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쿨하게 한지붕데이트 할래?”

2009.03.10 10:41:55 호수 0호

불황 속 ‘新동거’ 풍속도

경기불황으로 생활비·데이트비용 아끼려 동거
개강으로 방 구하기 어려운 대학가도 동거 열풍



결혼의 예행연습쯤으로 굳어지고 있는 동거문화. 더 이상 동거는 ‘노는 애들’의 불장난도, 드라마의 자극적인 소재도 되지 못한다. 숨어서 만남을 가져야 하는 불륜커플의 도피처란 부정적인 시각도 사라졌다. 특히 불황속에서 동거는 데이트비용과 생활비를 줄이면서 연인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는 합리적인 연애방법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동거도 결혼과 마찬가지로 엄연한 현실이다. 이로 인해 상처를 받는 커플도 적지 않다. 현재 동거를 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 동거생활의 실체를 들어봤다.

충북 청주 소재 모 대학에 재학 중인 이모(22·여)씨. 지난 2년간 혼자 자취생활을 했던 이씨는 이번 학기부터 룸메이트가 생겼다. 지난해부터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 서모(22)씨와 동거생활을 시작한 것.

이씨와 마찬가지로 서울이 집인 서씨는 지난해까지 이씨의 자취방 근처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5분 거리의 가까운 곳에서 따로 살았던 이들 커플이 동거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은 교제를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였다. 대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숱하게 동거커플을 봐 온 그들에게는 동거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마트에 온 젊은 부부
알고 보니 동거 커플

이씨는 “1학년 때 학교 근처 할인마트에 갔는데 유독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많아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동거하고 있는 대학생들이었다”고 말했다. 객지에서 홀로 자취생활을 하는 그에게 그들의 모습은 무척 행복해 보였고 점점 동거생활에 대한 환상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씨가 살던 원룸 건물 안에서도 동거하는 커플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씨는 “옆집에서 함께 사는 남녀가 담소를 나누거나 저녁준비를 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나도 남자친구가 생기면 동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씨에게 남자친구가 생겼고 사랑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레 살림을 합치자고 합의를 본 것. 이들 커플이 둥지를 튼 곳은 이씨가 살던 원룸이라고 한다. 지난 2월 청주로 내려 온 이들 커플은 꿈에도 그리던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원룸 월세와 식비 등 생활비는 정확히 반으로 나눠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이씨는 “부모님께 받는 월세 가운데 절반이 남고 생필품 등을 사는 데 드는 돈도 줄어들 것으로 보여 쓸 수 있는 용돈이 늘어날 것 같다”며 동거를 통해 부수입이 생길 거란 기대감을 드러냈다.

물론 부모님에게는 동거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동거에 대해 비교적 담담한 입장을 가졌지만 부모님에게 말할 용기까지는 없었던 것. 더구나 지난 겨울방학, 동거와 관련된 케이블방송을 함께 보다가 동거에 대한 부모님의 부정적인 생각을 알게 되면서 몰래 동거를 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씨는 “부모님에게 죄책감은 들지만 나쁜 짓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이야기를 꺼냈다간 쓸데없는 걱정에 노심초사하실까봐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씨에게도 불안감은 있다. 행여나 소문이 나서 혼삿길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지, 원치 않는 임신이 되지는 않을지,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될 때 복잡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등의 고민이 늘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단다.

이 같은 현실적인 고민들로 인해 동거를 시작하는 것을 꺼리는 이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혼전동거 자체를 ‘나쁜 짓’으로 규정하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동거에 대한 생각이 자유로워진 것도 사실이다.

이는 각종 통계조사로도 여실히 나타난다. 한 언론사가 전국 20개 대학 소속 대학생 2000명을 대상으로 혼전동거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사랑한다면 가능하다는 답이 33%, 결혼이 전제되면 가능하다는 답이 41%로 나타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74%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 적령기인 30대 남녀의 경우 혼전동거를 더욱 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재혼정보회사 두리모아가 ‘혼전 동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30대의 57%가 찬성한다고 대답한 것. 이는 30%정도가 찬성의 의사를 밝힌 40~50대 등 윗세대들의 찬성비율보다 크게 웃도는 결과다.

데이트비용 절약
신혼재미는 덤으로


최근에는 좀 더 현실적인 이유로 혼전동거를 택하는 커플들이 늘고 있다. 계속되는 경기불황이 만들어낸 ‘생계형 동거커플’이 그들이다. 물론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지만 그 이면에는 데이트비용이라도 아껴보자는 ‘실사구시’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직장인 정모(30)씨 역시 경제적 이유로 동거를 택했다. 정씨 커플이 동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것은 지난 연말이었다. 3년간 교제하면서도 동거를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던 그가 진지하게 동거를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돈’때문이었다.

월급 빼고는 모든 것이 오르는 현실은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마음껏 데이트마저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치솟는 기름 값 걱정에 드라이브도 마음 놓고 즐기지 못했고 좋아하던 여행도 그 횟수가 줄어만 갔다. 영화보고 식사를 하는 평범한 데이트만으로도 10만원이 훌쩍 날아가곤 했으니 그야말로 ‘나가면 돈’이었다.

결국 정씨 커플이 가장 자주 들린 데이트 장소는 모텔이었다. 숙박비만 내면 최소 12시간은 걱정 없이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저렴한 데이트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시 몰래카메라가 있지는 않을지, 아는 사람과 맞닥뜨리지는 않을지 등의 불안감에 점점 숙박업소를 꺼리는 여자친구로 인해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이들 커플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동거생활. 3년 후에 하기로 한 결혼생활의 예행연습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이들은 일사천리로 동거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회사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원룸이 이들의 보금자리. 보증금은 여자친구가, 월세는 정씨가 내기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정씨는 “데이트 비용을 아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동거생활인데 신혼재미까지 미리 느껴볼 수 있어 식었던 애정도 다시 샘솟아 일거양득인 셈”이라며 “생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갈등으로 다투기도 하지만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면 한번쯤 해보는 것도 좋은 것이 동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동거커플들이 정씨처럼 핑크빛으로 물든 동거생활을 하지는 않는다. 혼인신고서에 도장만 찍지 않았을 뿐 동거도 결혼과 마찬가지로 남녀가 만나 생활을 하는 것인 만큼 수많은 갈등이 생기는 것.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다. 많은 동거커플들은 ‘동거도 결혼과 같은 현실’이라며 경제적 갈등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고 입을 모은다.

여자친구와 동거를 했던 직장인 김모(27)씨는 지난달 여자친구와 따로 살기로 합의를 봤다.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처음 여자친구와 한 집에서 살 때는 달콤하기만 했다. 썰렁했던 자취방에 자신을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매번 여자친구를 집까지 데려다 줘야하는 불편함이 사라진 것도,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잠들고 함께 눈 뜨는 것도 좋기만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여자친구와의 알콩달콩한 재미도 돈 앞에서는 무뎌졌다. 돈 문제가 사사건건 걸림돌이 되자 사소한 일도 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동거를 하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마저 바뀌었다”고 토로한다. 이런 것이 결혼생활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한다.

동거에 대한 환상에 빠져 섣불리 시작했다가 각종 피해와 상처를 입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약 6개월간 동거생활을 하다 최근 남자친구와 결별한 최모(26·여)씨는 다시는 남자와 동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TV따라 동거했다가
몸도 마음도 상처입어

최씨가 동거했던 남성을 알게 된 것은 8개월 전. 이들은 온라인게임에서 만나 ‘번개’를 통해 만났고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을 가지다 자연스레 교제를 시작한 그들은 만난 지 2개월이 됐을 때 동거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동거는 대수롭지 않았다. 최씨는 “온라인게임에서 만난 커플들이 동거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사이버상에서 아바타들이 동거하거나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일부 커플들이 사이버와 현실을 연계해 동거생활을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동거 장소는 최씨의 자취방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동거생활은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다. 서로의 성향이나 성격 등을 알아볼 틈도 없이 섣불리 동거를 시작한 탓에 사사건건 시비가 붙었기 때문이다.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부터 화장실 사용, 성생활까지 모든 것이 맞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이들이 갈라서게 된 이유는 동거남에게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된 것. 동거남은 3년간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겼고 뒤늦게 남자친구의 동거생활을 알게 된 여자친구가 최씨의 집을 찾아오면서 6개월의 아슬아슬한 동거생활은 끝을 맺었다.

최씨는 “환상속의 동거생활만을 꿈꾸다 섣불리 시작한 동거생활이 이런 피해를 가져다 줄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여성의 경우 임신에 대한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는 갈등요인이다. 현재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는 대학생 서모(21·여)씨는 성관계를 할 때마다 행여나 임신이 될까봐 조마조마하다고 한다. 여러 가지 피임을 하고는 있지만 불안감을 떨치기엔 역부족이라고.

서씨는 “남자친구는 임신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가끔 억울할 때가 있다”며 “이래서 동거를 하면 여자만 손해라고 하는 것 같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동거커플이 동거한 것을 가장 후회하는 순간은 바로 이별을 해야 할 때다. 일반 커플의 경우 마음의 상처만 다독이면 되겠지만 동거커플의 경우는 집을 비우는 것부터 살림살이를 나누는 일까지 치사스런 문제가 이들을 기다리는 탓이다.

전문가들은 “TV속에 아름답게 그려진 동거생활을 보고 쉽게 동거를 결정했다가는 예기치 못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다”며 섣부른 동거생활의 시작은 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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