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계 인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친박계 허태열 최고위원을 비롯해 김무성·허원제·유기준 의원 등이 이른바 ‘영일대군’으로 불리는 이상득 의원과 지난달 21일 회동을 갖는가 하면,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간접지원을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친이-친박 간의 앙금이 불거진 후에 이 같은 행보를 취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친박계 인사들이 박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반응이다. 일부에서는 2010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대권플랜 구상을 마쳤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 간의 계파갈등이 상존하는 만큼 친박계에서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중·장기 대권플랜’을 은밀히 가동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계 인사들은 ‘여당 내 야당’ 이미지를 고수하면서 한나라당 내 비주류 속 주류로 손꼽힌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2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중진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오찬회동에서 “쟁점법안일수록 국민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직접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속도전에 찬물을 끼얹음과 동시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한때 친박계 내에서는 ‘여의포럼’ ‘선진사회연구포럼’ 모임을 매개로 친박계가 결집하는 동시에 독자적인 행보를 꾀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비록 박 전 대표의 반대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친이계에서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강력한 차기 대권후보로 일어서려 하는 의중은 여전히 깔려 있을 것”이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실제로 박 전 대표는 여의포럼 등에 참석해 민감한 정치 현안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최근 친박계 인사들의 이명박 정부를 향한 성토와 비판이 다소 소강국면으로 접어든 분위기다. 지난달 21일 이상득 의원과 친박계 일부 인사들 간의 회동 이후 화해무드가 형성되고 있는 것. 이날 모임에 참석한 친박계 인사는 “당 중진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얘기가 오갔고, 이에 대한 화답도 했다”고 밝혔다는 점을 봤을 때 이른바 ‘이상득-박근혜 연대’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일부에서는 ‘한시적’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동시에 향후 쟁점법안과 행보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는 듯하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친박계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성공을 해야 박 전 대표에게 차기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만큼 이명박 정부를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일까.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를 측면 지원하는 듯하면서도 중대사안에 대해서는 ‘원칙론’을 강조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근혜 중·장기 대권 플랜’의 일환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친박계 한 인사는 “이명박 정부가 실패할 경우 공동책임론이 뒤따르는 만큼 박 전 대표는 ‘원칙론’을 바탕으로 협조 또는 비협조 행보를 취할 것”이라면서도 “이는 절대 이명박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표가 차기 대권후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협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박 전 대표는 지난달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6·25 전시납북자 진상규명을 위한 법률안’ 공청회에서 “(미디어법 직권 상정에 관해) 이미 입장을 밝혔다”며 원칙론을 재확인했다. 이 역시 차기대권플랜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박 전 대표가 이명박 정부의 속도전에 무조건적 반대의사를 표명하기보다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친박계 한 인사의 말과 박 전 대표의 최근 행보가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정치권 주변에선 박 전 대표가 이 같은 행보를 취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친박계 한 인사는 “이명박 정부가 ‘경제 위기 극복’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올해에도 경제 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역시 장담 못하는 상태다. 이 때문에 2010년 지방선거와 관련해 ‘여권 패배론’이 심상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친박계에서는 홍사덕 의원을 띄울 수밖에 없다. 물론 두 가지 변수가 있다. 박희태 대표의 원내 복귀 여부가 바로 그것이다. 박 대표의 원내 진출 여부에 따라 홍 의원을 후반기 국회의장이나 당 대표로 내세울 수밖에 없다. 당내 최대선이자 6선으로서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기점으로 친박계 대반격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박근혜 중·장기 대반격 카드’로 홍 의원을 내세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 전 대표와 친박계 인사들이 지방선거를 겨냥한 카드로 사용할 만하다는 얘기다. 이른바 새로운 ‘친박계 역할론’이 대두된 셈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위기론이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가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친박계 인사들이 본격적인 당권경쟁에 뛰어들어 대반격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당권 도전설이 나도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친박계 인사들 간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친이-친박 간의 전쟁에서 승리해 당 전면에 나서겠다는 고도의 계산이 깔린 것이다.
친박계, 이명박 정부 일시적 협조체제 속 당근·채찍 겸용
2010년 지방선거 패배론 확산…책임론 앞세워 대반격 개시
그렇다면 친박계가 대반격시점을 후반기 국회의장 선거와 차기 당권경쟁이 시작되는 시기로 잡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홍사덕 카드’가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박 대표의 원내진출 여부가 변수로 작용하기도 하겠지만, 실질적으로 친박계가 당 전면에 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박 대표가 원내 진출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국회의장 후보로 이상득 의원이 거론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명박-이상득 체제’로 간다면 이명박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의원의 출마는 쉽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홍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낙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홍 의원이 국회의장에 추대된다면 ‘MB 노믹스’에 적잖은 피해가 예상된다. 게다가 친박계에선 당권경쟁에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새로운 친박 인사들을 내세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대 공천권을 암묵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비책일 뿐 아니라 차기대권플랜을 가동하는 데 있어서 당권을 꼭 쥐어야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반해 박 대표가 원내 진출에 성공한다면 홍 의원을 당대표로 내세울 수밖에 없다는 게 친박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친박계 한 인사는 “홍 의원이 국회의장이나 당대표로 거론된다면 친박계에서는 홍 의원을 절대적으로 지지할 것”이라며 “그동안 김무성 의원은 너무 강성이미를 보여, 약간의 상처를 입은 만큼 친박계 핵심인사로 분류되는 홍 의원이 거론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국 친박계에서도 홍 의원을 중심으로 권력재편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홍 의원실 한 관계자는 “현재 이와 같은 얘기가 나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당내 최다선 의원으로서 거론되는 것 같다”며 “홍 의원은 이에 대한 의사를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사실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친박계가 2010년 중·장기 대권플랜을 가동해 여권내 역학구도 및 ‘반 이명박 전선’ 형성을 위해 얼마든지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여기에 홍 의원이 전면에 등장한다면, 여권내 친이-친박 갈등이 표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위험성까지 염두에 둔 채 친박계가 중·장기 대권플랜을 본격 가동하는 것은 자칫 시기를 놓칠 경우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가 영영 없어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친박계에서 꺼내든 비장의 카드가 과연 먹혀 들어갈 수 있을까.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친박계의 전면 등장은 여권내의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정치권의 이목이 박 전 대표의 행보에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