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반도, 핵무장론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2024.03.13 10:07:58 호수 0호

북한의 핵전략은 김정은 집권 10년을 기점으로 양적인 변화를 거쳐 질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임계치에 도달하면서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질적인 정책 변화의 핵심은 ‘핵의 선제 사용’이다.



2022년 4월 조선인민군 창설 90주년 기념식서 군복 차림의 김정은 위원장은 선제 핵 공격 가능이라는 북한판 ‘핵 독트린’을 선언했다.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는 핵 무력 정책을 법령으로 채택해 파문을 일으켰다.

모든 정책은 최종적으로 법령으로 발표하는 것이 북한의 독특한 통치 방식이다. 핵심 이익을 수호하지 못하는 5대 상황에 대해서는 핵무기를 선제 사용한다는 핵 무력 법령은 북핵 보유가 정책적 기술적으로 완성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핵 선제 사용의 법제화 전략

김정은의 표현대로 100년의 제재에도 비핵화는 불가능할 것일까? 야금야금 목표에 도달한 핵 무력 법령화를 통한 핵무기 보유 ‘기정사실화’ 전략의 저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비핵화 협상은 없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전략이다. 향후 평양은 워싱턴과의 협상서 비핵화는 국내법상 불가하다는 명분을 축적했다. 핵무기 사용 문턱을 확 낮춤에 따라 비핵화의 문턱은 비례해서 높아지는 만큼 2019년 하노이 협상서 무합의의 원인이었던 부분 핵 보유 전략은 더욱 공고화될 것이다.


둘째, 유엔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이다. 현재 2016년 이후 유엔 안보리 제재 중에서 북한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민생 관련 11건의 대북 제재다. 김정은은 하노이 회담서 이 중 영변의 비핵화를 조건으로 5건의 해제를 요구했다.

트럼프는 부분 제재 해제는 제재 전체를 무력화시킨다며 북한 전체 시설의 비핵화를 요구하며 거부했고 회담은 결렬됐다.

북한은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에 반발해 NPT 탈퇴를 선언했다가 경수로를 제공받기로 한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1994년)로 재가입하는 등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다가 2003년 NPT 최종 탈퇴를 선언했다. 북한은 핵 무력 법령으로 유엔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를 지속적 모색할 것이다.

셋째,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을 공론화시키는 전략이다. 핵무기 사용의 5대 조건은 김정은이 결심하면 사실상 선제 사용할 수 있는 고무줄 기준이다. 대북 제재가 강화되고 한미의 확장 억제전략이 가동되면 핵무기 사용을 구체적으로 위협하는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

핵무기가 억제 수단에서 공격 수단으로 전환한 냉엄한 현실을 체감하는 양상이 빈번하게 벌어질 수 있다. 핵무기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미치광이 전략인 ‘광인 이론’을 전개할 위기 상황을 수시로 조성할 것이다.

“우리는 최강의 핵 강국 중 하나, 다른 나라가 개입하면 경험한 적이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푸틴의 핵 위협 이론을 벤치마킹할 것이다. 향후 북한의 다양한 핵무기와 투발 수단인 신형 미사일이 <조선중앙TV>를 통해 자주 등장할 것이다.

북한의 남한 영토 완정 선언: 두 국가론

마지막으로 지난해 10월16일, 중국의 시진핑 3연임을 위한 공산당 20차 전국 대표자 회의를 앞두고 중국의 압력에 의해 법제화라는‘말 폭탄’ 성격의 핵 도발 수위 조절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중국은 경제위기에 직면한 북한 관리 차원서 2022년 9월 단둥-신의주 간 교역 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2020년 8월 열차 운행을 중단했으나 경제난으로 2022년 1월 운행을 재개했다.

하지만 건국 이래 대동란이란 코로나19 발생으로 다시 중단했으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은 중국에 열차 운행 재개를 요청했고 교역이 재개됐다. 열차 재개와 핵 개발 수위 조절 카드를 교환한 것이다.


갑진년 시작과 함께 김정은의 기괴한 행태가 시작됐다. 고체연료에 의한 극초음속 중거리 미사일(IRBM) 발사 등 군사적 도발과 함께 제1 적대국 선언, 남한 영토 점령, 평정 및 수복 등의 헌법 명기 등을 거론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통일, 화해, 동족, 삼천리, 금수강산, 자주, 평화통일 및 민족대단결 등 과거 평양서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할 때 단골로 끄집어냈던 감성적 표현과 용어의 삭제를 지시했다.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으로 전 세계서 9번째 핵무기 보유국이 됐고 1월 들어 북한의 군사도발은 급가속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이후 미 본토와 괌 기지, 한국 등을 겨냥하는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고체연료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핵 어뢰 등을 연쇄적으로 발사했다.

또 지난 1월24일 서해, 28일 동해에 이어 30일 등 연속 3차례에 걸쳐 서해로 전술핵 탑재가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순항미사일(SLCM)을 쏴올렸다. 온갖 종류의 미사일 고도화와 핵 추진 잠수함 개발로 한미 양국을 위협해 협상력을 높이거나 기습적으로 도발하려는 전술이다.

평양 군부는 디젤엔진을 사용한 전술핵 잠수함 개발에 이어 핵추진 전략핵잠수함 건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1월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추진 잠수함 건조 사업의 집행 방안에 대한 중요한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2021년 핵추진 잠수함 개발 방침을 공개한 후 3년 만에 구체적인 건조 방안, 일정 등을 확정해 본격 건조에 나선다는 예고다. 3월 중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대규모 무기 제공을 대가로 러시아의 핵추진 잠수함 소형 원자로 기술 등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재래식 무기는 우세, 핵무기는 비대칭

전쟁 발발 후 70년이 지나면서 남북한 간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2024년 세계 군사력평가 순위서 한국은 5위에 올랐다. 반면 북한은 36위를 기록했다. 전쟁 수행 능력에서 남한의 경제력은 북한의 물자 동원 능력을 압도한다.

국방예산 항목서 한국은 약 53조원으로 11위, 북한은 4.6조원으로 58위다. 여기까지는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군사력 평가 전문 민간업체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 평가는 북한의 핵무기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재래식 무기에서는 남한이 앞서지만, 핵무기를 포함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핵무기의 비대칭성(asymmetric)은 재래식 무기를 무력화시킨다. 한미동맹의 확장 억제 전략으로 북한군의 핵 공격을 방어해야 하는 과제는 우리 안보가 미국의 대통령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직면해야 하는 도전이다.

지난달 5일,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한국 독자 핵무장에 찬성한다는 민간 학술단체의 여론조사 결과는 최근 북핵 위협에 대한 국민의 실질적인 체감을 반영한다.

북한 전문 한 학술원이 발표한 제2차 북핵 위기와 안보 상황 인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주변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72.8%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 가운데 핵무장이 매우 필요하다는 응답은 21.4%, 필요한 편이라는 응답은 51.4%였다. 국민은 북핵 위협이 실존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또 1500만여명이 거주하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 비무장지대서 매우 근접해 있다는 것도 심각한 안보 취약 요인이다.

1960년 12월18일 미국 연방 원자력 연구위원회와 각국의 언론들은 일제히 특보(特報)를 냈다. 익명의 작은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그 나라는 이스라엘이라고 지목했다. 보도는 건설 현장이 찍힌 여러장의 사진과 함께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소련 정찰기가 현장을 촬영했으며, 소련 외교부 장관은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의 개입을 요청했다. 벤구리온 이스라엘 총리는 국회서 네게브 사막에 건설 중인 연구용 원자로는 오직 평화적인 목적으로 설계됐다고 핵무기 개발 계획을 부인하고 미국을 설득했다.

2년여의 논란 끝에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 핵개발 총책인 시몬 페레스를 백악관으로 불렀다. 케네디 대통령은 핵무기에 대한 이스라엘의 의도는 무엇이냐?고 페레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페레스는 “각하,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중동서 핵무기를 처음으로 꺼내 드는 쪽이 절대로 저희는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라고 답변했다. 케네디는 답변에 만족했는지 혹은 체념했는지 핵 문제를 더 거론하지 않고 면담이 끝났다(<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 시몬 페레스, 2017).

그가 은유적으로 시인한 핵무기 개발의 사실은 당시 이스라엘 국내는 물론 해외서도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핵무기의 존재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은 페레스의 ‘핵 모호성(NCND)’ 입장은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핵 정책이 됐다.

이스라엘의 핵 모호성 전략 벤치마킹

페레스는 1956년부터 프랑스 정부를 집요하게 설득해 이듬해 여름 파리서 비밀 핵 개발지원 협약을 체결하고 원자로 건설 공사를 시작했다. 이후 프랑스의 총리가 선거로 계속 바뀌는 과정서 협약이 파기될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었다.

페레스는 협약이 파기됨과 동시에 내용이 공개돼 프랑스가 이스라엘 핵개발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아랍 전체가 프랑스를 적대시할 것이라고 설득과 압박을 가했다. 마침내 프랑스는 예루살렘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는 핵 기술의 원천을 제공한 파리는 역설적으로 중동 국가를 앞세워 돌파했고 핵 모호성 전략으로 워싱턴의 반대를 무마시켰다.

페레스는 주변 국가들이 특정 국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정복 의지와 군사력 우위가 필수라고 판단했다. 그는 디모나의 핵시설은 주변 국가들에 군사력 비교를 어렵게 만들어 전면적인 공격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석유는커녕 물조차 없는 척박한 이스라엘 모래땅에 원자력 에너지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중차대한 과업이라고 주변을 설득했다. 페레스가 핵 개발을 구상했을 때 모사드와 같은 정보기관은 소련의 개입을 의식해서 반대했다.

과학자와 기술자는 맨땅서 터무니없는 계획이라고 반발했고 경제관료들은 막대한 재원을 조달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미래를 조망한 벤구리온 총리는 젊은 애국자의 충정을 수용했고 지지했다.

페레스는 10번의 장관, 3번의 총리나 대통령으로 이스라엘에 봉사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협정을 맺은 공로로 199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의 핵개발 추진 막전 막후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향후 한반도 안보 상황이 예기치 않게 흘러갈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한반도의 상황은 물론 다르고 우리는 유대 시오니즘 네트워크도 없다. 10개월도 안 남은 미국 대선은 트럼프의 재집권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그는 방위비 부담금을 5배 올리고 북핵 보유에 대해 타협도 가능하다는 소문이다.

2만8500여명의 주한미군을 유지하는 미국 국방수권법이 2026년에도 합의될지 미지수다. 4월 워싱턴 선언의 확장 억제가 요동칠 수 있는 만큼 북핵 대응서 시몬 페레스의 핵무장론 선견지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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