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8일(현지시각) 바티칸서 열린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를 통해 미국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즉위명은 ‘레오 14세’로 정해졌다.
이번 선출은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17일 만이자, 콘클라베 이틀째인 네 번째 투표서 결정됐다.
<A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8분께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새 교황 선출을 알렸다. 이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광장에 모인 수천명의 군중은 환호와 박수로 이를 반겼다.
레오 14세는 미국 시카고 출신으로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1985년부터 페루서 20년 넘게 선교사로 활동했다. 2015년 페루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환경, 빈곤, 이주민 문제에 대한 관심과 대중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사목 방식으로 프란치스코 교황과 유사한 행보를 보여왔다.
레오 14세는 미국 국적이지만 페루서 오랜 기간 활동한 점이 추기경단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세계적 혼란과 갈등 속에서 교회가 균형과 포용을 추구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하는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AP 통신>은 “미국이 세속 세계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미국인 교황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프레보스트의 페루 활동이 이 같은 우려를 완화했다”고 전했다.
교황명 ‘레오 14세’는 19세기 말 노동권과 사회 정의를 강조한 레오 13세 교황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이 선택은 현대 가톨릭 사회 교리와 AI 시대에 맞춘 교회의 고민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레오 14세는 선출 직후 성 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며 이탈리아어로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La pace sia con tutti voi)”이라고 첫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대화와 만남을 통해 모두가 하나 되는 평화로운 백성이 되자”며 교회의 가교 역할을 강조했다.
레오 14세는 9일 시스티나 성당서 추기경단과 미사를 집전하며, 오는 11일 성 베드로 대성당서 첫 축복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12일에는 전 세계 언론인과 첫 공식 대면이 마련된다.
이날 미국 출신 첫 교황의 탄생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첫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영광스럽다. 레오 14세를 만나길 고대한다”고 환영했다.
새 교황과 한국과의 인연도 기대된다. 그는 2년 뒤인 ‘2027 세계청년대회(WYD)’ 개최지인 서울에 방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청년대회는 전 세계 카톨릭 청년들이 모여 신앙을 축하하는 행사로, 교황과 청년들의 만남이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이 대회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과 1985년 바티칸에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을 초청한 것을 계기로 1986년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레오 14세가 이 대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면, 이는 교황의 네 번째 방한이 된다. 한국은 이미 1984년과 1989년에 요한 바오로 2세를,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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