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온' 이재명 막는 걸림돌

2022.04.11 13:31:48 호수 1370호

주류행 열차 ‘끽’하면 나락행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리더는 여러 가지 능력을 가져야 한다. 내부를 통솔할 수 있는 카리스마와 그때그때 전략을 설정할 수 있는 판단력, 기조를 끌고 끝까지 끌고 나갈 수 있는 추진력 등이다. 여기에 요즘 같이 어지러운 시국에는 한 가지 능력이 더 필요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기지’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 능력을 고루 갖춘 인물로 이재명 상임고문을 지목하고 있다.



당내 ‘비주류로 정치판에서 수십년간 정치생활을 이어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대선을 치르며 자신의 인기와 능력을 입증한 이 고문은 정치인 인생 제2막으로 넘어가려 한다. 민주당 물밑에서 영향력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지금 차기 당 대표, 그리고 차기 대통령 후보감으로 성장 중이다.

위기를
기회로

이 고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였다. 비록 ‘10년 정권교체 주기설’을 깨며 이례적인 패배를 기록한 민주당이지만, 세간에서는 이 고문에게 만큼은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인 ‘졌잘싸’ 타이틀을 붙여줬다.

시작부터 불리했던 대선에서 미미한 차이의 패배를 이끌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였다. 그의 대권 가도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던 정치 평론가들은 이 고문의 개인 비리를 문제삼은 바 있다.

여러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대권후보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주요 패인이라며 민주당의 패인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 고문은 실제로 대장동 사건을 비롯해, 아들의 도박 논란, 부인의 갑질 논란 등이 연이어 터지며 여러 차례 곤혹을 치렀던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 의견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이런 곤혹을 치를 때마다 이 고문이 능력을 입증해냈다는 의견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민주당 의원들은 보통 대선후보였다면 낙마 수순을 밟아야 할 사건들이었지만, 기지를 발휘한 이 고문이 논란들을 차근차근 해결해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 고문이 ‘사과’와 ‘반박’을 적절히 섞어서 대응했다고 평가했다.

대장동 사건으로 부당한 세력이 과한 이익을 챙겨간 것에 대해서는 ‘최종 결정권자’로서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지만, 개인 비리에 대해서는 거세게 반박했다.

거대한 부당이익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본인이 노력해서 어느 정도 이익을 회수해 성남시민들에게 돌려줬다는 논리로 맞선 것이다.

그는 지난 경선 과정에서 붉어진 화천대유 대장동 특혜 이익에 대해서 “대장동 개발사업의 고정이익을 확정해 공공에 70% 환수되는 것은 내가 설계한 것”이라며 “1조3000억원의 사업비 중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걸 예상한 당초 수익은 6000억원대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중 70%가량인 5500억원을 성남시가 고정이익으로 먼저 받도록 한 것이 대장동 개발사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공격을 방어함과 동시에 자신의 성과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대장동 건을 대응한 것이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난해 11월에는 “해명보다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먼저여야 했다”며 “‘내가 깨끗하면 됐지’ 하는 생각으로 많은 수익을 시민들에게 돌려 드렸다는 부분만 강조했지, 부당이득에 대한 국민의 허탈한 마음을 읽는 데에 부족했다”고 처절한 반성문을 SNS에 올렸다.

“반은 내편” 이만하면 ‘졌잘싸?’
리더의 부재, 이재명계가 메꿀까

태도가 180도 바뀐 데에는 이 고문의 정치적 식견이 한몫 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보단 민심을 읽어내 표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가미된 것이다. 민심에 따라 바뀌는 적절한 대응법은 본선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자녀의 도박 문제가 불거지자 “아들의 잘못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부모로서 자식을 가르친 데 부족함이 있었다”고 논란 하루 만에 재빠르게 사과했다.

공세를 이어가던 국민의힘 측에서는 사과 후 크게 공격할 수 없었고, 사건은 큰 영향 없이 마무리되어 가족 비리 관련 논란을 잘 방어한 사례로 남았다.

배우자 김혜경씨에 대한 ‘갑질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이 고문은 “문제가 드러날 경우 규정에 따라 책임지겠다”고 밝히면서 “이번을 계기로 가족, 주변까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겠다”고 언급했다.

이후 대선운동에서 김씨의 행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극민의힘 측은 상대적으로 배우자 문제는 없다고 자부하던 터라 이 역시 타격이 클 것이라 예상했지만 사건은 미미한 역풍 수준을 맞고 지나갔다.

흔들리는 배에서 키를 잡은 선장이 뱃길을 읽고 위기를 빠져나가듯, 이 고문의 대선 행보는 늘 절묘했다.

이때 생겨난 그에 대한 믿음은 그를 주류 정치인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최근 있었던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재명계의 복심이라 평가받았던 3선의 박홍근 의원이 당선된 것이다.

이로써 이 고문은 수십년간 이어왔던 ‘비주류’ 정치인 인생을 청산하고 ‘주류’ 정치인으로 나아갈 기지개를 켰다.지방선거에서 이재명계 의원들이 주도해 승리로 이끈다면, 8월에 있을 전당대회에서 이 고문은 당 대표까지 노려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앞길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다. 이 고문의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을 사람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어난 숱한 논란은 그를 주류 정치인으로 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기도 하다.

주류 견인차
덧나는 상처


더욱이 상처는 계속해서 덧나는 중이다. 가장 크게 덧나고 있는 상처는 역시 대장동이다. 

검찰은 대장동 수사를 진즉에 시작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세간의 이목을 끈 사건이니 만큼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대장동 의혹은 지난해 8월 말 처음 제기된 꽤 오래된 사건이다.

민주당 경선 예비후보였던 이낙연 캠프는 대장동 의혹을 무기로 지속해서 이 고문을 공격했다. 이렇게 흠결이 많은 후보가 민주당의 대권주자로 나서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검찰은 논란이 불거지고 한 달이 지난 9월28일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이튿날 전방위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화천대유 핵심 관계자로 알려진 정영학 회계사가 녹취 파일 19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부터다.

해당 파일에는 내부 고발성 내용이 담겨 있어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 검찰은 생각했다. 녹취록으로 수사에 탄력을 받은 검찰은 이 고문의 측근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구속했고,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과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연달아 소환 조사했다.

주요 인사들의 소환 조사와 더불어 천화동인 1호 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와 화천대유의 자회사 NSJ(천화동인 4호)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남욱 변호사를 구속 수사하기에 이른다.

이 고문의 앞길을 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대장동 관련 인물들의 입이다. 대선 전까지 유 본부장과 김씨, 남 변호사는 이 고문에게 유리한 증언들만 쏟아낸 바 있다. 

유 본부장은 모든 혐의를 부인한 채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지 않은 상태고, 김씨는 오히려 이 고문 때문에 본인들의 사업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한 것이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공개된 녹취록에서 그는 “이재명 시장 욕을 많이 했다”며 “공산당 같은 X이 우리 사업을 뺏어가려 한다”고 발언했다.

이 녹취는 그동안 이 고문이 주장했던 ‘공공이익 환수’가 실제로 이뤄졌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대장동 관련 또 다른 김씨의 녹취에서 이 고문의 대결 상대였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겨냥한 치명적인 말도 드러났다.

그는 “나는 윤석열과도 싸우는 사람”이라며 “내가 입만 열면 윤석열은 죽는다”고 말해 세간의 의심을 윤 당선인 쪽으로 쏠리게끔 만들기도 했다.

대선 패배 후
재판으로 직행?

이렇게 이 고문에게 ‘불리하지 않게’ 돌아가던 대장동 관련 검찰 수사가 점점 이 고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대선이 끝난 후부터다. 

이 고문과 그의 최측근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 등 ‘성남시 윗선’ 라인이 대장동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정황들을 다른 사람들이 증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증언을 한 사람은 황무성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이다. 그는 대장동 개발의 걸림돌이 되는 자신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이 고문이 사퇴를 종용했다는 증언을 했다.  

황 전 사장은 대선이 끝난 지 한달 뒤인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심리로 열린 대장동 공판에서 “유한기 전 개발사업본부장이 이재명의 지시로 사표를 내라고 했다”는 발언을 했다. 실제로 황 전 사장은 대장동 개발사업 직전에 사퇴한 바 있다.

이른바 성남시 윗선 라인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 나온 것이 이것이 처음이다.

황 전 사장은 “내가 대형 건설사를 대장동 사업 컨소시엄에 넣으라고 했는데, 이재명(당시) 시장이 대형 건설사를 빼라고 한 것과는 반대됐다. 내가(이재명 시장의 뜻을 따르지) 못했다”며 이 고문이 당시 자신의 사퇴를 종용하게 된 뒷배경을 설명했다.

이 고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은 황 전 사장만이 아니다. 대장동 사업 관련 로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민용 변호사는 성남시장 비서실을 수차례 찾아가 관련 보고서를 직접 전달했다는 증언을 했다.

대선이 끝난 후 5일이 지난 지난달 14일, 정 변호사는 형사합의 22부 심리로 열린 14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정민용 팀장이 보고서를 성남시장 비서실에 갖다준 일이 복수의 횟수로 있었다”고 증언했다.

지난달 11일에도 출석해 “타당성 용역 자체가 현금 흐름에 관한 가정이 보수적일 수 있다. 용역 결과보다 많은 이익이 생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는 두 차례 증언에서 모두 이 고문을 겨냥했다. 대장동 개발에 대한 보고서를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고문이 봤을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와 개발 이익이 매우 높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증언이다. 두 증언은 모두 이 고문이 그동안 대장동 사건에 대응하며 했던 발언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법조계는 지금까지 했던 대장동 수사보다 앞으로의 수사가 더욱 예리하게 이 고문의 목을 조일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대장동 수사와 내부 권력이 변수
86그룹·송영길 합류 ‘거대 계파’

한 법조계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선이 끝난 후, 검찰의 완전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윤 당선인의 뜻이 검찰 내부에 전달되고 있다”며 “대장동 수사가 이에 완전히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라 말했다. 법조계는 대장동 수사는 앞으로 더 힘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내부 결속 부재도 만만치 않은 장애 요인이다.

비주류 정치인으로 살았던 이 고문이 주류로 자리 잡으려면 그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주류가 자리를 내줘야만 한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일조하고 국정을 책임지던 ‘친문(친 문재인)계’ ‘친낙(친 이낙연)계’ 의원들이 그들이다.

최근 원내대표를 ‘친이재명계’에게 내줬지만, 그동안 갖고 있었던 모든 기득권은 아직 내려놓지 않았다.

민주당 인사들은 지방선거까지 약 2개월, 전당대회까지 약 4개월 남은 현 시점에서 이 고문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고 말하지만, 아직 ‘주류’로 평가받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직 민주당 내부에는 절대다수의 친문 의원들이 자리하고 있고, 소수의 ‘정세균계’ 의원들 또한 ‘반이재명계'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유독 약했다고 평가받는 ‘원팀 정신’이 지방선거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고문의 주류행 열차는 제대로 탄력받지 못한다.

복수의 민주당 인사들은 친문계와 정세균계 의원 중 몇몇이 이 고문을 극도로 꺼려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지난 대선 본선에서 이낙연 전 대표가 공식적으로 선거운동에 함께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낙연 캠프에 몸담았던 몇몇 인물이 윤 당선인을 도와주는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송영길 전 대표와 운동권으로 대표되는 86그룹(80학번·60년대생)이 이재명계에 힘을 보태면 친문에 버금가는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정계 인사들은 이들을 결속력이 매우 약한 집단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으로 뭉친 친문과는 달리 이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따라 모인 집단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패배한다면 모두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더 무서운
내부 총질

대장동 수사와 민주당 내부 세력은 현재 이 고문이 걷고 있는 꽃길에 재를 뿌리고 있다. 그러나 대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선에서 위기들을 차근차근 헤쳐나갔던 그가 당권 가도에서도 똑같은 기지를 발휘해 문제들을 해결해나간다면 무난하게 당권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다. 이재명의 ‘주류행’ 열차는 이제 막 출발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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