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남북전쟁 피가 피를 부른 복수혈전
남의 나라에서 영역싸움을 벌이던 조직폭력배들의 복수극이 벌어졌다. 베트남 출신의 불법체류자인 이들 조폭은 해묵은 지역감정으로 두 파로 나뉘어 싸움을 하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의 주 무대는 섬유공장이 밀집해 있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 장안동이다. 1년 전 남방파 조직원을 납치, 감금해 돈을 빼앗은 북방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설욕전이 벌어진 것이 이번 싸움의 주된 이유였다. 이처럼 불법체류자 가운데 조폭이 존재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늘어나는 외국인 범죄가 또 한 번 도마에 올랐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폭력조직을 만들어 라이벌 조직과 영역다툼까지 벌인 베트남인 조직폭력배들이 붙잡혔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지난달 28일 국내에 불법 체류하면서 두 폭력조직으로 나뉘어 서로 납치ㆍ감금해 현금을 빼앗은 혐의(인질강도 등)로 베트남인 럼모(43)씨와 즈모(26)씨 등 2명을 구속하고 달아난 드모씨 등 7명을 추적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월맹과 월남으로 나뉘어 북방파, 남방파란 이름의 폭력단을 만들었다. 베트남인들은 한국의 남한과 북한처럼 월맹과 월남으로 나뉘어 해묵은 지역 감정싸움을 하고 있는데 한국으로 건너 온 베트남인들도 두 조직으로 나뉘어 라이벌구도를 형성했던 것.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는 섬유공장이 밀집해 있어 베트남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서울 장안동이다. 두 조직은 평소에도 세력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가짜 권총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다른 조직원들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금품을 빼앗는 등의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의 싸움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은 지난해 9월29일이다. 경찰에 따르면 북방파 소속 조직원 럼씨 등 3명은 이날 오후 11시경 서울 답십리에 있는 한 공원에서 남방파 조직원 드씨 등 4명을 승합차로 납치했다.
그리고 북방파 조직원들은 용두동 럼씨의 집에 남방파 조직원들을 감금하고 폭행한 뒤 이들을 풀어주는 대가로 현금 5백만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라이벌 조직원에게 감금을 당하고 금품까지 갈취당한 남방파는 1년 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리고 지난달 19일을 설욕의 날로 계획해 실행에 옮겼다.
1년 전 북방파에게 굴욕을 당한 드씨 등 남방파 조직원 6명은 이날 오후 9시 30분 경 럼씨 등 북방파 조직원 2명을 답십리 내에 있는 공원에서 납치했다. 그리고 1년 전 당한 것과 똑같이 이들을 감금하고 흉기로 위협했고 현금 7백여만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남대문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지 못할 것으로 여기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베트남 전쟁시절부터 쌓여있던 앙금으로 해외에서도 남방파와 북방파로 나눠 오랫동안 갈등을 벌였다”고 전했다.
이처럼 그동안 풍문으로만 떠돌던 외국인 조직폭력단의 실체가 드러나자 외국인 범죄가 더욱 체계적으로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날로 늘어나는 외국인들의 범죄가 더욱 흉포화되지 않겠냐는 것.
실제 각종 통계들에서도 외국인 범죄의 무서운 증가세가 나타났다. 최근 3년 안에는 무려 60%나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김유정 의원에 따르면 2004년 8천8백18건이던 외국인 범죄가 2007년에는 1만4천1백8건으로 60% 증가했다.
특히 이번 사건의 주 무대였던 장안동처럼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한 지역은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가 더욱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태원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입수한 ‘2007년 1월∼2008년 8월 외국인 범죄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07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외국인 범죄 최다 발생 지역은 경기 안산시 단원구였다.
안산단원경찰서가 관할하는 이 지역에서는 이 기간 총 1천1백73건의 외국인 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산 역시 3D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서울 구로경찰서(8백4건), 서울 용산경찰서(6백95), 경남 김해경찰서(6백74건)등은 그 뒤를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드러난 불법체류자 조직폭력배의 실체는 그동안 개개인들에 의해 일어났던 범죄보다 더욱 조직화된 범행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만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조선족들로 이뤄진 ‘연변 흑사파’의 실체가 드러난 이후 외국인 범죄에 대한 공포가 확산된 사례도 있었다.
한편 사건을 수사 중인 동대문 경찰서 관계자는 달아난 조직원들에 대한 수사를 계속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폭도 복고가 대세?
70~80년대 수법 ‘시흥식구파’ 검거
지역 이권을 장악하기 위해 다른 지역 조직원과 불량서클의 고등학생까지 영입한 신흥 폭력조직 ‘시흥식구파’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경찰청 형사과는 지난달 29일, 경기도 시흥 일대를 거점으로 범죄단체를 결성, 유흥업소와 사행성 게임장 등의 이권에 개입하고 업주를 상대로 금품을 뜯은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시흥식구파’ 두목 윤모(47)씨 등 17명을 구속하고 3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 등은 2002년 5월 시흥식구파를 결성하고 2006년 4월부터 최근까지 6백여 차례에 걸쳐 시흥 신천리 일대 유흥업소와 사행성 게임장 업주를 상대로 3억원 상당의 금품을 뜯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2005년 4~6월 서울과 인천지역 신축 아파트 사전점검일에 조직원들을 동원해 자신들과 연결된 인테리어 사업자 외에는 출입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업자로부터 대가를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동네 선후배들을 모아 조직을 결성하는 기존 폭력조직과 달리 부천, 서울 등 외지에서 활동하는 폭력배들을 영입해 시흥 일대에서 금품을 뜯고 폭행을 일삼았다고 밝혔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 폭력 조직원 중에는 오모(30)씨 등 국내 이종격투기 선수 4명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이들은 불량서클에 가입된 고등학생들까지 조직원으로 영입해 조직의 몸집을 불린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시흥식구파는 물건을 비싼 값에 강매하는 등 1970~80년대 조폭들이 쓰던 수법을 이용해 금품을 갈취했다”며 “조직원들이 매일 밤 조를 짜 순찰을 도는 등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