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잊힌 존재, 범죄 피해자

  • 이윤호 교수
2022.05.09 09:00:00 호수 1375호

모든 사법절차 과정에서 범죄자의 인권은 철저하게 보장된다. 연쇄살인마라고 할지라도 직접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국선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재판에 임할 수 있다.



심지어 교도소 내에서도 각종 교육·훈련·상담·치료 등 질병에 대한 치료를 망라하는 교정처우를 받을 수 있다. 오죽하면 ‘교도소가 아니라 국립호텔’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겠는가.

그렇다면 이들에게 피해를 당한 범죄 피해자들은 어떤가.

10여 년 전 장기를 외부에 달고 다녀야 할 정도로 끔찍한 피해를 당했던 ‘나영이’는 고통을 오롯이 혼자 견뎌야 했다. 나영이와 가족을 위한 상담·치료는 물론이고, 직업 훈련 및 알선, 신변보호도 없었다.

나영이는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밖에 없음에도 말이다. 치료비마저 스스로 감당하다가, 모 대학병원에서 무상지원이 이뤄졌을 뿐이다.

나영이뿐 아니라 대다수 범죄 피해자가 비슷한 현실에 놓여있다. 범죄자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으며 당당히 자신을 변호하고 최후진술까지 할 수 있지만, 범죄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것과 누릴 수 있는 권리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범죄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범죄가 신고되고, 기소돼야 재판이라도 받을 수 있다. 체포되지 않고,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재판조차도 받을 수 없으며, 범죄 피해자는 재판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검사가 대신한다.

타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의자의 최후진술권이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문제는 범죄 피해자들이 1차적 피해는 물론이고, 사법절차를 거치며 심각한 2차 피해를 겪는다는 사실이다. 범죄 피해자들은 때로는 가해자에게 당한 것도 모자라, 사법절차·기관·사회로부터 추가적인 피해를 겪는다.

몇몇 범죄 피해자는 범죄자보다 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대부분은 무고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범죄 피해자에게 주어진 권리는 거의 없으며, 재판을 거치더라도 사법절차나 결과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게 된다.

사법절차조차 처음부터 진행되지 않거나 지연되는 것도 부지기수다. 어렵게 재판이 열려도, 자기 재판 절차임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증인으로서 증언대에 서는 길밖에는 없다.

직접 변호인과 자신을 대변하고 변호하는 가해자와 국가(검사)라는 제3자가 대신하는 재판이 과연 누구에게 더 유리하겠는가. 당연히 재판 결과는 범죄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더 유리하기 마련이다.

‘사법정의’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죄에 상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범죄자의 죄질에 상응한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다수의 범죄 피해자들이 형벌적 사법 정의마저 실현되지 않는다고 성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 사법정의란 가해자에 대한 죄에 상응한 처벌은 당연하고, 피해가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최소한 가해자와 동등한 권리와 지원이 제공돼야 한다.

그것은 형평성의 원리이자, 무고한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국가 책임이기도 하다.


범죄 피해자가 본인 재판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검사가 대신한다면 엄격한 의미에서의 ‘당사자주의(Adversary System)’에도 어긋난다. 피해 당사자는 검사·국가가 아니라 피해자 본인이며, 가해자에 맞서 주도적 지위를 가지고 재판에 임할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를 더 이상 ‘잊힌 존재(Forgotten Being)’ 쯤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피해자는 사법과 사회의 주인이자 주체로 부각돼야 한다.

“가해자 중심(Offender-Centered) 및 가해자 지향(Offender-Oriented)”이 아니라 “피해자 중심(Victim-Centered) 및 피해자 지향(Victim-Oriented)“의 사법정의를 기대해본다. 


[이윤호는?]

▲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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