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법조인인 사법연수생들의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어섰다. 연수생 3명이 사설학원에서 고시생들을 대상으로 불법 강의한 사실이 적발된 것. 이들 중에는 연수원 성적 수석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다. 취업을 위해 성적표를 조작한 사법연수생도 적발돼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연이어 일어난 사법연수생들의 불법행위에 많은 이들은 질타의 목소리를 높인다. 어느 직업보다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미래의 법조인들이 돈과 취업을 위해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렸다는 이유에서다. 불법이 판치는 사법연수원을 들여다봤다.
성공의 보증수표로 불렸던 사법고시합격증이 점점 빛을 잃어가는 가운데 사법연수생들의 불법행위가 잇달아 드러났다. 그 첫 번째는 사법연수원에서 공부를 하던 연수생 3명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사설고시학원에서 불법 강의를 한 사실이다.
사법연수원생은 국가공무원법 64조에 따라 국가에서 월급을 받는 별정직 5급 공무원 신분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사설학원에서 영리활동을 할 수 없다. 이것을 알면서도 이들 연수생들은 몰래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들이 강의를 한 곳은 고시학원이 밀집해있는 서울 신림동 등지였다. 이곳에서 이들은 동영상 강의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비를 벌었다.
법정신 잃은 연수생들
이들 가운데는 특히 연수원 역사상 처음 4.3 만점을 받아 공동 대법원장상을 받아야 할 A씨(30)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지난 13일 열린 수료식에서 상을 받고 법조인의 길을 걸을 꿈에 부풀어있었지만 불법 강의사실이 알려지면서 징계를 면치 못하는 신세가 됐다.
사법연수원 측은 “학원 방문 및 관계자, 해당 연수원생을 불러 조사해 사설학원 강의 여부를 확인했다”며 “강의를 한 연수원생들 및 관련자가 더 있는지 확인중이다”라고 전했다.
어떤 직업보다 윤리적이고 준법정신이 투철해야 할 예비 법조인들의 규정에 어긋난 돈벌이에 많은 이들은 적지 않은 실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법연수생이 불법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벌이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에도 연수원생 3~4명이 적발돼 서면경고에서 감봉 처분까지 받은 적이 있었던 것. 이들은 결국 선배들이 당했던 수위의 처벌을 받고 남은 법조인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사법연수원측은 “학원 강의가 관행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윤리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한 사법연수생은 취업을 하기 위해 연수원 성적을 조작해 기업에 제출했다가 적발됐다. 사법연수생 B씨는 모 대기업 두 곳에 변호사로 취업하기 위해 성적표를 스캔한 뒤 3과목의 성적을 올려 고쳤다. 그런데 이를 본 대기업 법무실 측이 곧바로 연수원에 B씨의 성적을 확인했고 이 과정에서 위조 사실이 들통 난 것.
사법연수원은 이에 지난 14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성적표를 위조한 B씨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사법연수원 측은 정직 3개월은 연수생 자격을 박탈하는 ‘파면’ 다음으로 무거운 수준의 징계라는 입장이다.
B씨는 “성적이 낮으면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데 면접조차 불가능해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고 위조를 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정직 기간에 연수원 수습 과정에 참여할 수 없고 매월 봉급의 3분의 1만 지급받게 된다. 연수원은 이와 같은 결정 내용을 B씨에게 통보한 뒤 15일 이내에 이의제기가 없으면 이를 확정할 계획이며 이의를 제기하면 법원행정처 소청심사위원회가 다시 심사한다.
B씨는 현재 수료가 보류된 상태로 연수원은 징계기간이 지나면 B씨에게 수료를 허용할지를 재심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양심을 저버리고 불법행위를 한 사법연수생들이 잇달아 적발되면서 법조계의 도덕성까지도 의심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처 사회에 발도 들이지 않은 연수생들마저 일부 선배들이 했던 법을 저버리는 행위를 했다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엘리트 집단의 도덕적 불감증을 싸잡아 비판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연수생들이 불법을 저지른 배경에는 불황의 여파가 자리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법고시만 패스하면 탄탄대로의 인생이 펼쳐졌던 과거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열쇠 세 개를 든 신부감들이 줄지어 기다렸던 시절도 옛날이야기가 됐다. 사법고시를 패스하고도 취업조차 하지 못해 백수신세로 전락하는 사람들까지 나오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기침체까지 겹쳐 사법연수생들의 지위가 말이 아니게 떨어지고 있다. 법무법인과 일반 기업에서 신규 변호사 채용을 크게 줄이면서 올해 사법연수원 수료자의 취업률이 50%대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 것.
사법연수원에 따르면 지난 13일 수료식을 가진 38기 연수생 975명 중 이날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 347명에 이르렀다. 군법무관으로 입대하는 188명을 제외한 실제 취업대상자 787명을 기준으로 할 때 취업률은 56%로, 2007년 72%, 지난해 64%에 비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보통 법관이나 검찰 인사가 끝나는 2월과 대기업 공채 시즌인 3월에 취업이 확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무척 낮은 수치다.
윤리의식부터 확립해야
이 같은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연수원 측은 진로정보센터를 활성화시키고 취업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연수생들의 취업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펼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부에서는 연수생들의 적은 월급이 부정행위를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연수생의 월급은 1년차가 100만원, 2년차가 150만원선. 본격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연수생들이 받는 월급으로는 적은 금액이 아니지만 수년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시험을 준비한 연수생들에게는 턱없이 적은 월급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별도로 아르바이트비를 벌 수 있는 길을 찾다가 불법행위에 빠져들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일부에서는 법조인이 가져야 할 기본소양인 윤리의식은 뒤로 한 채 성적으로만 줄을 세우는 방식이 바뀌는 것이 불법행위 근절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