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후원자 3인방(박연차·정화삼·강금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있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대한 비자금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최근 지난 2005년 이후 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을 겨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검찰이 안 최고위원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노 전 대통령 후원 3인방의 비리를 모조리 파헤쳐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 여야 안팎에서는 검찰 수사의 주된 목적은 재보선 승리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김민석 최고위원에서 안희정 최고위원으로까지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연일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지난 2004년 검찰수사 과정에서 1999~2002년 회삿돈 50억원을 빼낸 뒤 허위 변제 처리하고 같은 기간 15억원 상당의 부가세와 법인세를 포탈한 혐의가 밝혀져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벌금 15억원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정치자금 ‘추적’
친노는 정당한 자금 ‘항변’
그러나 지난 2002년 용인 땅을 가장매매하는 방식으로 안희정 최고위원 등에게 19억원을 무상 대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2005년 특별사면됐다. 그 당시 검찰은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는 강 회장의 철저함에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유죄를 밝혀내지 못한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어 또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른바 강금원-안희정 간의 커넥션을 잡아냄으로써 친노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갈무리하려 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더 나아가 현재 제기되고 있는 강금원-안희정에 대한 수사는 실질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손발을 꽁꽁 묶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검찰에서 혐의를 잡고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안 최고위원이 강 회장으로부터 7억원을 받은 것이 수사의 초점이다. 이 자금 중 일부는 이미 돌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6년 전세금 명목으로 빌려줬다가 돌려받은 2억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검찰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거래가 이뤄진 경우도 있다는 시각이다. 지난 2005년 출소 직후 안 최고위원이 추징금 4억9000만원을 납부하기 위해 강 회장으로부터 빌렸다고 밝힌 1억원이 대표적이다. 또 안 최고위원이 지난해 총선 출마를 위해 거주지를 서울에서 논산으로 옮기면서 강 회장으로부터 전세자금 명목으로 2억5000만원을 빌렸고, 강 회장 소유인 충북 충주 시그너스골프장의 고문으로 위촉돼 1억6000만원의 급여를 받은 것도 일종의 ‘정치자금’이었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추측이다. 어찌보면 단순한 채권채무상의 거래일 수도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들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정치자금’ 성격을 띨 소지가 높다는 것이다.
강금원 2004년 정치자금법 무혐의…검찰, 연장선상 수사
강·안 7억원 돈거래 불법성 여부 관건…‘노무현 비자금 터지나?’
강 측근“절친한 호형호제 사이로 지내는 끈끈한 관계” 강조
10월 재보선 위한 포석용? “용산 물타기도 했는데…”
그러나 검찰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안 최고위원은 ‘부정·비리 전력자 일괄배제’ 공천 원칙에 승복해 출마하지 않았다. 또 안 최고위원은 2006년 말 출소한 뒤 강 회장의 회사(시그너스 골프장)에 사외이사로 등록, 급여를 받았다. 따라서 검찰은 고문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급여 명목의 돈을 받았다면 사법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강 회장과 안 최고위원의 자금출처다. 노 전 대통령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면서부터 뒷말이 무성한 것. 이른바 ‘노무현 비자금’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 중 하나다.
실제 지난 2002년 삼성이 대선을 앞두고 명동 사채시장에서 800억원대의 무기명 채권을 매입한 사실을 확인한 결과 한나라당 324억원, 노무현 측으로 21억원이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400여억원에 달하는 돈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 때문에 나머지 자금은 노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전달되거나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게 검찰측의 추정이다. 한때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1000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얘기가 회자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 즉 강 회장이 대선 잔금 관리를 하면서 이 돈의 일부분을 노 전 대통령과 측근에게 반환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안 최고위원 역시 마찬가지다. 안 최고위원은 노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부터 자금 관리를 맡았고, 2002년 당시 기업들이 노 전 대통령 측에 제공한 정치자금 일부가 안 최고위원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03년 대선자금 수사 결과 노 전 대통령이 운영했던 ‘장수천’의 채무 4억여 원을 강 회장이 안 최고위원를 통해 변제해 줬다. 또 안 최고위원이 기업들로부터 받은 불법자금 10억원을 강 회장에게 맡기기도 했다. 사실상 이들간의 거래된 자금이 대선 잔금 등의 돈일 수도 있다는 게 검찰의 추측이다. 검찰 관계자는 “강씨가 개인 돈이나 회사 돈을 사용했을 수 있지만, 대선 잔금 등 제3의 출처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밝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전방위 수사를 펼치고 있는 중이다. 강금원-안희정 커넥션을 비롯해 노무현 비자금이 그것이다.
강금원-노무현 관계
“돈만은 철저했다”
주목할 점은 강금원-노 전 대통령의 관계다. 우선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과 오랜 친구 사이다. 전북 부안 출신으로 전주공고를 졸업한 이후 사업에 뛰어들어 ‘부산 기업인’으로 성장한 강 회장은 30년 가까이 섬유사업을 해왔다. 강 회장은 1980년대 중반 노 전 대통령을 처음 알게 됐다. 이후 1996년 총선 때 본격적으로 후원에 나서면서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과도 서슴없이 독대를 할 정도로 후원자 3인방 중에서도 ‘최고 실세’로 손꼽힌다.
노 전 대통령과의 친분 덕분일까. 노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강 회장은 안 최고위원을 알게 됐다. 이로 인해 허물없는 관계로 지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역학관계를 보면 강 회장, 노 전 대통령 그리고 안 최고위원은 모두 하나의 고리로 형성돼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추정이 가능해진다.
검찰의 주장대로 정치자금의 성향이 짙다면 강 회장은 대선 잔금 관리 역할을 통해 자금을 분배했을 수도 있다는 것. 이에 반해 강 회장과 안 최고위원의 주장대로라면 두터운 친분관계상, 안 최고위원의 어려운 여건을 감안해 순수하게 도와줬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강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A씨는 “강 회장과 안 최고위원은 서로 형님·동생 사이로 격이 없다. 더구나 검찰에서 불법정치자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단정하고 있지만, 강 회장은 자금관리에 있어서만은 누구보다도 철저하다”며 “과거 강 회장이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될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강 회장의 불법정치자금 혐의에 대한 강도높은 수사를 요구했지만, 결국 ‘속빈 강정’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 역시 검찰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강 회장은 “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단돈 1원도 사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며 “(골프장 고문 자격으로 급여를 받은 부분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고문이란 여러 지원도 하고 자문도 해주는 역할이다. 실제로 안 최고위원을 고문으로 두면서 조언도 받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결백을 강조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참여정부에 대한 사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한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 관계자들까지 사석에서 검찰의 사정칼날은 10월 재보선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전략의 하나일 가능성이 짙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사정칼날 숨은 의도
두 번째 물타기 시도?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의 골이 곪을 대로 곪았다는 분위기다. 용산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강호순 사건’을 통해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검찰의 사정 칼날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으로 내비쳐진다. 이명박 정부 중간평가로 불리는 4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따라서 4월 재보선은 야권에 패하더라도 10월 재보선만큼은 잡겠다는 의도에서 사정을 이용, 전정권 치부를 드러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따라서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10월 재보선 승리를 확실하게 잡기 위해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면서 참여정부에 대한 사정칼날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조만간 직접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이는 강 회장과 안 최고위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 지 지켜볼 일이다.
정치자금법이란?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의 수입·지출내역의 공개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정치자금과 관련한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정됐다. 여기에는 당비를 비롯해 후원금, 기탁금, 보조금과 정당의 당헌·당규 등에서 정한 부대수입,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과 이들에게 제공되는 금전이나 유가증권 등이 포함된다.
또 정치자금은 정치활동을 위해 소요되는 경비로만 지출해야 한다. 사적 경비로 지출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특히 후원금은 연간 2천만원을 초과할 수 없으며, 후원회가 후원금을 기부 받을 때에는 정치자금영수증을 후원인에게 교부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