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립정착금 떼인 박민우씨

2021.03.02 12:02:42 호수 1312호

“그 돈이 있었다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추워서요, 입고 있으면 안 될까요?” 마이크 착용을 위해 겉옷을 벗어 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박민우씨는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 민우씨는 조금만 기온이 떨어져도 보일러가 얼어붙는 월세 30만원의 집에 살고 있다. 현재 민우씨는 영락보린원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다. 
 

▲ 과거 영락보린원에서 퇴소 당시 자립정착금을 떼였다는 박민우씨 ⓒ고성준 기자


지난 22일 고아권익연대 사무실에서 민우씨를 만났다. 다음은 민우씨와의 일문일답.

▲영락보린원에서는 언제부터 살았는지.

- 네 살인가, 다섯 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시설에 맡겨졌다. 가기 싫다고 떼쓰고 울고 불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부모님은 이혼하고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던 것 같다. 첫 번째 시설에서 몇 개월 있다가 영락보린원으로 전원됐다. 영락보린원에서 14~15년을 살았다.

▲당시 생활은 어땠는지.

- 성경에 나오는 인물 이름을 따서 요셉방, 마리아방, 베드로방 등으로 나뉘었다. 나이로 구분해서 방을 썼다. 방 2개, 거실, 주방이 있는 공간에서 10~14명 정도 같이 지냈던 걸로 기억한다. 새벽에 예배드리고, 학교 갔다가 돌아오면 공부시간이 있었다. 나는 친구들하고 쏘다니느라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후원금 내역서 같은 걸 본 적은 있는지.

- 중학교 때까지인가? 선생님이 1년에 1번 정도 후원금 내역이 적힌 종이를 보여주셨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후원자들이 많이 있었고 금액도 많았기 때문에 ‘든든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퇴소할 때 상황이 기억나는지.

- 선생님이 갑자기 짐을 싸라고 했다. 그리고 2~3일 뒤에 자립생활관으로 옮기게 됐다. 가방 하나, 옷 한 박스, 이렇게 가지고 나왔다. 고등학교를 다 마치지 못해 다른 애들보다 일찍 나온 건가 하고 생각했다. 

▲퇴소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좀 덜 떨어지고 공부도 많이 못해서인지 아르바이트 사장들이 나를 많이 등쳐먹었다. PC방에서 일할 땐 몇 만원씩 용돈처럼 주고 월급을 주지 않기도 했다. 월급을 달라했더니 ‘내가 언제 널 고용했냐. 네가 날 돕겠다고 하지 않았냐’는 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자립정착금에 대해 알고 통장 내역을 봤을 때 기분은.

- 퇴소 당시 백 얼마가 든 통장 하나만 주면서 그걸로 살라고 해서 부당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해서 그런 건가, 이렇게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랬는데 통장 내역을 보고 내가 만져보지도 못한 돈이 들락날락했다는 걸 알았을 땐 ‘정말 뭐지?’ 싶었다. 

▲영락보린원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영락보린원 반응은.

- 내가 바라는 건 영락보린원에서 당시 일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힘들게 산 만큼 적절한 피해 보상도 원한다. 하지만 영락보린원에서는 자기네들도 모르는 일이고 너무 오래된 일이다 보니까 이런 일에 좀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색이다. 지난주 화요일(23일)에는 원장님이 나를 따로 불러 ‘개인적으로 월세 한두 달치를 챙겨주겠다’고 하더라. 거절했다.


▲자립정착금을 제대로 받았다면 민우씨의 생활이 달라졌을까.

- 한 푼, 한 푼이 정말 귀했다. 1만원, 2만원이 급한 상황이었다. 자립생활관에서 월세 몇 만원이 없어서 쫓겨나 길바닥 생활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많은 돈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내게 그 돈이 있었다면 그때 참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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