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헌법재판소가 시각 장애인들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의료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이제 국내 안마사 자격은 시각 장애인들만이 취득할 수 있게 됐고 그 이외 일반인들의 안마사 자격 취득 및 시술은 명확한 불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각 장애인들은 환호를 하면서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싸움’이 끝났다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현재 안마관련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일반인은 20만명. 이들이 하루아침에 자신의 직업을 잃게 된 상황에서 헌재의 합법 결정에 순순히 응하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안마의 모든 것과 최근의 합헌 결정에 따른 또 다른 논쟁을 집중 취재했다.
일반인들로 구성된 안마 및 피부 마사지 관련 단체들은 헌재의 합헌결정이 난 지 11일 만에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 또다시 시작된 것이다. 도대체 안마라는 것이 어떤 것이기에 이토록 끊임없는 싸움이 계속되는 것일까.
한국수기마사지사협회와 한국피부마사지사협회 등 일반인들로 구성된 안마 관련 11개 단체가 헌법 소원을 재청구했다.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안마사 자격 독점권을 허용하는 현 의료법은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는 10월30일 헌재로부터 ‘합헌’ 결정을 받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으며 또다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안마사 자격인증 없이 안마 행위를 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에도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시각장애인에게만 자격
안마관련단체 “용납 못해”
그러나 이번에 제기된 위헌 소송은 단순히 과거 주장의 반복만은 아니었다. 인격권과 결사의 자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뿐만 아니라 근로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까지 전반적인 것을 문제 삼았다.
장애인들만이 안마사를 할 수 있게 되면 일반인들은 안마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침해되고 동시에 근로의 권리도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광범위하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인격권에까지 확장될 수 있다.
지난번 헌법 소원 시 ‘직업의 자유, 평등권’만 문제 삼은 것에 비해 사뭇 비장해진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국회의장까지 피청구인으로 등장시켰다. 비시각 장애인들이 안마업에 종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고 ‘직무유기’를 했다는 이유다. 이들의 위헌소송 재청구는 안마를 둘러싼 이 싸움이 얼마나 첨예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이들은 또한 시각장애인과 비시각 장애인이 공존할 수 있는 보완 입법을 제출할 계획이어서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과 비시각 장애인의 헌법싸움을 결코 한두 해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왜 이토록 끈질긴 싸움이 계속되는 것일까. 안마는 유사 이래 인간의 자연스러운 치료 행위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어딘가 아픈 곳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곳을 문지르거나 쓰다듬고 또는 해당 부위를 꾹꾹 눌러왔던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법들이 총체적으로 쌓이고 모여 이른바 ‘안마’라는 말로 통칭되어 왔다.
서기 700년에는 중국과 일본의 궁정에서 정식으로 의학의 한 방법으로 채택되어 왔다. 그후 서양에서는 ‘마사지’라는 말로 부르게 됐고 중국에서는 추나, 일본에서는 모리로찌 등 각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발전되어 왔다. 이것이 보다 전문적으로 발달하는 과정, 특히 근대에 이르러 자격을 갖춰야 하는 기술직종으로 발달해온 것이다.
이런 안마는 특히 동양을 위주로 발달해온 것이 사실이다. 동양의 인체관은 ‘인간은 작은 우주’라는 철학적인 사상을 배경으로 기혈의 움직임을 중요시해 왔고 안마는 이런 기혈의 움직임을 조절하고 관리하게 해주는 하나의 방법으로 정착되어 왔던 것이다.
동양 위주로 발달한 안마
‘인간은 작은 우주’
특히 이같은 안마가 더욱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배우고 익혀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기구에 대한 연구 없이 가족들끼리도 함께 해나갈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안마는 인체에 어떠한 작용을 하는 것일까. 안마는 인체에 직접적인 자극을 가해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고 산성화를 방지함으로써 각 세포에 새로운 영양을 공급하고 활동력을 증진시킨다.
뿐만 아니라 혈관을 단련해서 체세포 자체를 강화함으로써 호르몬의 분비를 왕성하게 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함으로써 인체의 전반적인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마라는 것은 일상적인 질병 퇴치의 수단이기도 하고 자연치유력을 점점 증강시키는 최적의 건강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안마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안마를 잘하면 좋은 건강법이 되겠지만 그렇게 못했을 경우 오히려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각장애인들이 안마를 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강점이 있다. 치료 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과민대, 압진점 등 주요 부위를 찾아내고 이를 적절하게 다루는 것은 촉각이 발달한 시각 장애인들에게 매우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일 뿐, 절대적으로 시각 장애인들이 비시각 장애인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요약하자면 ‘선천적으로 우위에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얘기다.
시각 장애인들 위한
자생적 환경
현재 안마사는 의료법, 보건복지부령에 의해 교육받은 자가 시·도지사로부터 자격을 취득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안마사는 해부, 생리 병리, 보건 안마, 마사지, 지압, 전기치료, 한방, 침구, 의약 등 총 2000여 시간의 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를 보다 전문화하기 위해 시각 장애인학교 고등부에서 이를 정규 과목화하고 있다.
하지만 시각 장애인들이 안마업에 종사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촉각이 예민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단 ‘장애인’이란 점이 큰 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 이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활발히 돌아다니는 직업을 갖기가 거의 힘들다는 점이 또 다른 이유에 속한다. 또한 시각 장애인들은 삶의 경쟁력 역시 절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일부 신체장애나 혹은 약간의 정신장애가 있는 경우라도 얼마든지 일을 해나갈 수 있지만 시각 장애인들은 일반적인 직업에는 거의 대부분 종사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안마사 업종은 일종의 복지제도이자 고용제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시각 장애인들의 생계를 정부가 떠맡기에는 그 부담이 너무 큰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같은 안마사 제도를 통해 이들의 생계를 해결하고 자생적인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이런 형태의 시각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선진국에서는 ‘유보 고용’이라는 제도로 정착되어 있다. 특정 직종에 관해선 특정 장애인을 우선적으로 고용하도록 하여 그들에게 직업의 기회를 더욱 많이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자판기, 카페테리아 운영권을 우선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대만, 일본 등지에서는 안마사업을, 영국에서는 승강기 안내원, 주차 안내원을, 스웨덴에서는 복권 판매업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시각 장애인과 비시각 장애인이 공동으로 안마 직종을 영위해나가는 것이 제일 좋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이는 마치 체급이 맞지 않는 선수들끼리 경기를 치루거나 혹은 초등학생과 대학생이 경기를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각 장애인들은 말 그대로 시각 상의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는 다양한 점에서 비시각 장애인들보다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난항을 겪고 있는 안마사 자격증 문제. 과연 이번에는 또 어떤 방식으로 결론이 날지 관련업종 종사자 전체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