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세계 곳곳의 기후가 급변하고 지진과 홍수가 이어진다. 화산폭발은 물론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지구 종말의 전조증상이라 주장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지금, 파멸의 시간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정말 지구는 이때 재앙을 맞는 걸까.
5125년을 한 주기로 계산하는 고대 마야 달력에서 그 주기가 끝나는 날은 2012년이다. 중국의 주역을 수리적으로 분석한 그래프는 2012년에 0이라는 수치를 가리킨다. 주식 변동을 예측하는 ‘웹봇로봇’ 역시 2012년 이후로 예측이 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동서양의 예언들이 모두 한날에 멈춰져 있다는 것이다. 2012년 12월 21일. 이 날이 바로 인류 최후의 날이다.
‘재앙의 2012’
예언인가 경고인가
상당수 사람들은 성경이나 각종 예언들도 2012년을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이블코드’가 대표적 사례. ‘바이블코드’는 성경 원본의 히브리 글자를 배열하면 ‘암호화’돼 있던 특정 단어나 문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원자폭탄을 입력하면 일본, 히로시마, 1945가 나타났고 히틀러를 입력하면 나치 등의 단어가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저널리스트 마이클 드로스닌은 저서 <바이블코드>에서 “2012년 혜성이라는 단어 근처에서 ‘부스러지고 밖으로 던져질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산산조각 낼 것이다’라는 문구가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종말론은 사실 인류의 기원과 함께 계속됐다. 해마다 각종 추측들이 쏟아져 나오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3년전 쯤, 서점가에는 지구 종말을 다룬 책이 넘쳐났다. <아포칼립소 2012>, <월드쇼크 2012> 같은 책이 대표적.
<월드쇼크 2012>는 대부분의 2012년 예언서가 ‘신의계시’ ‘종교적 이유’를 강조한 것과 달리 2012년 동짓날 벌어질 천체의 움직임에 대한 과학적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종말설’과학적 논리·과거예언 재해석 나돌아
화산폭발·외계인 침략·소행성과의 충돌로 끝?
책에 담긴 과학적인 증거에 따르면 현재 지구의 자기력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고 2012년에는 북극과 남극이 뒤바뀐다는 것이다.
물리학 전문가인 그렉 브레이든(Gregg Branden)은 자신의 책에서 “자기장 역전 현상은 지난 7천600만년 동안 171번 일어났고, 적어도 14번은 지난 450만년간 일어났다”며 “실제 지구 자기의 강도는 2천년 전 최대치에서 계속 감소해 현재는 38%가 줄어든 상태”라고 주장했다.
지구상의 생명체에게 지구의 자기장은 일종의 ‘신호체계’ 역할을 하고 있다. 자기장이 변화하면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뇌구조와 신경계, 면역체계, 인지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최근엔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지구 멸망 시기가 1999년이 아니라 2012년이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1999년은 예언을 잘못 해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각종 예언들과 결합해 더욱 강한 임팩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지구의 종말은 어떻게 올까. 지난 4월 유명 지구과학 전문학자들은 ‘지구 종말 예상 시나리오 9가지’의 내용이 담긴 책을 발간해 눈길을 끌었다.
과학자가 밝힌
종말 예상시나리오
이들의 첫 번째는 예상 시나리오는 스위스 제네바 인근에서 행해지고 있는 ‘물리학 실험의 실패’다. 이 실험은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만약 엄청난 에너지를 다루는 이 실험이 순간의 실수로 잘못될 경우 지구 전체가 폭발할 위험이 있다. 두 학자는 이 사고의 발생 가능성은 ‘낮음’이지만,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인류 전체가 멸종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가능성은 ‘화산폭발’이다. 아직 지구 곳곳에는 인류 생존에 영향을 끼칠 거대한 활화산이 많이 있으며, 거대한 화산폭발과 화산재로 1000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발생 가능성은 ‘보통’이다.
세 번째는 ‘빙하기 또는 태양폭발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인한 종말이며, 가능성은 ‘낮음’, 예상 피해 인명수는 10만 명 정도다.
네 번째는 ‘외계인의 침략’으로, 가능성은 '보통'이며 만약 침략을 받을 시 인류 전체가 멸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다섯 번째는 ‘컴퓨터의 지배’다.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기술 때문에 결국 인간 세상은 컴퓨터 등의 기계가 지배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로, 발생 가능성은 ‘보통’, 예상 피해 인명수는 10억 명 이상이다.
여섯 번째는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로, 발생 가능성은 ‘보통’이며 예상 피해 인명수는 1000만 명 이상이다.
일곱 번째 시나리오는 인류가 치료할 수 없는 ‘치명적인 벌레의 공격’이다. 이는 바이러스와 연관돼 있으며, 기나 음식물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는 유행성 바이러스와 벌레 등으로 지구가 멸망할 가능성은 ‘다소 높음’, 예상 피해 인명수는 1000만 명 이상이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
뜨고 있다?
여덟 번째는 ‘별의 대규모 폭발’이다. 실제 2008년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WR104라 불리는 별이 폭발함으로서 그 영향이 지구에까지 미칠 것을 우려한 적이 있다. 이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음’이지만 인류 전체의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
마지막 아홉 번째 시나리오는 ‘나노 기술의 악몽’이다. 나노 기술이 발전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들이 우리의 공기나 물에 유입될 경우 모든 물질을 분해시키거나 또는 끝없이 복제돼 인류의 생활을 망칠 수 있으며, 가능성은 ‘보통’, 예상 피해 인명수는 10억 명에 달한다.
이러한 주장들이 온라인 전역에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구 종말을 확신하고 불안에 떨고 있다. 각종 포털사이트에는 지구종말, 재해 대비와 관련 카페만 수 십여 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종말을 피하는 방법 등의 정보를 공유하거나 재난이나 종말이 와도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연구한다.
한 지구 종말 인터넷 사이트 회원은 “환경적인 변화나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이상 징조를 봤을 때, 확실히 종말이 온다고 생각한다”며 “종말을 늦추기 위해선 점점 파괴되는 지구 환경에 관심을 갖고 오염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페 우후죽순…지하벙커 파기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탓
이어 그는 “재작년부터 땅속에 창고를 만들어 놓고, 3년 치 식량을 준비해두었다”며 “종말이 오면 여름이어도 겨울처럼 춥다는 말을 듣고 이불이나 방한용품도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7년 전부터 재난 재해를 대비하기 위해 지하벙커를 짓고 있다는 한 남성이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50대 사업가인 백준흠씨는 경기도 산 속의 한 과수원에 지하 벙커를 짓고 있다. 그리고 함께 살 50여 명을 모집 중이다. 지원할 수 있는 자격요건은 까다롭다. 생존을 위한 기술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확인된 사실 없이 주기적으로 떠도는 설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직장인 김모(33·남)씨는 “확실히 세상이 예전과는 달리 변화를 겪고 있지만 그렇다고 종말이 합리화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이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세상 변화의 심각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미래학자들 역시 종말설에 현혹되지 말자고 조언한다. 한 미래학자는 “특별히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종말설을) 많이 나돈다. 미래는 인간의 선택에 달린 것이지 미신적인 것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며 “종말설에 현혹되기 보다는 지금의 인류가 객관적으로 직면한 문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라
종말 예정일로부터 100여일 남은 지금. 정체불명의 종말 카운트다운은 시작됐다. 어떤이에게는 쳇바퀴 도는 삶을 종결지어줄 ‘대형 이벤트’로 어떤 이에게는 시한부 삶을 사는 것과 같은 두려움으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건 지나가는 해프닝일지도 모를 종말이 아닌 현재의 무력감이라는 것이다. 새로이 만들어야 하는 건 노아의 방주가 아닌 미래의 희망이다.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오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명언처럼.
(사진=영화 <2012>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