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실종되고 싶은 어른들

2009.03.31 10:39:17 호수 0호

새장에 갇힌 새가 하늘로 날아가듯…

성인 가출이 청소년 가출의 3배를 넘어서고 있다. 그간 가출은 불량청소년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청소년의 숫자보다 더욱 많은 성인들이 가출을 하고 있다. 경찰청의 통계는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 해 가출자의 약 70%가 바로 20~30대 성인이다. 가출 동기는 다양하다. 기본적으로는 부부간의 불화가 절대적인 이유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 불륜, 배우자의 무책임, 가정폭력 등이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가정불화의 원인과 결과가 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른 이유라고 보기는 힘들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성인 가출의 현실을 집중 취재했다.


성인 가출은 경기 불황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IMF 당시에도 가출자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다시 이런 조짐이 생겨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하루에 33명, 한 달이면 1000명에 가까운 성인들이 집을 떠나 거리를 헤매고 있다.
사실 성인 가출의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가정불화다. 경제적인 문제의 경우 카드나 사채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 이상 집에 거주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독촉전화와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일단 피하고 보자’는 부류다.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느니 모든 것을 자신이 떠안고 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일시적인 가출은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되고 다시 원래의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두 번째는 가정불화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지 남녀가 싸운 뒤 서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각각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출은 대부분 충동적으로 이뤄진다. 한번 시작된 사소한 싸움이 점점 자존심 대결의 양상으로 번지게 되고 결국 서로 꺾을 수 없는 자존심으로 인해 누군가 한쪽이 집을 나가게 되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하루에 가출하는 인원은 33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파악된 숫자’에 불과하다. 이 숫자는 가족 중의 한 명이 가출을 경찰서에 신고한 경우다. 따라서 파악되지 않은 숫자까지 합하면 그 두 배가 넘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부부싸움으로 인한 가출의 경우 신고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아 오히려 신고 되지 않은 가출 건수가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남성관련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요즘은 가출이 유행’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만큼 많은 성인들이 가정을 등지고 거리로 향한다는 얘기다.
가출을 감행하는 시점에서의 상황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본인 스스로 집을 나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배우자에게 끊임없이 시달려 자신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자가 적극적인 가출이라면 후자는 수동적인 가출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집을 쫓겨나다시피 가출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여자만이 남자에게 맞으며 살다가 집을 나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최근에는 아내의 폭력에 시달리는 남성도 많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무능력 때문에 아내에게 지속적으로 시달리고 폭행을 당하다가 어쩔 수 없이 도망치듯 나가는 경우가 그렇다.
그렇다면 가출한 이후 이들은 과연 어디로 발길을 향하는 것일까. 이는 남자와 여자가 극명한 대립을 이룬다.
남자의 경우 다소 경제력이 있다는 점에서 홀로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을 얻어 살아가는 경우도 있고 그것이 아니라면 고시원에서 지낼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본가나 친구 집도 가능하다. 그나마도 불가능할 때에는 차라리 차안에서 자거나 PC방 등에서 전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자의 경우 좀 다르다. 당장 집을 얻을 돈도 많지 않거니와 중년 여성이 고시원에서 혼자지내는 것도 쉽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 찜질방을 전전하거나 혹은 친구 집, 친정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혼자 모텔에서 투숙하는 것도 쉽지 않다. PC방에서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심지어 일부 여성들은 가출 후 찜질방에서 지내는 여성을 판별하는 법까지 알고 있을 정도다.
친구들과 찜질방에 자주 간다는 K여인은 스스로 ‘눈치가 빠른 편’이라고 하면서 “찜질방에 자주 가면 그냥 잠깐 쉬러 온 건지, 아니면 그곳에서 아예 생활을 하는 건지 딱 알아챌 수가 있다”고 자신했다.
그녀는 “외모가 후줄근하면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남편과 다툰 경우가 많고 반반하게 생겼으면 끼를 부리다가 불륜에 빠져 집을 나온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도 금방 표시가 나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가출 후 생활을 영위해나가는 방법에서도 남성과 여성은 판이한 차이를 보인다. 남성은 원래의 직장이나 직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지만 느닷없이 길거리로 뛰어나온 여성이 할 일은 많지가 않다. 식당에서의 일거리라도 얻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수입이 적다보니 대부분의 여성들이 노래방 도우미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가정불화의 한 요인인 ‘불륜’으로 인한 가출도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불륜을 저질러도 본격적인 가출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명 새로운 양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이러한 불륜으로 인한 가출의 경우 평소에 겉으로만 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하루 33명, 한 달 1000명 가까운 성인 거리 헤매
부부 불화부터 경제적 문제, 불륜, 가정폭력 다수


최근 느닷없는 아내의 가출을 경험해봤다는 J(직장인)씨는 “정말로 이런 일이 생길 줄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면서 “그간 아내와 심하게 다툰 적도 없었고 내가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남들보다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남들보다 못한 것도 없었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J씨는 이어 “그런데 아내는 느닷없이 집을 나가 들어오질 않았다. 한참을 찾아 돌아다녀도 아내의 행방을 찾기는 힘들었다. 다분히 의도적이고 오랫동안 계획을 한 가출처럼 생각된다”고 성토했다.
자영업자 G씨는 불륜으로 가출한 아내를 찾다가 거의 폐인의 지경에 이른 경우다. G씨는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아차린 후 몇 번의 큰 다툼이 있었다. 하지만 불륜을 알고도 싸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쨌든 나는 아내를 용서하려고 했다. 물론 그 이후 관계가 서먹서먹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G씨는 이어 “하지만 어느 날 아내는 집을 나가버렸고 어떤 남성과 동거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현재 아내가 국내에 있는지 외국에 있는지조차 알기 힘들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한숨만 나올 뿐이다”라고 자조했다.
이렇게 싸움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가출의 경우 아내의 ‘자아실현’ 욕구가 강하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그간 가부장적 구조에서 고통 받다 어느 순간 훌쩍 떠나버린 후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과거 이러한 일이 많았다. 시장을 보러 간다고 나간 후 영원히 소식이 끊기거나 직장에 아무런 일 없이 출근한 뒤 그 뒤로 연락이 두절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기존의 삶에 지친 상태에서 스스로 모든 인연을 정리한 뒤 새롭게 살아가려는 부류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새장에 갇혀있던 새가 어느덧 그 문을 열고 푸른 창공을 향해 마음껏 날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고 해도 가출은 용서될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책임과 의무를 지지 않은 ‘이기적인 결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렇게 한번 가출을 경험한 사람들의 경우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는 무척 힘들다고 한다. 특히 그간 육아와 가사라는 무거운 의무를 다해왔던 여성으로서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를 꺼리는 경향마저 보인다. 한마디로 ‘물이 달라졌다’는 것이 그녀들의 생각이다.
6개월 전에 가출을 해 노래방 도우미 생활을 하고 있다는 Y씨는 “도우미를 하다보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처음 한두 달 이 생활을 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실패한 가출’을 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과거의 생활을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Y씨는 이어 “남편 뒤치다꺼리 하랴, 아이들 키우랴, 이게 보통 힘든 일인가. 그저 그냥 이렇게 혼자 벌어 혼자 쓰는 생활은 ‘자유로운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고 단정했다.
그녀는 또 “물론 노년에 대한 두려움도 없진 않지만 아직 현실적으로 닥치지 않은 문제라 그리 신경 쓸 여유가 많지는 않다. 어쨌든 일단 이렇게 한번 ‘맛’을 들이면 다시 재혼을 하거나 남의 아이 육아를 떠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이렇듯 성인 가출은 완전한 가정 해체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녀들의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성인 가출에 대응해 자녀들의 안전과 교육을 위한 사회적인 시스템이 하루 빨리 정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성인 가출이 스스로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모 여성 포탈사이트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가출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체의 97%가 ‘있다’고 답하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가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상당수의 여성들은 가출에 대한 나름대로의 ‘로망’까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