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탈모의 계절이다. 사시사철이 늘 그렇지만 봄철은 특히 ‘빛나리’들에게 불안한 시기다. 매년 이맘때 극성인 황사의 미세먼지와 환절기의 춥고 건조한 공기가 모발과 두피를 자극시켜 탈모를 부추긴다. 여기에 불청객인 산성비까지 들이닥치면 그야말로 치명타다. 머리숱이 적은 탈모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돈 많은’ 기업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치료법이 없어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경기 침체로 심한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재계 CEO들의 휑한 머리숱에 비상이 걸렸다.
탈모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국내 탈모인구는 전체 국민의 5분의 1인 100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그 대상도 ‘아저씨’만의 전유물이 아닌 어린이부터 학생, 여성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경계선이 사라진 탓이다. 이쯤 되자 탈모시장 규모도 2조원에 육박한 상태다.
국내외에서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유전적인 문제가 대머리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또 남성호르몬의 과다분비와 모발·두피를 손상시키는 외부 환경적 요인도 탈모의 주된 원인이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후천적인 이유로 대머리들에게 스트레스만 한 ‘공공의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인들이 요즘 부쩍 탈모로 고민하고 있다. 본디 CEO란 자리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외로운 위치에 있는 만큼 불황기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많이 받는다.
실제 최근 재계엔 머리숱이 적어지는 증상을 호소하는 CEO들이 늘고 있다는 후문이다. 나아가 머리카락이 ‘빠진데 더 빠지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재계에서 대표적인 ‘빛나리’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은 기름을 발라 깔끔하게 뒤로 빗어 넘긴 ‘올백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약점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부각시켜 당당하게 개성으로 굳혔다.
1981년 고 김종희 창업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29세의 나이에 그룹 지휘봉을 잡으면서 ‘어린 총수’로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기 위해 실제보다 나이를 더 들어보이게 하려는 의도에서 선택한 이 헤어스타일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김 회장은 회장직에 오른 초창기 ‘2대8 가르마’를 고집하다가 머리숱이 점점 빠지면서 올백 스타일로 전환했다. 그의 부친 김 창업주도 생전 머리숱이 적긴 했지만 완전 대머리는 아니었다. 김 회장의 탈모가 유전적 요인과 후천적 원인이 복합된 것으로 진단되는 까닭이다.
사실 김 회장이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이유는 원래 곱슬기가 있기 때문. 2007년 ‘보복 폭행’혐의로 재판장에 선 그의 초췌한 모습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부분은 엉클어진 곱슬머리였다. 당시 변호인 측은 김 회장의 구속집행정지를 재판부에 요청하면서 “김 회장의 건강이 심각할 정도로 악화돼 ‘탈모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봄철 황사 등 모발·두피 자극 탈모 부추겨
불황 스트레스 겹치면서 ‘CEO 머리숱’비상
김 회장의 머리스타일은 카리스마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지나친 권위주의로도 비춰진다. 보복 폭행 사건 때 일반인들이 쉽게 ‘보스 이미지’를 연상한 것도 바로 올백으로 넘긴 머리 때문이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재계의 ‘원조 민머리’다. 일찌감치, 그것도 시원하게 이마가 드러난 것. ‘영일만의 기적’을 이룬 박 명예회장은 1968년 포스코(옛 포항제철) 초대 사장으로 취임할 때도 아슬아슬(?)한 ‘M자형’이었다. 당년 41세였다.
M자형 탈모는 양 이마 부분의 머리숱이 적은 형태로 일반적인 남성형 탈모증이다. 전문가들은 처음엔 양 이마 부위에서 빠지기 시작해 점차 정수리도 탈모가 함께 진행되면서 전반적으로 탈모가 일어나는 복합형으로 발전한다고 조언한다.
박 명예회장도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피 속살을 완전히 드러냈다. 이런 이유로 그 역시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항간에선 전두환 전 대통령과 외모가 비슷해 친인척이 아니냐는 우스개도 있었다. 올해 82세인 박 명예회장은 젊은 시절 애용하던 ‘포마드’를 지금까지 머리에 바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하면 아직 한창인 나이에 슬슬 낌새가 보이는 기업인도 있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다. 올해 39세인 정 사장은 1995년 결혼할 때만 해도 고민할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2005년 기아차 사장으로 승진할 때까지도 그랬다. 자연스런 헤어스타일을 연출할 만큼 머리숱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사정은 다르다. 정 사장은 지난 2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명동 성당을 찾아 조문했는데 언론의 카메라에 잡힌 그의 외모는 몰라보게 진행(?)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정수리 부분에서 전체적으로 머리숱이 빠지는 전형적인 ‘O자형’으로 진단한다.
그나마 다행스런 점은 집안에 대머리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정 사장의 조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약간 듬성듬성한 편이었지만 벗겨진 머리는 아니었다. 그의 부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도 올해 71세치고 머리숱이 풍성한 편이다.
아예 공개적으로 ‘모발이식’을 고해성사한 CEO도 있다. 지난달 25일 퇴임식을 가진 이화언 전 대구은행장이 주인공.
올해 64세인 이 전 행장은 2005년 여름휴가를 이용해 모발이식 수술을 받고 나타나 임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기존에 없던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수북하게 재생된 탓이다. 이 전 행장의 모발이식은 2000여 가닥의 뒷머리를 앞으로 옮겨 심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전 행장은 이런 과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머리카락을 심은 사실을 알려 화제를 모았다.
이 행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모 병원장의 권유로 수술을 받았다”며 “처음엔 거절했지만 조금이나마 젊고 건강해 보이면 은행 영업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머리숱 정성’ 정치인은?
부풀리거나 흑채 뿌린다
정치권에서도 유독 머리스타일에 정성을 쏟는 이들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대통령의 헤어는 ‘빛나리’들 사이에서 늘 화제다. 과거보다 머리숱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시중엔 이를 노린 제품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MB표 흑채’가 그것. 장사꾼들은 “대통령이 쓰는 흑채다. 대통령이 젊어지는 비법”이라며 대머리들을 자극하고 있다.
항간엔 이 대통령이 모발이식을 했다는 소문까지 있다. 하지만 지난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의 스타일리스트는 “머리숱이 많아 보이는 이유는 스타일 변화에 있다”며 “머리숱을 보완하기 위해 칼로 자른 듯한 가르마 대신 볼륨 있는 헤어스타일로 변형을 줬다”고 말한 바 있다.
숱이 적은 이 총재도 머리에 많은 신경을 쓴다. 이 총재는 머리숱을 보완하기 위해 백발을 진한 갈색으로 염색하는가 하면 간혹 머리에 ‘흑채’까지 뿌리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