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보선 막후에 선 이상득, 친박계 후보 사퇴 종용
칼 빼든 박근혜, 당 후보는 ‘나몰라라’ 친박 껴안기
한나라당 친이, 친박계의 대리전으로 주목받고 있는 경주 재보선이 후끈 달아올랐다. 한나라당 공천 확정과 동시에 친이계와 친박계가 조심스레 내밀었던 손을 빠르게 거둬들이고 정면승부에 나섰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대구를 찾은 자리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친이계 정종복 전 의원의 지원요청에 묵묵부답으로 밀쳐냈다. 게다가 이상득 의원이 친박 정수성 전 대장에게 사퇴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지며 계파갈등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영원한 동맹은 없었다. 한동안 ‘맑음’이었던 한나라당 친이계와 친박계가 경주 재보선을 두고 격돌했다.
친박계와 잇따른 회동을 통해 ‘친밀감’ 조성에 나섰던 이상득 의원과 지난달 20일 예정됐던 경주행을 취소, 측근인 정수성 전 대장의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불참하는 것으로 당 화합을 위한 제스처를 취했던 박근혜 전 대표. 이들 사이는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갔다.
친이·친박 ‘춘래불사춘’
경주 재보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수성 전 대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3월29일 이상득 의원으로부터 이명규 의원을 만나보라는 연락이 왔다”며 “이명규 의원은 이번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 사퇴를 권유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명규 의원의 사퇴 권유는 곧 자리를 주선한 이상득 의원의 뜻으로도 풀이돼 ‘막후에서 선거에 개입했다’는 논란을 불렀다.
이상득 의원은 “내가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쪽에서 먼저 보자고 요청을 해 사람을 보낸 것”이라며 “이명규 의원이 사퇴를 압박한다고 육군대장 출신한테 압박이 되겠냐”며 정 전 대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 정치의 수치”라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이 의원을 비롯한 친이계를 겨냥했다.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의 ‘꽃피는 4월’은 온데간데없고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은 4월’이 도래한 것이다.
정치분석가들은 이에 대해 ‘예고된 파워게임’이라는 반응이다. 이들은 “이 의원은 대통령의 친형으로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고 박 전 대표는 그동안 ‘대접’받지 못한 울분이 쌓인 상태”라며 “계기가 있으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고였다”는 설명이다.
특히 경주 재보선은 친이계와 친박계의 주도권 대리전으로 펼쳐지고 있는데다 갈등이 표출될 만한 요소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박 전 대표에게 잘 보여라”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정종복 전 의원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친박계를 향한 공천 칼날을 휘둘렀던 ‘공천 파동’의 주역으로 친박계에게는 ‘공적’으로 불렸다.
안경률 사무총장은 국회의원 재보선 공천을 발표하며 “보름 전에는 정 전 의원과 무소속 정수성 후보간 격차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최근 권위있는 여론조사 기관 2곳에서 1주일 단위로 조사한 결과, 정 전 의원이 훨씬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고 정 전 의원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경주 재보선의 열쇠는 박 전 대표가 쥐고 있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일관된 반응이다.
실제 지난 18대 총선에서 정 전 의원은 한나라당 실세 중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박을 표방한 김일윤 전 의원에게 패한 바 있다. 때문에 정 전 의원은 지난달 30일 대구에서 열리는 토론회에 박 전 대표가 참석한다는 소식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박 전 대표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다.
그는 박 전 대표의 반응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단호했다. “아뇨. 한 얘기 없다”며 싸늘하게 잘라낸 것. 심지어 정 전 의원이 박 전 대표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기자들이 카메라에 담으려하자 “사진 같은 것 찍지 마시라”고 밝힌 뒤 악수만 나눴다.
정 전 의원과의 사진이나 그를 격려하는 발언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 정 전 의원이 당이 정한 후보임에도 싸늘하게 내친 것이다. 이는 또한 박 전 대표가 정 전 대장이 그의 사진을 선거에 대대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몸은 ‘한나라당’에 있지만 마음은 ‘한나라당 후보’에게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의 지지모임인 박사모의 정광용 회장은 “한마디로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 같다”며 “박심을 구걸하러 갔다가 퇴짜를 맞은 셈”이라고 비꼬았다. 또한 “박심은 정수성 후보한테 가있는 것으로 이미 증명이 됐다”고 말했다.
정 전 대장도 “현재 박 전 대표가 단지 당이 달라 직접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 박심이 빠진 것이 아니다. 경주는 당은 한나라당을 택하고 사람은 박근혜를 택하는 것이 정서”라고 강조했다.
‘정수성 효과’ 노림수
친박계는 박 전 대표의 ‘일갈’이 재보선에 자신을 ‘이용’하려는 이들에 대한 경고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행보에 대해 정치권은 경주 재보선에서 친박 후보에 대한 암묵적인 지원 의사를 표시하는 것뿐 아니라 친박 후보의 당선과 한나라당 입당을 통해 ‘박풍’을 확인시키고 당 내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는 등 다양한 해석을 제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