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소리 뻥뻥’ K-원전 진실게임

2025.08.26 09:30:22 호수 1546호

밑지고 퍼줬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전 정부의 ‘쾌거’로 알려진 초대형 계약이 현 정부 들어 조사 대상으로 떠올랐다. 핵심은 불공정 계약 여부다.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많은 부분을 양보하고 이른바 ‘퍼주기’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실은 뭘까?



‘K-원전’을 둘러싼 진실게임이 시작됐다. 사업비가 수십조원에 이르는 계약의 내용을 두고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쪽에서는 ‘매국’ ‘굴욕’ 계약이라면서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또 다른 쪽에서는 미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주장이 제기됐다.

진상 조사

지난 19일 대통령실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한국전력(이하 한전)이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수출을 위해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불공정한 요구를 수용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한 진상 파악을 지시했다. 지난 1월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이 기사를 통해 알려진 여파다.

지난해 7월 체코 정부는 한수원을 두코바니 5·6호기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러자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이 원천 기술을 도용했다”며 체코 정부 측에 진정을 냈다. 이로 인해 체코 정부와 한수원 간의 계약이 지지부진하다가 지난 1월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고 모든 법적 조치는 취하한다”는 합의 선언을 했다.

이때 작성된 합의문이 논란으로 떠오른 것이다.


글로벌 합의문에는 한수원과 한전이 한국형 원전을 수출할 때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원전 1기당 6억5000만달러(약 9032억원)의 물품 용역을 구매하고, 1억7500만달러(2433억원)의 기술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차세대 원전인 소형 모듈 원전(SMR)을 독자 수출할 경우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검증을 받도록 한다는 내용도 있다. 동시에 한수원·한전이 원전 신규 수주 활동을 할 수 있는 국가를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프리카, 북아프리카, 남미, 중동으로 제한하는 내용도 담겼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원전 주권을 팔아먹고 국부를 유출시키는 매국 행위”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우리 기업이 소형 모듈 원전 등 독자 기술 모형을 개발해도 웨스팅하우스 측의 허가가 없으면 사실상 수출이 불가능하다”며 “영업사원 1호를 자처했던 윤석열은 사실상 기술 주권, 원전 주권을 팔아먹고 국부를 유출하는 매국 행위를 한 것”이라고 맹공격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대통령실이 나섰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관련 보도 내용을 포함해 진상을 파악해 보고하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지시했다. 체코 원전 수출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공공기관인 한수원과 한전이 웨스팅하우스와 협상하고 계약을 체결한 과정이 법과 규정에 따라 이뤄졌는지, 원칙과 절차가 다 준수됐는지 조사하도록 결정됐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 회의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질타를 쏟아냈다. 이날 국회 산자위는 산업통산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의 2024 회계연도 결산을 위한 전체회의를 열고 문제의 합의문 내용을 현안으로 다뤘다. 이날 황수호 한수원 사장 등이 집중 타깃이 됐다.

한수원-웨스팅하우스 합의 내용 공개
로열티·진출 제한 불공정 논란 제기

민주당 김원이 의원은 “아무리 체코 원전 수주가 급했고, 웨스팅하우스와의 분쟁 해결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해도 지나치게 불리한 내용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송재봉 의원도 “많은 국민이 당혹스럽게 생각하고 화도 난 상태”라며 “이번에 정말 호구짓을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계약 내용이 외부로 새나간 경위 등에 대해 물었다.

이철규 산자위원장은 “2017년 정부와 한수원이 원전 기술 독립 선언을 하지 않았나. 왜 국민을 속였느냐”며 “정부가 바뀐다고 해서 정책이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은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의 계약은 비밀 유지 협약 준수 의무가 있는데, 왜 언론에 이런 내용이 나오느냐”며 “국익을 해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전했다.


황 사장은 ‘할 만한 계약’이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불리한’이라는 단어에 동의를 못 하겠다” “(웨스팅하우스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저희가 감내하고도 이익을 남길 만하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가 웨스팅하우스와의 원전 수출 활로를 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의힘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지난 21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전임 정부 망신 주기” “K-원전 적폐 몰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K-원전의 미국 시장 교두보 마련의 윈-윈 협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며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이를 불공정 계약이라며 정치적 선동을 하고 있다”고 한전·한수원-웨스팅하우스 간의 합의에 대해 언급했다.

송 원내대표는 “다음 주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한국 원전산업이 미국에 진출하는 원전판 ’마스가‘ 협약이 체결된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며 “이는 정부·여당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지난 1월 합의에 따른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과의 중장기적인 원전 협력관계를 구축한다면 결국 K-원전에 마이너스보다 플러스가 큰 계약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나온 표현으로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이다. 침체에 빠진 미국 조선업에 우리나라가 기술력과 인력을 제공하고 상호 협력을 진행한다는 내용이다. 원전 업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김정재 정책위의장은 “이미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합작 투자 논의가 웨스팅하우스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된 만큼 K-원전이 미국과 세계 원전 시장에서 주도권을 쥘 절호의 기회”라며 “민주당만 홀로 K-원전 죽이기 정치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야 입장 차

그러면서 “체코 원전 수주에서조차 노예계약 운운하면서 로열티가 사업비의 1.85%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K-원전을 적폐 몰이의 도구로 삼고 있다”며 “이는 국가 경쟁력보다 당리당략을 앞세운 전형적인 정치 공세”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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