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6·3 지방선거를 반년 앞둔 지금,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거대 양당은 거꾸로 움직이고 있다. 입으로는 민심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조직·당원·권리당원에 기대는 공천 룰을 만들고 있다.
국민의힘은 당심을 70%로 끌어올렸고, 민주당은 대의원·권리당원을 모두 1인1표로 묶어 강성 당원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정당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며 내부 정치를 하는 순간, 지방선거는 국민의 심판장이 아닌 당원 전용 경마장이 된다.
결국 문제는 단순하다. 왜 지금 여야 모두 민심을 버리고 당심에 몰두하는가. 필자는 그 답이 양당의 정치적 생존 본능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본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민심 대신 당심, 여야 모두 조직 정치로 후퇴
여야가 선택한 공천 룰 방향은 똑같다. 민심은 50%에서 30%로 밀렸고, 당심은 50%에서 70%로 치솟았다. 문제는 이 변화가 단순한 비율 조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정당 민주주의의 후퇴며,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내부 결속 정치로의 후진 행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조기 대선 이후 민심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휘발성 높은 이슈가 여론을 흔들었고, 무당층의 움직임은 정당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예측 불가했다. 이 불확실성 속에서 정당이 가장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확실하게 관리 가능한 당원표에 기대겠다는 속셈이다.
이는 정당의 나약함이자 비겁함이다. 선거를 민심의 장이 아닌 조직 대결로 만들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가 다시 당심 공화국으로 회귀하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퇴행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 당심 70%는 공천 통제용 무기
국민의힘의 당심 확대는 전략이 아니라, 공포의 산물이다. 지도부는 최근 몇 달간 민심에서 반복적으로 뒤통수를 맞았다. 사법 논란, 대장동 항소 포기 같은 유리한 상황에서도 지지율이 하락했고, 유권자는 도무지 당의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았다. 반면 당원은 달랐다. 당심은 지도부를 떠받치는 마지막 지지대였다.
이에 지도부는 당심 비중을 극대화하려 했다. 그리고 나경원 전 원대대표가 이끄는 지방선거기획단은 지난 21일 ‘70% 룰’을 밝혔다. 이는 결국 장동혁 대표체제를 중심으로 한 공천 장악의 시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명분은 당성 강화지만, 실제 목적은 간단하다. 공천을 중앙이 통제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현재 지지율이 낮고 구심점이 약해진 국민의힘에게는 안정적인 공천권을 확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당심 비중 확대다. 민심은 통제할 수 없지만, 당심은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전형적인 ‘자기 편 뽑기’ 방식이며, 외연 확장과는 정반대다.
결국 본선 경쟁력보다 조직 충성도를 더 우선시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민주당 1인 1표제는 정청래의 권력체제 구축
민주당의 변화는 더 노골적이다. 정청래 대표가 밀어붙이고 있는 1인1표제는 대의원제 약화라는 의미에서 단순히 당심 강화 수준이 아니다. 이것은 당의 권력 분포를 다시 쓰는 개정 작업이며, 민주당의 내부 지형을 완전히 재배치하는 정치적 행동이다.
정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부터 즉시 적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전통 당권파와 중도·온건파를 약화시키고, 권리당원 중심의 구조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이 제도는 민주주의 확대라는 포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대표 중심의 권력 집중이다. 졸속 당원투표와 '10월 당비 납부자'라는 투표 요건 논란은 그 본질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국민주권 시대에 걸맞은 1인1표제의 명분은 다소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표에게 유리한 권리당원 중심의 판짜기다. 이 구조에서는 민심이 들리지 않는다. 권리당원의 목소리가 확대되고, 대의원의 견제장치는 약해진다. 민주당 역시 국민이 아니라, 당원 위주 정치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양당의 공통점, 민심 불신과 조직 정치의 복귀
양당이 내놓은 서로 다른 공천 룰 포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명확하다. 두 정당 모두 민심을 믿지 않고 있다. 민심의 변동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2025년 한국 정치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기 대선과 정권교체 혼란, 글로벌 충격까지 겹쳤다. 그 결과 민심이 극도로 불안정해졌고, 정당은 흔들리는 민심을 감당할 힘이 없다.
그래서 조직·당원·권리당원이라는 안전한 곳으로 도망친 것이다. 민주주의 기본원리보다 당의 유지·생존이 먼저가 된 셈이다. 이것은 정당 스스로의 퇴행이며, 유권자에 대한 배신이다.
선거지형 변했는데, 이를 읽지 못하면 패배
현재 우리나라 유권자 구조는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론의 휘발성은 최고조에 달했고, 무당층은 역대급으로 커졌으며, 2030·4050 중도층은 정당을 오래 지지하지 않는 이탈형 흐름을 보이고 있다. 조직만으로 승부가 가능했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지역기반도 약화됐다. 지방선거라고 해도 지역주의 표가 자동으로 동원되지 않고, 유권자는 후보의 역량·공정성·현안 대응 능력을 더 중시한다. 이런 환경에서 당원 중심 공천은 결속에는 유리하지만, 외연 확장에는 치명적이다.
당심 위주 공천은 인지도 높은 현역을 오히려 불리하게 만들고, 신인 정치인을 더 쉽게 공천하는 왜곡된 구조를 만든다.
여론의 형성 속도 역시 문제다. SNS 시대의 여론은 시간 단위로 뒤집히고, 작은 논란 하나가 후보 이미지를 순식간에 흔든다. 이 변화에 당심은 대응하지 못한다. 조직의 열광과 민심의 냉각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정당은 민심 신호를 읽지 못한 채 고립되기 쉽다.
본선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중도층이다.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를 키우는 당심은 중도층을 더 멀어지게 만들고, 이 괴리가 커질수록 본선 패배의 위험은 커진다. 당심 중심 전략은 더 이상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 본선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해적 선택에 가깝다.
내년 지방선거, 결국 권력 구축 기회로 여기나?
내년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방선거가 아니다. 정권교체 직후 열리는 첫 전국단위 선거며, 차기 총선·대선 권력지형을 결정하는 출발점이다. 두 정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권력 재배치의 1차전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선거지형이 바뀌었는데도 공천을 조직 중심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공천권을 장악해야 권력재편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적 생존의 계산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투기도 된다. 당심은 공천을 좌우하지만, 민심은 본선을 좌우한다.
당심에만 기대 공천한 후보가 민심에서 외면받는 순간, 지방선거는 참패로 끝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지금 벌이고 있는 당심 베팅은 결국 조직 안에서의 승리와 국민 앞에서의 패배라는 자해적 시나리오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양당이 달리는 방향은 다르지만, 추락 지점은 같다. 국민의힘은 통제형 정당으로, 민주당은 동원형 정당으로 재편된다. 겉보기엔 다른 전략이지만, 공통점은 명확하다. 둘 다 민심을 외면한다. 당원 중심의 폐쇄적 구조 속에서 스스로의 정치만 챙긴다. 그 결과는 뻔하다. 정당은 작아지고, 국민은 멀어지고, 외연은 붕괴된다.
민심 배제 결과는 폐쇄성·극단화·중도 이탈
당심 중심은 정당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향으로 몰아넣는다.
첫째, 정당의 폐쇄성 강화다. 정당이 국민 속으로 뛰어들기보다 당원 속으로 숨어버리는 형국이다. 유권자의 눈높이와 당의 문제의식은 멀어지고, 정당은 더 이상 국민의 정당이 아니라, 당원의 동아리로 축소된다.
둘째, 극단화의 가속화다. 강성 집단의 목소리가 과대 표집되고, 중도·합리적 세력은 점점 자리를 잃는다. 민주당이 개딸(개혁의 딸들)당 회귀 논란에 시달리고, 국민의힘이 충성 경쟁구도에 휘둘릴 수 있다.
셋째, 본선 경쟁력 붕괴다. 지방선거는 공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승부는 본선에서 난다. 당심에만 맞춘 후보는 본선에서 유권자로부터 외면받기 쉽다.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 사례는 이미 이를 증명했다.
요컨대, 당심 중심 정치는 정당의 자멸 시나리오다. 그리고 지금 양당은 그 시나리오를 충실히 쓰고 있는 것이다.
당심으로 시작한 선거는 민심서 패배
양대 정당은 지금 당심 강화라는 환상을 붙잡고 있다. 당심으로 공천을 장악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것이 마치 정치적 안정인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선거의 진짜 무대는 당사가 아니라 전국의 투표소다.
당심은 뜨겁고 좁은 반면, 민심은 느리지만 넓다. 당심은 당을 결속시키지만, 민심이 정치의 방향을 결정한다. 민심을 버린 정당은 결국 민심에 버림받는다. 내년 6월3일 지방선거는 그 교훈을 다시 확인하는 날이 될 것이다.
양당이 지금 던진 베팅은 너무 위험하다. 정당의 생존을 위해 민심을 버리는 순간, 정당의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당심의 게임으로 출발한 선거는 반드시 민심의 심판으로 끝난다.
누리호가 27일 새벽 1시13분 4차 발사에 성공하면서 국민의 응원과 함께 하늘로 올랐듯이, 우리 정치도 민심을 향해 trajectory(궤도)를 바로 잡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