가 힘을 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인천 재보선은 선거기간 내내 당 대표가 상주하고 김근태 고문과 손학규 전 대표 등 거물급들이 총출동하는 등 ‘총력전’으로 펼쳐지지 않았냐”면서 “민주당의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전주에서의 패배는 집토끼들이 민주당에게서 고개를 돌렸다는 뼈아픈 충고를 던진다”고 말했다.

이들은 “‘반쪽 승리’를 거둔 당 주류가 비주류의 공세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분당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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