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지자 행보’ 김여정 “긴장 완화? 일 없다”

2025.07.28 14:03:12 호수 0호

대북 유화조치에도 기조는 ‘강’
새 정부 대북정책 난항 불가피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북한이 28일 이재명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 남북 긴장 완화 조치에 대해 “평가받을 만한 일이 못 된다”며 기존 대결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이날 북한의 대외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조한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이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조한 관계는 ‘조선-한국 관계’를 뜻하는 말로,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해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통일’ ‘화해’ ‘동족’ 개념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지시한 이후 민족 내부 관계를 전제로 한 기존 ‘북남 관계’를 대체해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이는 남과 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는 기조를 여실히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김 부부장은 ‘대조선확성기 방송 중단’ ‘삐라 살포 중지’ ‘개별적 한국인들의 조선 관광 허용’ 등 정부의 각종 긴장 완화 조치들을 열거한 뒤 “한국의 이재명정부가 우리와의 관계 개선의 희망을 갖고 집권 직후부터 나름대로 기울이고 있는 ‘성의 있는 노력’의 세부들”이라며 “이에 한발 더 나가 신임 통일부 장관 정동영은 강 대 강의 시간을 끝내고 선 대 선, 화해와 협력의 시간을 열어갈 것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몇 달 후 경주에서 열리게 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 수뇌자 회의에 그 누구를 초청할 가능성까지 점쳐보며 헛된 망상을 키우고 있다”며 “우리는 한국에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어떤 정책이 수립되든 개의치 않았고, 따라서 지금껏 그에 대한 평가 자체를 일체하지 않았지만 이번 한번은 우리의 입장을 명백히 짚고 넘어가자고 한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한국 당국자들이 남북 신뢰 회복의 첫 신호로 묘사한 대조선 심리모략 선전 방송의 중단에 대해 말한다면 진작에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가역적으로 되돌려 세운 데 불과한 것”이라며 “다시 말해 평가받을 만한 일이 못 된다는 것”이라고 폄훼했다.


이어 “지난 시기 일방적으로 우리 국가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극단의 대결 분위기를 고취해오던 한국이 이제 와서 스스로 자초한 모든 결과를 감상적인 말 몇 마디로 뒤집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면 그 이상 엄청난 오산은 없을 것”이라며 “지난 몇 년 간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있어서 무의미한 시간만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그는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한국은 절대로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될 수 없다는 대단히 중대한 역사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으며,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에 구속돼 매우 피곤하고 불편했던 역사와 결별하고 현실 모순적인 기성 개념까지 말끔히 털어버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부부장은 “조선반도에 국가 대 국가 간 관계가 영구 고착된 현실과 더불어 해체돼야 할 통일부의 정상화를 시대적 과제로 내세운 것을 보아도 확실히 흡수 통일이라는 망령에 정신적으로 포로된 한국 정객의 본색은 절대로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역대 한국 정권들의 과거 행적은 제쳐 놓고 이재명의 집권 50여일만 조명해보더라도 앞에서는 조선반도 긴장 완화요, 조한 관계 개선이요, 하는 귀맛 좋은 장설을 늘어놨지만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우리와의 대결 기도는 선임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또 다시 우리의 남쪽 국경 너머에서는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며 미한은 상투적 수법 그대로 저들이 산생시킨 조선반도 정세 악화의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해보려고 획책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이는 향후 한미연합 군사 훈련 축소 등의 실질적 양보 없이는 대화·접촉에 응하지 않겠다며 문턱을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김 부부장은 “우리는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 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며 “조한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이미 완전히 되돌릴 수 없게 벗어났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북한이 발표한 담화는 이정부 출범 후 북한의 첫 공식 입장 표명으로, 최근 남북 간 ‘평화 신호’로 해석됐던 움직임과 대비된다.

앞서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선공약에 따라 지난달 11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이에 북한도 다음 날인 12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 40여 곳에서 진행하던 대남 소음 방송을 멈춰 새 정부의 평화 시그널에 호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날 북한이 조한 관계라는 개념 하에 남북 관계를 완전히 적대적 국가 간 관계로 포괄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시키면서, 새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이 오히려 북한을 자극한 모양새가 됐다.


대북 전단·오물 풍선 살포 중단 등의 조치는 북한에게 ‘당연한 양보’로 받아들여졌고, 이날 북한의 담화는 이 같은 노력이 북한의 전략적 입장을 변화시키지 못했음을 재확인시켰다.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이 이정부의 남북 간 긴장 완화 정책에 대해 명백히 거부 의사를 밝힌 만큼, 앞으로 남북 간 대화 재개나 협력 프로젝트 추진 등은 사실상 어렵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새 정부가 취한 대북 유화책이 오히려 북측의 경직된 대응을 불러일으키면서, 남북 관계가 예상보다 더 큰 난항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이정부의 일관된 긴장 완화 조치와 국제 공조 속에서 북측도 비용·이익 계산을 재검토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부가 차분한 태도로 상황을 관리하고 명확한 평화 시그널을 지속할 경우, 북측의 전략 조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에 힘이 실린 듯, 대통령실도 이날 김 부부장의 담화 발표 뒤 평화 추구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입장문을 통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북 고위 당국자의 첫 대남 대화를 통해 표명된 북측 입장에 대해 유의하고 있다”면서 “몇 년 간의 적대·대결 정책으로 인해 남북 간 불신의 벽이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인 평화 정착은 이정부의 확고한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적대와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일관되게 취해 나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jungwon933@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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