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자치’ 없는 자치경찰

  • 이윤호 교수
2022.04.12 09:08:05 호수 1371호

지난해 7월 어쩌면 현대 경찰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르는 변화가 있었다. 자치경찰의 전면 시행이 바로 그것이다.



몇 년 동안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해왔던 자치경찰을 전국적으로 전면 시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흔히들 첫술에 배부르겠냐고 한다. 무언가 처음 시작하는 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위안 삼기 위해, 기회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경찰역사의 대전환점이 됐어야 할 자치경찰에 대한 뒷말이 많다. 

칭찬과 환호로 보낸 성찬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치경찰에 대한 말들은 현재 불만과 문제의 제기로 모아진다.

오죽하면 어느 현직 지방자치경찰위원장이 공식적인 행사에서 “자치경찰제는 법적 근거가 모호해 조직이 유명무실하고, 예산이 없어서 지역 특색에 맞는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을까.


자치경찰제에 대한 비판의 대열에는 자치경찰위원장뿐 아니라 현직 자치단체장도 가세한다. 어느 자치단체장은 민선인 자신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그래서 지금의 자치경찰제는 자치경찰이 아니라, 그냥 경찰자치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자치경찰의 근본 취지는 이렇다. 과거 중앙집중적 국가경찰은 조직, 기능, 역할, 임무, 책임, 그리고 권한 등 거의 모든 경찰 관련 사항이 획일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경찰의 봉사가 요구되는 치안 수요는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인 경찰로는 지역별 치안 수요에 맞는 맞춤형 치안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했다.

이와 더불어 전국 지방자치가 시행돼 관선 자치단체장이 아니라 민선 자치단체장에 민선 교육감으로 교육자치가 시행됐다. 마지막 남은 자치가 바로 경찰자치인 만큼 자치경찰제는 이제 피할 수 없다.

자치경찰은 이런 토대에 기초해 지역별 치안 수용 특성에 맞는 경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간단한 핵심이자 기본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게 자치경찰의 현주소다.

자치경찰이라고 하는 경찰관은 여전히 국가경찰 신분이고, 국가경찰과 같은 제복을 입고, 국가경찰로 근무하던 시설과 건물에서 근무하며, 국가경찰로 하던 같은 일을 그대로 하고 있는데 무엇이 달라졌는지 경찰도 시민도 알 리가 없다.

자치경찰 도입 몇 개월 후에 실시됐던 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런 슬픈 현실을 증명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 절반 가까운 시민들이 자치경찰제도를 인지하지 못했으며, 경찰 28%가량이 부정적으로 답했다. 응당 맞춤형 치안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던 시민들이나 그런 치안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던 경찰 스스로도 과거 국가경찰과 달라진 게 없다고 답한 것이다.

이 같은 여론 아래 현직 자치경찰위원장, 자치단체장의 하소연은 현재의 자치경찰에 ‘자치’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자치경찰은 일하는 장소, 경찰로서의 신분, 소속된 조직이 국가경찰과는 달라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국가경찰, 수사경찰, 자치경찰이 한 지붕 세 가족처럼 일원화된 상태다. 세계 어디서도 찾기 어려운 이상한 형태의 괴물처럼 된 것이다.


그야말로 ‘자치인 듯, 자치 아닌, 무늬만 자치’ 경찰이라는 것.

달라진 점을 굳이 찾는다면 자치단체마다 생긴 자치권 없는 자치경찰위원회와 그 사무국의 존재다. 인력 수요만 가중됐을 뿐이고, 그만큼의 현장인력이 줄어든 게 현실이다.

자치경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대도, 과거 생활안전과에서 112상황실로 그 소속이 바뀌어 지역 치안의 핵심인 예방기능보다 신고 후 대응에 방점이 찍혔다.

시민의 안전이 오히려 더 위협받지나 않을까 우려되는 시점이다.

당연히 경찰이 ‘경찰자치’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진정한 ‘자기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핵심 키워드인 ‘자치’가 전제돼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그 나름의 숨은 이유가 있다. 현재의 자치경찰제도는 선진국의 자치경찰처럼 지방자치의 원리에 입각해 설계된 게 아니다. 검찰개혁이라는 대의명분하에 이뤄진 수사권 조정과 비대해질 국가경찰권을 축소하는 방편으로 이뤄졌다.

물론 그 결과로 ‘경찰자치’는 상당 부분 성취되겠지만, 진정한 자치경찰을 위한다면 자치가 가능해져야 한다. 이는 곧 자치단체에게 예산과 인사의 권한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그 책임도 져야 한다.

그래야 자치단체별 치안 수요에 특성화된 경찰의 역할, 사명, 기능에 맞는 조직을 갖출 수 있고, 진정한 자치경찰이 가능해진다. 자치경찰은 소속, 역할, 신분, 심지어 제복까지 국가경찰과는 달라야 한다.

 

[이윤호는?]


▲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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