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융 이용 40% 육박 ‘막장 저당 잡힌 인생살이’
달콤한 유혹에 빠져 도망자 인생 전락 ‘비일비재’
사채의 병폐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채의 유혹은 더 강렬해지는 추세다. 사채를 양성화한 대부업체가 늘어나면서 생활정보지, 지하철 광고판, 케이블TV, 전단 등에 사채 광고가 대폭 늘어났다. 최근 공중파TV에도 유명 탤런트가 등장하는 대부업체 광고들이 아파트 분양 광고 못지않게 자주 등장한다. 최고 연 66%의 고금리이지만 급하게 돈 쓸 일이 있는 사람에겐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법무부와 국정홍보처가 서울 및 6개 광역시 성인 5백명을 대상으로 ‘사금융 이용실태’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39.2%가 최근 10년간 1회 이상 사금융을 이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사채가 대중화되면서 사채의 늪에 빠져 도망자 인생으로 전락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과거 사채는 ‘막장인생들만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인들의 대부업체 이용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심지어 우량고객도 늘어나는 추세다.
막을 수 없는 사채 대중화
지난 4월13일 재정경제부와 금융연구원이 대부잔액 30억원 이상 5천억원 이하인 중·대형 대부업체 2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고객 가운데 연체기간이 3개월 미만인 정상 채무자 비중이 90%에 이른다. 시중은행이나 저축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 신용등급 1~7등급 비중도 60%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조사에 따르면 대부업체 이용자 가운데 빚을 갚을 능력이 평균 이상인 고객층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 대부업체 이용자 가운데 연간소득이 2천만원 이상인 이용자의 비중은 61.9%로 나타났다.
특히 연간소득 4천만원 이상인 이용자 비중도 31.4%나 됐다. 대부업체 이용이 대중화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연간소득 1천만원 이하의 저소득 계층 비중은 17.9%에 불과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대부시장 이용자의 64% 정도가 20~30대이고, 회사원이 56%, 자영업자가 20%로 나타났다”며 “이들 중 69%가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상태로 대부시장과 제도권 금융기관 이용자가 겹치는 상태”라고 밝혔다.
최근 대부업체로부터 5백만원을 빌린 김모(41)씨는 “일반 은행과 저축은행에 소액신용대출을 신청했지만 카드대금 연체가 있어 모두 거절당했다”며 “빨리 쓰고 갚으면 되지 싶어 대부업체에 전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5백만원 대출에 선수수료 20만원을 떼고 4백80만원을 받았다. 연이율은 64% 정도로 앞으로 매달 17만원의 이자를 내야 하지만 ‘한 달만 쓸 생각’이기 때문에 이자가 다소 높아도 대출방법이나 시간에서 ‘편리하다’는 생각이다.
김씨와 같이 외환위기 이후 경기 양극화와 내수 부진 등으로 생활자금 용도의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대부시장을 이용하는 고객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최근에는 제도권 금융시장을 이용하고 있는 금융 소비자의 상당수도 금융회사로부터 자금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대부시장을 동시에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부인 서모(34)씨도 대부업체의 대출을 ‘나름대로’ 잘 활용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매매한 아파트의 양도세 납부를 앞두고 대부업체를 찾았다.
서씨는 “양도세를 일시납부할 경우 10%의 감면 효과가 있는데 돈도 조금 모자라고 시간도 촉박해 대출을 받았다”며 “두 달 쓰고 이자를 40여 만원 내야 하지만 양도세 10% 감면액이 4백80만원이라 오히려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부업체에서 빌린 자금은 부동산시장의 윤활제로도 작용하고 있다. 전매제한에서 자유로운 오피스텔과 주상복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곳에 투자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
‘로또청약’으로 불릴 만큼 예상되는 프리미엄이 높고 당첨 즉시 전매가 가능해 무리하게 사채를 끌어다 다수의 이름으로 청약신청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고 아파트 분양신청을 했다가 당첨되자 계약금을 내기 위해 사채시장에서 급전을 끌어 쓰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신용등급이 높은 고객들이 제도권 금융시장을 활용하지 못하고 대부시장을 찾는 이유는 과거 연체기록과 보증 및 담보 부족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은행 문턱은 너무 높고 그렇다고 사채를 쓰기는 부담스러운 서민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던 카드사·저축은행·할부금융사들마저 서민대출을 갈수록 기피하고 있어 사채시장의 활성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사채 부동산시장에 깔렸다
한편 지난 4월5일, 권오규 재정경제부 장관은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대부업법상 이자율(최고 연66%)은 너무 높다”며 대부업체 이자 상한선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4월부터 시행 예정인 이자제한법상 이자제한인 연40%와의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대부업체 이자율도 낮추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이자율을 낮춰 서민 피해를 막고 단속을 강화해 고이율의 미등록 대부업체를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현재 대부업체 이자율 상한선이 연66%이지만 대형업체 몇 곳을 제외하고는 이것조차 지키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찬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10% 이하 담보대출과 금리 66%인 대부업체 사이에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중간단계 금융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담보가 없는 서민이 대부업체 이용자로 급격히 전락해버리는 일이 없도록 서민 금융기관의 신용대출 확대를 정책적으로 조금씩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