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국민연금, ‘80세 피크제’와 ‘물가·임금 상승률 배제’해야

2025.10.01 08:57:23 호수 0호

1960년대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왕성한 출산의 시대였다. 이때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산업화를 일궜고 민주화를 이뤄냈으며, 지금은 어른이 됐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80세 이상 초고령층으로 진입하는 2040년대 이후, 우리 앞에 놓일 가장 큰 사회적 과제는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이다.



보험 전문가들은 2025년 3월 국민연금 개혁 이전 제도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은 베이비붐 세대가 80세 이상으로 넘어가는 시기와 겹치는 2050년대 중반부터 고갈된다고 수차례 경고해 왔다. 2040년대 이후엔 수급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보험료를 낼 젊은 세대는 줄어드는 구조적 불균형이 심화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가 낸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크지만, 그때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2004년 ‘매크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해 물가나 임금이 올라도 연금 급여는 덜 오르도록 자동 장치를 만들었다. 독일은 연금 산식에 ‘지속가능성 계수’를 집어넣어, 부양비가 나빠지면 자동으로 급여가 줄도록 했다.

스웨덴은 아예 ‘명목확정기여(NDC)’ 제도로 바꿔서, 기대수명이 늘면 개인 연금액이 자동으로 줄어들게 만들었다. 이들 나라가 공통적으로 택한 방식은 제도 자체에 자동조정 장치를 만들어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25년 3월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고, 명목 소득대체율을 2026년 43%로 상향하는 국민연금 인상 개혁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6년부터 시행된다.


국민연금 개혁안에 따르면,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2026년부터 매년 0.5%p씩 인상해 2033년 13%에 도달하고, 소득대체율은 2026년부터 43%로 상향 조정돼 은퇴 전 소득의 43%를 연금으로 받게 된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개혁안이 1988년 국민연금 도입 이후 27년 만에 이뤄진 보험료율 인상이지만, 기대효과는 고갈 시점을 약 15년 늦춰 2071년까지로 한다는 게 고작이다. 한번의 상향보다 상시의 자동조정 장치가 더 중요한데 자동조정 규칙을 만들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9월30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보험료율을 13%로, 소득대체율을 43%로 인상해 2071년까지 국민연금 기금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면서도 “향후 추가 개혁을 통해 지속 가능성과 실질소득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가 불안하다는 의미다.

정 장관은 "기금 수익률 제고 등을 통해 제도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청년부터 어르신까지 노후 소득을 두텁게 보장하는 다층연금제도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정부가 안정적인 노후 소득 정책에 앞서 국민연금을 제도 안에서 스스로 균형을 맞추는 규칙을 가장 시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급 개시 연령을 기대수명과 연동시키고, 보험료율·급여율에 상·하한선을 두며, 재정 검증 때 불균형이 확인되면 자동으로 조정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196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그 수가 많아 사회를 지탱해온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그들의 노후가 시작되는 순간, 세대 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 일했는데 왜 노후마저 줄여야 하느냐”는 목소리와 “앞 세대의 부채를 왜 우리가 떠안아야 하느냐”는 젊은 세대의 항변이 맞부딪힐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80세를 넘어서는 2040년대 이후 국민연금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사실은 정부도, 학계도 다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다시 추가 국민연금 개혁을 통해 자동조정 장치를 만들고 세대 간 균형을 이루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2071년까지 버틸 수 있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

전 J 대학병원 K 간호과장은 지난달 30일, 필자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시대로, 부모를 돌보던 자녀도 이미 노인이 돼있다“며 초고령화 사회를 대비해 ”보험료율 13% 인상과 소득대체율 43% 인상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니, 80세 이상 노인에 대해 국민연금 피크제 같은 국민연금 개혁을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 피크제는 살아있는 동안 끝까지 주되, 일정 나이 이상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조금씩 줄여가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 자체를 끊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대 전체가 함께 오래 사는 사회에서 최소한의 형평성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K 간호과장은 “현재 국민연금은 물가 또는 임금 상승률을 반영해 급여를 올리지만, 앞으론 80세 이상에서는 그대로 동결하고, 특히 일정 소득이 있는 자는 국민연금을 하향 조정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기성세대가 미래세대를 위해 조금 양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정부가 K 간호과장의 주장처럼 다시 추가 국민연금 개혁을 하기 위해선 당장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연금 기금이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주주권 행사나 투자 방향을 두고 정권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면 안 된다. 국민연금공단이 국민의 자산을 굴리는 기관인지, 정부의 경제·산업 정책 도구인지 경계가 모호하다면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국민이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불투명성이다. 1000조원을 넘어선 국민연금 기금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투자와 의사결정이 이뤄지는지 국민에겐 여전히 안갯속이다.

국민연금은 국민 개개인의 노후를 넘어 국가경제를 이끄는 거대한 배와 같다. 그러나 이 거대한 배가 정치적 풍랑에 흔들리고 인력 부족에 시달리며, 고갈의 시계를 끌어안고 항해한다면 국민은 안심할 수 없다.

국민연금이 국민의 신뢰 속에서 항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로부터의 독립, 글로벌 분산 투자 확대, 제도 개혁을 통한 지속 가능성 확보, 그리고 투명한 소통이 절실하다.

국민연금은 단순히 노후 소득 보장 제도 뿐 아니라, 세대 간 신뢰의 계약이라 할 수 있다. 지금 40·50대는 “내가 낸 연금을 미래에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안고 살고 있다. 이 불안을 해소하려면 기성세대가 일정 부분의 양보를 제도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80세 이상 연금 피크제와 물가·임금 상승률 배제는 추가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국회가 K 간호과장의 주장을 새겨 들어야 한다.

국회는 지난달 30일 오후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민간자문위원회 구성을 마쳤다. 총 22인의 전문가로 구성됐으며, 박명호 홍익대학교 교수와 주은선 경기대 교수가 공동 자문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이제 국회가 민간자문위원회 구성까지 마쳤으니, 추가 국민연금 개혁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


아울러 국회는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도 개혁의 대상으로 놓고 고민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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