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론, 1·19 개각, 용산 철거민 참사, 소통부재…’
기축년 새해가 밝았지만 벌써부터 크고 작은 ‘악재’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은 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상태다. 대통령에서부터 여권 인사들까지 모두 다 ‘좌초 위기’에 내몰려 있는 것. 때문에 제1야당인 민주당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견제세력으로서 국민들에게 ‘희망가’를 들려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1야당인 민주당은 어떤 각오와 자세로 기축년 새해를 달릴 준비를 하고 있을까. <일요시사>는 설특집으로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와의 대담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 및 여야 국회 현안, 민주당의 향후 진로 등을 짚어보았다.
일각에선 정치인들은 깨끗하지 못하고,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말을 한다. 그래서 정치인이라는 신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색무취(無色無臭)’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를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은 이런 차원에서 “그에게는 ‘무색무취’가 느껴진다”고 입을 모은다.
원 원내대표는 최근 ‘MB악법’을 막기 위해 투쟁 정신을 불사르기도 했다. 온화한 이미지로 비쳐져 왔지만, 정작 자신은 반독재 민주투쟁 정신이 살아있다고 말한다. 또한 제1야당 원내대표로서 민주당이 서민정당으로 발돋움을 하기 위한 전략도 이미 세워놓은 상태다.
원 원내대표는 인터뷰를 하는 도중 민주당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면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강경하고 단호한 어조로 반박하기도 했다. 그만큼 원 원내대표가 꿈꾸는 ‘청사진’은 확고했다. 다음은 원 원내대표와의 일문일답.
- 새해 벽두부터 ‘용산 철거민 참사’가 발생했다. 참으로 불미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야당 원내대표로서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농성 중이던 주민들과의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MB ‘속도전’이 낳은 불행한 사태다. 국민과의 대화·타협 없이 국정 전반에 걸쳐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에 대한 산물인 셈이다. 일례로 테러진압을 하는 경찰 특공대가 투입된 것은 정권 ‘속도전’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 1·19 개각도 속도전으로 비롯된 것 같은데 이번 개각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 이번 인사는 전형적인 혈연·학연·지연 인사로서 갈등·분열을 일으키려는 개각이다. 소통·통합이 없다는 얘기다. 미국의 오바마 신임 대통령은 국민통합 인사를 기용했다. 이에 반해 이명박 정부는 끊임없이 분열을 일으키는 인사를 펼치고 있다. 용산 참사도 개각인사들이 국민과의 소통을 생각하지 않고 대통령의 뜻이라면 속도전도 불사하겠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와 원세훈 국정원장 내정자를 파면해야 된다. 특히 국무총리실 박영준 국무차장,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1차장이 개각 대상에 포함된 것은 속도전의 망령이 되살아났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법안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국회 폭력사태가 전개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도 야당을 강도 높게 비난했는데.
▲ 안타까운 점은 국회가 국회로서 자기 역할을 하게끔 대통령이 존중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여야가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국회가 운영돼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속도전을 지시하고 국회를 ‘전쟁터’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도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이 다시 전쟁을 하라고 지시를 했으니 싸울 수밖에 없다.
- 이와 관련, 한나라당이 ‘폴리스라인법’을 추진 중인데 입장은 어떠한가.
▲ 상식 밖의 얘기다. 국회도 ‘룰’이 있다. 한마디로 국회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드는 행위다. 국회에서 절차·규정을 무시하고, 강제로 예산이나 법안을 추진하기 위해 스스로가 ‘전쟁’이라고 선포했을 정도다. 속마음이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국회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대통령은 물론 여당이 야당을 존중하고 입법부로서 책무를 느껴야 된다고 본다. 야당은 부득이하게 국회가 전쟁터가 아닌 민의의 전당임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 국회가 전쟁터라니…. 이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야당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 여당이 한미 FTA 날치기, MB악법 강행처리를 위해 절차를 무시해왔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물리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를 전쟁터로 만든 것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들에게 너무도 죄송하다.
1·19개각 MB정부 속도전 상징, “이명박, 국회 존중해야”
대북정책 ‘무책임’… 과감한 대북정책 필요성 강조하기도
- 몸싸움을 통해서라도 MB법안을 저지함으로써 입법전쟁에서 ‘야당이 승리했다’는 말도 있는데.
▲ 일단 MB법안 강행처리를 저지한 것은 승리다. 그러나 크게 봐서는 대화·토론장이 아닌 싸움터로 전락해 버렸기에 책임을 통감한다.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고 비난을 받을 일을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여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 아직까지 법안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 아닌가. 쟁점법안 처리여부가 관건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한나라당 정병국 미디어산업 발전특위 위원장이 신문과 방송, 통신 융합시대에 대비한 미디어법 개정 등 미디어관련법 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는데 민주당의 입장은.
▲ 언론에 대한 다양성·자주성을 존중해야 한다. 재벌들이 방송·언론을 장악하게 되면 광고부분에서 우열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재벌에 거슬리는 기사를 쓰기도 힘들 뿐 아니라 미디어법에 대한 기대도 더 이상 없어진다. 언론의 자유는 국가적으로 보장·발전시켜야지, 산업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 최근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적부심이 기각됐다. 미네르바 구속과 관련한 당의 견해는.
▲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다. 국제적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미네르바가 올린 글 때문에 외환당국이 20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보다 미네르바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점은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다. 미국과의 특수 관계상 보다 긴밀한 대미채널이 가동돼야 한다고 보는데, 민주당에서는 채널이 있는가.
▲ 원래 민주당은 다양한 채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 집권 세력이 워싱턴의 새로운 인물로 등장함에 따라 이제부터 협의가 잘 이뤄질 것이다.
- 오바마 정부가 출범함으로써 한미 FTA 비준안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힐러리 국무장관이 “한미 FTA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 FTA 문제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미국이 공식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나타낸 후에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먼저 비준하려고 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계층갈등 등이 바로 그것이다. FTA 문제를 일방주의처럼 다룬다면 큰 잘못이다. 외교는 일방통행이 없기 때문이다.
- 미국의 대북문제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에 앞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 이명박 정부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말한다. 무책임한 전략이다. 민주당이 집권 시에는 ‘퍼주기’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대북라인을 구축해왔다. 개성·금강산 사업 활성화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리고 있어, 북한 정권이 붕괴해야 된다는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과거 YS정권 시절에도 북한을 비판, 경수로 비용만 지불하면서 ‘물주’ 노릇만 해왔다. 남북관계는 변화해야 된다. 방관하지 말고 과감한 대북정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 당내 문제도 심각하다. 민주당이 ‘인물 부재론’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 솔직히 대중성 확대에 어려움이 있다. 뚜렷한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에서 배출한 정동영 전 장관·손학규 전 대표·추미애 의원·정세균 대표 등 잠재력이 있는 인물이 의외로 많다. 이들이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
- 4월 재보궐 선거가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정동영 전 장관과 손학규 전 대표 복귀론이 대두되고 있는 상태다. 이들의 복귀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그리고 공천기준은 마련됐는가.
▲ MB악법 저지에 총력을 쏟다보니 공천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또 현역 정치인들의 당을 위한 ‘살신성인’의 자세가 필요하다. 손 전 대표와 정 전 장관은 당과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적극 나설 수 있고 당에서도 적극 지원할 것이다. 먼저 누굴 위한 것인지 생각하고, 의사가 있으면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경제에 무능한 민주당’이라는 당내 비판도 나오고 있는데.
▲ 적절한 비판이 아니다. 단지 야당이기 때문에 정책 주도를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실제 IMF 위기 때 일했던 분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김진표·강봉균 의원 등은 일선에서 IMF 위기 극복을 위해 전력을 다했던 경제관료 출신들이다. 특히 김효석 의원은 글로벌경제의 본질적인 문제들까지 잘 꿰뚫어보고 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 수도권에서 민주당의 아성이 완전히 무너졌는데.
▲ 사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역적 기반이 많이 약화됐다. 그러나 이는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 있다. 국민들이 ‘제대로 하는 야당’, 민주당을 지켜보는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민·중산층을 대변하는 정당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만들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4대강 정비 사업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게 야당의 주장인데.
▲ 이 대통령 스스로가 그런 의혹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공식적으로 ‘대운하 추진을 안 하겠다’고 선언만 하면 된다. 그렇지 않는 상황에서 대운하 사업의 전단계라는 의혹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이 이 대통령이 영구 집권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장기사업인 대운하를 추진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참모들이 존재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 4대강 정비 사업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 원론적으로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대운하 사업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감시할 것이다. 이는 야당으로서 당연히 해야 될 일이다.
- 민주당의 2009년 비전은 무엇인가.
▲ 뉴민주당 비전을 제시해 대안 정당으로 나갈 것이다. 더 나아가 대중적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해 심도있게 논의하고 준비중에 있다. 1차 목표는 정책정당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순식간에 멀리 있는 과제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당장은 21세기에 걸맞지 않고, 시대를 역행하는 반민주 악법에 맞서 싸울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인권·자유 등 서민을 위한 투쟁인 셈이다.
- 당내외 일각에서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나오고 있는데, 입장은.
▲ 부천시장을 두 번이나 역임할 당시 행정업무 등을 통해 많은 보람을 느꼈다. 현재 위치도 크기만 다를 뿐 업무 등은 다르지 않다. 따라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 출마는 하지 않을 것이다.
- 만약 당에서 요구한다면.
▲ 글쎄, 무겁게 생각은 해보겠다.
- 끝으로 이 대통령에 대한 고언(苦言) 한마디만 남겨달라.
▲ 국민들은 이 대통령이 통합의 정치를 실현시켜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례로 국민들은 이 대통령이 합리적이고 실용주의라는 기본 가치관을 잘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지지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부디 소통·통합을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원혜영 원내대표 프로필
▲1981~1986 풀무원식품 창업
▲1992~1996 14대 국회의원
▲1998~2003 민선 제2, 3대 부천시 시장
▲2004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위원
▲2005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2006 열린우리당 사무총장
▲2004~ 17, 18대 국회의원
▲2008 민주당 원내대표
대담=최민이 편집국장
정리=박형남 기자
사진=송원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