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지난 28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 표결서 부결 처리됐다. 이날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여부에 대한 무기명 표결서 찬성 101표, 반대 161표, 기권 9표로 부결 처리했다.
노 의원은 표결에 앞서 신상발언을 통해 “거듭 말씀드리지만,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다. 범법자로 몰아서 정말 억울하다”며 “이건 정상적인 수사가 아니라 사람 잡는 수사”라고 호소했다.
이날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표결에 앞서 본회의에 출석해 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하면서 ‘청탁 녹음파일’ ‘문자메시지’ 등을 언급했다. 한 장관은 “노 의원이 청탁받고 돈을 받는 현장이 녹음돼있는 파일이 있다”며 검찰이 확보한 노 의원이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도 공개했다.
이튿날인 29일, 박찬대 민주당 의원은 “장관이 개별 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보고를 듣거나 수사에 개입하지 못하게 돼있다”며 한 장관의 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서 “기존의 법무부 장관은 체포동의안의 취지나 절차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의원들이 판단할 수 있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정도가 아닌,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박 의원의 워딩은 마치 한 장관이 기존 법무부 장관들과는 달리, 표결에 참여했던 의원들 및 국민들에게 노 의원에 대한 혐의를 구체적으로 발언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었다는 취지의 주장으로 읽힌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이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
앞서 민주당은 해당 사안에 대해 지난달 22일과 지난 15일, 의원총회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었다. 당시 노 의원은 “결백하다. 그렇게 살지 않았다”며 혐의가 없음을 강조했다. 연일 검찰의 야당탄압을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이 체포 기로에 서 있는 상황에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은 상식적으로도 크지 않다.
즉, 이날 한 장관이 노 의원의 혐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했던, 하지 않았던 이미 의원들 개개인의 찬반은 정해져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심지어 이날 본회의에 앞서 민주당은 의총을 열고 “정치 검찰을 동원한 야당 파괴, 정적 제거 수사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부결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날 법무부는 이례적으로 “현행 법령상 법무부 장관은 검찰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며(정부조직법 제32조),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되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검찰청법 제8조)하고 있다”며 즉각 반박에 나섰다.
법무부는 “적법한 보고절차에 따라 사건을 보고받고,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전에 표결의 근거자료로서 범죄 혐의와 증거관계를 사실대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은 법무부 장관의 당연한 임무”라고 주장했다.
이어 “범죄 혐의나 증거관계에 대한 설명 없이 동전 던지기처럼 깜깜이식으로 체포동의안의 가결 또는 부결을 결정해야 한다는 일부 정치인의 주장은 죄가 인정되는지와 체포가 필요한지가 아니라 정당의 손익계산에 따라 체포동의를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법에도 상식에도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의 반박과 앞선 의원총회 개최 등을 감안하면 이번 박 의원의 법 위반 의혹 제기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 보인다. 특히 박 의원이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날 민주당은 “서울중앙지검, 수원지검, 성남지청 성명불상의 검사 및 수사관에 대해 ‘공무상 비밀누설죄’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이 같은 민주당 차원의 움직임은 민주당의 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논란을 ‘한동훈 고발’로 덮으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른바 정치권에서 자주 사용되는 전략 중 하나인 ‘이슈는 이슈로 덮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한 여권 인사는 “김의겸 민주당 의원이 법무부 국정감사 당시 ‘청담동 의혹’을 제기하면서 다른 국감 핵심 사안들이 죄다 묻혔던 경향이 있다”며 “이후 첼리스트가 경찰에 출석해 한 장관 및 윤석열 대통령을 봤다는 건 거짓말이었다고 자백하면서 해당 건은 결국 유야무야됐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날 국회 체포동의안 부결은 어느 정도 예상돼있던 결과였다. 정가에선 ‘이변이 없는 한’ 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부결 처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노 의원이 야당 의원이고 과반(150석) 이상인 169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이 단독으로 부결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당장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도 감안해 선례를 만들어야 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체포동의안 표결 직후 한 민주당 관계자의 “노 의원 체포동의안은 동의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반대하면 당내 논란이 커지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발언도 나왔다고 한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당시 성남FC 구단주로 있으면서 2016~2018년 두산건설, 네이버, 분당 차병원 등 기업으로부터 160억여원의 후원금을 유치하고, 이들 기업은 건축 인허가나 토지 용도변경 등 편의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보했지만 경북 안동 등 지방 일정을 소화하며 세 결집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의원이 자신의 체포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특권 뒤에 숨으려고 할 게 아니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당당하게 출석해 결백을 소명하고 그에 따른 사법부의 판단을 받는 것이 당원 및 국민들로부터 더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노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친전을 보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 정계 원로인사는 “국회의원들에게 불체포특권이 부여된 것은 부당한 탄압에 흔들리지 말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라는 뜻”이라며 “그런 국회의원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특권을 검찰 수사를 막는 데 악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비리나 부패 혐의까지 방탄막을 쳐서는 곤란하다”며 “이처럼 오용·악용 소지가 계속 되풀이된다면 폐지를 논의할 때가 왔다는 방증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 처리된 데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명방위훈련’이 국회서 성공적으로 수행됐다. 이재명 예행연습. 실전은 걱정 안 해도 될 듯”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도 “가재는 게 편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는다”며 “민주당이 당론을 정하지 않고 자유투표를 한 것 자체가 비겁하다.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같은 당 류호정 원내 대변인은 “시대착오적인 불체포특권은 대한민국 시민이 국회를 불신하는 이유 중 하나”라며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시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탄 국회를 자처했다. 이런 결정은 국민의 거센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노 의원은 지난 2020년 2월부터 12월까지 21대 국회의원 선거비용 등의 명목으로 사업가 박모씨 측으로부터 모두 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지난달 16일, 검찰은 노 의원의 자택 압수수색 당시 약 3억원에 달하는 현금다발을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