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베이글뮤지엄 20대 청년 ‘과로사 의혹’ 일파만파

2025.10.28 16:21:05 호수 0호

사측 “유족 측 주장 사실과 달라”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빵지 순례’의 필수코스로 불리던 유명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런던베이글뮤지엄’(이하 런베뮤)이 청년 노동자의 과로사 의혹으로 거센 비판에 휩싸였다.



런베뮤 인천점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주 80시간에 가까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숨진 의혹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여기에 사측의 책임 회피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28일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7월16일 런베뮤 인천점 주임으로 일하던 고 정모(26)씨는 회사가 제공한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함께 지내던 동료들이 119에 신고했으나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에서는 사인으로 단정할 질병이 발견되지 않았다. 유족 측 주장에 따르면, 정씨는 키 180㎝, 몸무게 78㎏의 건강한 체격으로 2023년 건강검진에서도 이상 소견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스케줄표와 메신저 대화 내용을 보면, 직전 일주일간 80시간 가까이 일했고 그 전에도 한 주 평균 58시간을 일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유족은 “사망 전날에도 오전 9시 출근, 자정 무렵 퇴근했고, 휴게 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정씨는 사망 전날 연인에게 “한 끼도 못 먹고 일했어”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유족은 “퇴근 후에도 서류 정리와 잡무를 하며 사실상 하루 대부분을 일에 매달렸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정씨의 근로계약서에도 발견됐다. 계약서에는 이미 주 14시간의 초과근무수당이 포함돼있었는데, 이는 주 52시간 상한제를 초과하는 ‘위법 전제 계약’이라는 지적이다. 또 제과업은 근로시간 특례업종이 아님에도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허용한 조항도 포함돼있었다.

그럼에도 런베뮤 측은 과로사 의혹을 부인하며, 유족이 요청한 출퇴근 기록·지문인식기 데이터·출퇴근 앱 로그 등 객관적 근태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한 임원이 유족에게 “산재를 신청하겠다는 건 굉장히 부도덕해 보인다”는 폭언을 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며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노동계는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청년 노동착취의 결과로 보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과로사 판단 기준에 따르면 ▲사망 전 1주 평균 노동시간이 64시간을 초과하거나 ▲최근 12주간 평균 60시간 이상 일한 경우 ▲사망 직전 노동량이 30% 이상 급증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

정씨는 이 모든 조건에 해당한다는 게 유족 측 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현재 런베뮤에 대한 근로감독을 검토 중이다. 근로시간 조작 여부와 근로계약서의 적법성, 연장·휴일수당 미지급 문제 등이 주요 조사 대상이다. 만약 산재 은폐나 자료 제출 거부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내려질 수 있다.

런베뮤는 지난 2021년 서울 안국동에서 첫 매장을 연 뒤 전국 7개 지점으로 확장하면서 ‘청년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2022년 90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800억원으로 급등했고, 지난 7월에는 사모펀드 운용사 JKL파트너스에 2000억원에 매각됐다.

정씨 유족은 “아들은 회사를 사랑했고, 꿈을 위해 버텼지만, 회사는 그의 헌신을 이용했다”며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고 책임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씨의 죽음을 두고 정치권에서도 규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진보당은 이날 ‘청년 핫플레이스 런던베이글뮤지엄, 실상은 청년의 노동과 목숨을 갈아넣은 기만 기업이었나’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이미선 진보당 대변인은 “이 사건은 런베뮤의 노동 현실이 얼마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며 “그럼에도 런베뮤는 ‘청년 핫플레이스’로 포장해 소비자 앞에서 뻔뻔하게 상품을 팔았다. 청년의 노동과 목숨을 브랜드의 원가로 삼은 런베뮤의 행태는 명백한 기만이자 폭력이며 탐욕이 만들어낸 살인”이라고 지적했다.

정의당도 이날 ‘런베뮤는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회피 말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입사 후 4개월간 지점을 4군데나 거쳐 근로계약서도 3번 갱신됐다”며 “법인이 아니라 지점과 근로계약을 체결해 ‘쪼개기 계약’ 의혹까지 제기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더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유족이 요구하는 각종 자료를 충실히 제공하라”며 “동료들도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동부 차원의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런베뮤는 이날 공식 입장문을 통해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주 80시간 근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사측은 “고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근태 관리와 운영 전반의 시스템을 재점검했다”고 밝혔다.

사측은 “매장관리 직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3.5시간”이라며 “사망한 직원의 경우도 평균 44.1시간 근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인은 13개월 동안 연장근로를 7회, 총 9시간 신청한 기록이 있다”며 “유족 측이 주장하는 ‘주 80시간 근무’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이 제기한 자료 미제공 의혹에 대해선 “근로계약서, 근무 스케줄표, 급여명세서 등 산재 신청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유족에게 전달했으며 은폐나 거부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다만 고인의 근무기록을 확인할 지문인식기는 당시 오류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휴게 시간 보장 문제에 대해선 “모든 직원에게 일 8시간 기준 1시간 휴게시간을 부여하고 있다”며 “고인은 스스로 식사를 거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해명했다.

사측은 “노동청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며 “전 직원 근태 관리 기록 의무화 등 내부 관리체계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보도로 브랜드 이미지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jungwon933@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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