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퀴어축제 둘러싼 잡음

2022.06.27 15:08:27 호수 1381호

“게이·트젠은 그냥 걷고 싶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국내 최대 성소수자 행사로 불리는 ‘퀴어문화축제’가 코로나로 중단된 지 3년 만에 돌아온다. 이 가운데 서울시가 유독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밀어 논란이다. 조직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보수 기독교계가 맞불을 놓으며 충돌 우려도 커지고 있다. 행사 개최 전부터 잡음이 끊이질 않는 모양새다.



서울시가 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를 조건부 승인했다. 지난 15일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는 이날 회의를 열고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신청한 서울광장 사용 신청 안건을 수정 가결했다.

혐오 뚫고
행진한다

조직위는 다음 달 12일부터 17일까지 모두 엿새간 행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민위는 다음 달 16일 하루만 사용토록 결정했다. ‘신체 과다 노출과 청소년보호법상 금지된 유해 음란물 판매·전시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도 따라붙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민위에서 시민과 충돌 가능성 등을 우려해 사용 기간을 줄이기로 했다”며 “조건을 어기면 차기 축제 개최 시 서울광장 사용이 제한된다는 것을 주최 측에 알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조직위는 코로나 확산 이후 3년 만에 오프라인 축제를 열기 위해 지난 4월 서울시에 서울광장 사용신고서를 제출했다. 조직위는 2020년 오프라인 개최를 취소한 뒤, 지난해까지 행사를 온라인 위주로 꾸려왔다. 


서울시는 조직위의 서울광장 사용신고서를 즉각 수리하는 대신 시민위 안건으로 상정했다. 서울시는 축제가 처음 열린 2015년을 제외하고서는 줄곧 시민위에 판단을 맡겨왔다. 시민위는 매번 심의를 거쳐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했다.

다만 이번에는 시민위의 판단이 기존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와 관심을 모았다. 퀴어축제를 승인한 3·4·5기 시민위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 구성됐으나, 현행 7기 시민위는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인 지난 3월 구성됐다는 이유에서다.

조직위는 서울시의 시민위 안건 상정에 반발해왔다. 신고제인 서울광장 사용을 퀴어축제에 대해서만 시민위 안건으로 상정하는 것은 ‘차별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조직위는 지난 15일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가 “서울시 인권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다시 광장운영위에 안건을 상정한 것은 기만행위”라고 비판했다.

서울시 인권위원회는 2019년 이 사안과 관련해 권고문을 발표했다. 권고문에는 “서울시는 부당한 절차 지연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조직위는 지난달 17일에도 비슷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조직위는 “적법하게 진행된 서울광장 사용신고를 당장 수리할 것”과 “조직위의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 허가 신청의 불허를 즉각 취소하고 허가서를 발부할 것”을 요구했다.

3년 만에 7월 중 개최 계획
시, 성소수자 차별 앞장?

조직위는 이날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고제인 서울광장을 성소수자 행사에만 허가제로 집행하려는 것은 서울시의 차별적 행정”이라고 주장했다. 조직위 주장에 따르면 광장운영위에 안건으로 상정되는 사례는 퀴어문화축제가 유일하다.

이어 “조직위의 서울광장 사용신고는 규정에 맞게 진행한 절차였으나 이에 대한 서울시의 행정은 명백하게 조례를 위반하고 있으며, 조례에서 명기하고 있는 시의 업무를 방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에는 “위법하고 무책임한, 자의적 행정을 당장 멈추고 시민의 광장 사용을 보장하라”며 “적법하게 진행된 조직위의 서울광장 사용 신고를 당장 수리하라”고 재차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신고제 전환’을 반대했던 전력을 들어 “여전히 불편한 사안에 대해서는 허가제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초 광장 사용은 ‘허가제’로 시작됐다. 2004년 제정된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광장 사용을 위해서는 서울시장의 허가가 필요했다.

오 시장이 이를 적극 활용하면서 일부 시민과 갈등을 빚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맞아 광장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오 시장은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워 시민들의 광장 진입을 막았다. 그다음 달에는 6·10항쟁 기념행사를 개최하려는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불허했다. 

두 건을 비롯한 여러 신고가 반려됐다. 결국 일부 시민의 주도로 서울광장 조례개정운동이 시작됐다.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는 주민발의가 목표였다. 삽시간에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의 인적사항과 서명이 모였다.

결국 신고제 변경을 담은 조례개정안이 2010년 9월 서울시의회에서 통과됐다. 하지만 오 시장은 조례 공포를 거부했다. 이 바람에 서울시의회가 개정안을 직접 공포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입맛대로
허가 결정

오 시장은 대법원에 ‘서울광장 조례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소송은 오 시장이 물러난 이후인 2011년 12월에야 취하됐다.

서울광장 사용 허가권은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 하지만 시민위에 관한 단서조항이 허가제의 명맥을 사실상 잇고 있다. 개정된 조례에 따르면 예외적으로 ‘서울광장 조성 목적인 건전한 여가 선용 및 문화 활동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시민위의 논의를 거칠 수 있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시민위 임명권은 시장에게 있다. 경우에 따라 시장 ‘입맛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퀴어문화축제는 매번 ‘신고제 속 허가제’라는 통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예외적인 행사에 해당한다. 서울시 관행이 돼버린 ‘시민위 안건 상정’은 결과적으로 오 시장에게 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 허가권을 쥐여주는 셈이다.

또한 조직위는 서울시의 조직위 사단법인 설립 불허 처분을 비판했다. 서울시는 조직위의 사단법인 설립 신청에 대해 “서류적 조건을 완비했다”면서도 지난해 8월 불허 처분을 내렸다. 조직위는 이에 대한 행정심판을 진행했다.

“합리적 이유 없이 성소수자를 차별해 그들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처분”이라는 서울특별시 인권위원회 지적도 이어졌다. 인권위원회는 서울시에 불허 처분을 취소하라고 권고했다.

그런데 서울시가 행정심판에서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이 헌법에 어긋나 설립 신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는 지난달 3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보충답변서를 제출했다. 서울시는 보충답변서에서 조직위 정관을 문제 삼았다. 조직위 정관 3조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비롯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어우러지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영상문화와 문화·예술 콘텐츠를 개발하고 향유하는 소통의 장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헌법 핑계로
소수자 차별

서울시는 이 조항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성소수자가 평등한 대우를 받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것’이란 내용이 설립하고자 하는 법인의 목적이라면 이는 “현행 헌법 36조 1항에 합치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헌법 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가 이를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서울시는 “헌법재판소도 이 조항에 따라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권리·의무 관계에 대해 판단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서울시는 “정관상 목적의 현행 헌법상 실현 가능성, 퀴어축제 행사의 정관상 목적 관련성, 그간의 행사 경과 및 행사 개최와 법인 설립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익에 따라 판단한 것이므로 적법하다”며 조직위 측의 법인 불허가 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서울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 14일 서울시의 조직위 사단법인 설립 신청 불허에 대해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조직위는 “서울시는 조례와 시행규칙뿐 아니라 헌법마저도 입맛대로 해석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적극적인 저지 움직임이 포착된다. 교계 각종 단체는 여전히 코로나가 유행하는 상황과 서울광장이 시민 모두의 공간임을 들어 축제 개최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지난 16일 성명을 내고 “서울시민 모두의 건전한 여가 공간을 음란·퇴폐의 중심지로 변질시키는 데 서울시가 앞장섰다는 점에서 규탄받아 마땅하다”며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은 이제라도 1000만 서울시민 앞에 명백히 잘못을 시인하고 즉시 허가를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시민위, 기간 축소하고 조건부 허용
조직위·교계, 각기 반발…충돌 우려

이어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 1박2일간의 행사를 허용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시민 안전에 대한 몰이해와 경각심 결여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조직위는 행사 준비를 위해 행사 전날인 다음 달 15일에도 광장 일부를 사용할 수 있다.

‘동성애동성혼 반대 국민연합’은 “서울의 중심인 서울광장에서 동성애퀴어행사를 하려는 의도는 명백하다”며 “동성애와 성전환을 정상적인 인권이라 강변하고, 이를 비판하거나 반대 사람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의 이번 결정은 향후 전국적인 동성애퀴어행사에 매우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며 “위원회는 건강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퀴어행사의 정체와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이 행사를 절대 허용하지 말아달라”고 촉구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506개 교계와 시민단체가 모인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 상임대표 원성웅 목사는 “아쉬운 결정”이라면서도 “신체 과다 노출이나 음란물 판매 금지 조건 등이 내걸린 것은 우리 쪽에서 강력하게 항의하며 관철한 주장을 일부 수용한 결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오는 8월20일쯤 서울시청 인근에서 퀴어축제 반대 성격의 행사를 열고자 준비 중”이라며 “이 행사를 통해 퀴어축제와 동성애 문화를 반대하며, 한국사회에 건전한 성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이끌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맞불 집회’를 시사한 만큼, 그동안 행사 당일에 반복돼온 물리적 대치·충돌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직위는 교계 반발을 ‘혐오’로 규정했다. 김유미 ‘한국 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QnA) 대표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서울시가 차별적 행정을 이어가고, 혐오와 차별을 끊어내지 못하는 큰 이유가 교회의 목소리임을 안다”며 “(교계는)우리가 기자회견을 이어가는 이 순간에도 반대편에서 신앙의 언어로 혐오의 말을 뱉어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독교 반대
방해 논란도

김 대표는 “저들은 퀴어문화축제가 가정과 교회를 해체한다고 말하지만,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해 차별과 혐오를 반복할 때 (가정과 교회가)해체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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