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특별대담> “DJ였더라면…” ‘대북정책 논하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9.28 09:34:38
  • 호수 12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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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였다면 달랐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민족 대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그간의 안부를 묻는 뜻깊은 시간이다. 그러나 북녘에 고향을 둔 이산가족과 실향민들에게 추석은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크게 느끼는 날이다. 
 

▲ 일요시사와 특별대담 갖는 정동영 전 대표

올해는 9·19평양공동선언 2주년,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 되는 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과,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과 악수를 나누며 평화를 약속했다. 평화의 시대는 그렇게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내 합의 내용을 무색케 하는 도발로 한반도 긴장상태를 고조시키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 측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피격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한반도 종전선언을 외쳤던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일요시사>는 지난 22일 참여정부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북한의 진의와 문재인정부의 문제점에 대해 진단했다.

다음은 정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2020년은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입니다.

▲2019년에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무서운 바이러스가 1945년부터 한반도에 존재해왔습니다. 바로 분단 바이러스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난 75년 동안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6·15선언은 이러한 분단 바이러스를 뚫고 지난 2000년에 처음으로 남북이 공식적으로 손을 잡은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6·15선언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분단의 역사는 6·15선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6·15선언 이전의 남북관계는 증오입니다. 피를 나눈 형제인데, 서로 죽고 죽였던 근친 증오입니다. 반면 6·15선언 이후는 화해와 협력입니다. 시대의 구분점이라는 측면서 6·15선언은 역사적으로 아주 의미가 큽니다.

-6·15선언 이후 9·19평양공동선언도 있었지만, 현재 남북관계는 여전히 긴장상태입니다.

▲여러 요소가 있지만, 핵심은 정치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리더십이겠죠. 독일은 1970년에 6·15선언처럼 동서독 정상이 손을 잡고, 20년 만에 통일을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6·15선언에 머물러 있습니다. 대결과 적대를 끝내고 화해와 협력으로 가자는 메시지는 독일과 우리나라 모두 같습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이후 4명의 지도자가 나왔지만, 아직도 제자리입니다. 정치와 리더십의 결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고성준 기자

-북한은 6·15선언 20주년 다음날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습니다. 소식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북한이 절박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쳐다봐라, 그런 뜻 아니겠습니까. 다분히 시위성입니다.

-무엇에 대한 시위라고 생각하십니까.

▲폭파 이전에 9·19선언이 있었습니다.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문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백두산에 올라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손도 잡았습니다. 감동적인 이벤트였습니다. 합의도 훌륭했습니다. 상응하는 조치가 이루어지면, 연변 핵단지를 폐기하겠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렸던 동창리도 폐기하겠다, 군사합의를 통해 비무장지대(DMZ)의 감시초소(GP)도 철수하고, 유해 발굴도 하고, 또 공동경비구역(JSA)을 비무장화하겠다, 얼마나 훌륭한 합의입니까.


그러나 합의서만 있습니다. 일부 진전은 있지만, 획기적인 합의 내용에 비해 미미합니다. 연락사무소 폭파는 여기에 대한 항변이라고 이해합니다. 북한이 ‘내가 판을 깰 수도 있어’라고 외치는 메시지입니다.

6·15 20주년, 여전히 답보
‘한국판 3통’ 실천이 답이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일이 남북관계를 어렵게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물론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에게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와 김정은 탓만 하면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구경꾼이 아닙니다. 한반도는 우리의 땅입니다. 북미와 남북은 한반도 평화의 두 축입니다만, 한반도 내에서는 북미 당사자성보다 남북 당사자성이 더욱 크지 않겠습니까. 어디가 더 중심이냐, 주축은 남북입니다.

-탈북자 시민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분별없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적대와 증오의 시기에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6·15선언을 통해 일단 손을 잡았지 않습니까. 대북전단 살포는 1990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역행합니다. 심지어 남북기본합의서는 노태우정부, 즉 보수정부 때 일입니다.

그때 남북이 합의한 사항이 무엇입니까.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 첫 번째 조항입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이 전단지에 뭐라고 썼습니까. 갖은 욕설로 ‘북한을 파괴하자’고 썼습니다. 이는 남북합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입니다.

-대북전단 살포는 북한 붕괴론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북한 붕괴론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각광받았는데, 기본적으로 탈북자들과 생각의 궤가 같습니다.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붕괴론이 나온 지 수십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북한은 살아있는 체제입니다. 대북전단 살포는 강하게 막아야 합니다. 남북교류협력법에도 위반됩니다. 법적 근거가 있는데 왜 이렇게 미온적으로 대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정원은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이 권한 일부를 이양 받아 사실상 2인자로 위임통치에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남북 대화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이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김일성에서 김정일, 김정은으로 체제가 이어지며 계속 변해왔다고 봐야겠죠. 놀라운 점은 동유럽 사회주의가 모두 해체된 상황에서 북한만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민족이 지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긍정적인 측면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맨손으로 일궈내지 않았습니까. 북한은 아직도 공산당 1당 독재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지독한 체제입니다.
 


-우리 정부가 어떻게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1990년 기본합의서, 6·15선언, 9·19선언으로 이미 방법은 다 나왔습니다. 실천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정부는 돌파력·실천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창의적으로 돌파하라, 그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남북관계에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진단하십니까. 

▲한국판 3통(통상·통행·통신)의 실천입니다. 자유롭게 장사하고, 왕래하며, 전화도 주고받자는 겁니다. 3통은 대만이 중국을 상대로 먼저 했습니다. 마카오를 경유하는 소3통을 하다가 직접 중국과 교류하는 대3통으로 전환해 성공을 거뒀습니다. 우리도 북한과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한국판 3통을 먼저 실현하면, 통일은 그 뒤에 따라옵니다. ‘지금 당장 어떤 식으로 통일할까’는 공허한 논쟁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유왕래의 시기를 앞당기는 일입니다. 

-통일부 장관(2004∼2005년)이던 시절 방북의 길을 크게 열어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독일은 통일을 위해 ‘작은 발걸음’ 정책을 내걸었습니다. 이는 접촉을 통한 변화입니다. 만나면 변화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통일부 장관이던 시절 한국판 작은 발걸음 정책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북으로 가는 문턱을 없애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에 갔다 오면 국가보안법 위반입니다. 문익환 목사가 대표적입니다. 이것부터 뚫어야 한다, 그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못 만나는데 어떻게 통일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2~3주씩 걸리게 되는 금강산 관광객 신원조회를 없앴습니다.


-당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방북 승인 건으로 국회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총련이 북한에 갔다 오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이전에 대법원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판결했습니다. 실정법을 위반한 단체이지만, 보내줬습니다. 남북교류협력법을 보면, 인적·물적 왕래에 대한 승인 권한은 통일부 장관에게 있습니다. 정부조직법 상 방북 승인 권한은 법무부·국정원이 아니라 통일부 장관에게 있습니다. 책임은 내가 지겠다, 그래서 보냈습니다.

다만, 북한에 가서 복잡한 일이 생기면 남북관계에 악영향은 물론, 우리나라 내부서 논란이 생길 수 있으니, 돌출 행동은 하지 말고 조용히 갔다 오라고 당부했습니다. 나야 장관을 그만두면 끝이지만,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한총련은 잘 갔다 왔습니다. 또 이적단체로 판결난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도 찾아와서 방북을 승인해줬습니다.
 

-방북했을 때 북한 체제에 동조하는 식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자신감을 가져도 됩니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북한에게 넘어가 거기에 눌러 살 사람은 없습니다. 한총련과 범민련의 방북을 승인한 이유는 우리나라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접촉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합니다.

▲세상은 이미 법보다 훨씬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의 기준으로 보면, DJ-김정일 정상회담은 DJ가 적의 수괴와 회합하고, 합의한 것 아닙니까? 물론 국가보안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아직 우리나라에 많이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현상을 열어가는 자세입니다. 내가 자부심을 갖는 부분은 통일부 장관을 했던 1년 동안 분단 이후에 최다 인원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점입니다.

한총련 방북 일화 공개
통일교육? 조희연 만나

6·25전쟁이 끝나고 2000년까지 50년 동안 2500명이 북한을 방문했는데, 2005년도에 10만명이 됐습니다. 금강산 관광객 200만명을 뺀 수치입니다. 양이 질을 변화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75년 동안 북남동서 중 북쪽으로만 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열어줘야 합니다. 사실상의 통일을 앞당기자, 자유왕래가 통일이다, 법률적·제도적·정치적 통일은 그 뒤에 오면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세대가 지나면서 통일을 염원하는 목소리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습니다. 통일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요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민주정부임에도 통일교육이 없습니다. 어른들도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데, 학생들은 어떻겠습니까? 말 그대로 백지 상태입니다. 통일교육 부재 상태서 미디어를 통해 북한을 보는데, 뭘 보겠습니까? 미사일 발사, 핵실험과 같이 부정적인 것들 투성입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재가 필요한데, 사실 어제(지난 21일) 일이 있어 서울에 갔다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만났습니다. 만나서 저와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둘이서 책임감수를 해 만든 책을 보여주며 서울시교육감 인정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미 대선이 6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미 대선에서 트럼프와 바이든 중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확고한 실천 의지입니다. 절대 트럼프나 바이든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트럼프를 따라가지 않았습니까. 남북관계가 트럼프를 끌고 갔어야 하는데,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한반도 운전자론’입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2018년 6월에 싱가폴서 ‘새로운 북미관계수립’을 약속했습니다. 이를 위해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고, 북한은 한반도를 비핵화하겠다는 좋은 합의를 했습니다. 바로 실천에 들어갔어야죠. 우리 대통령이 미국에게 북한을 견인해 비핵화로 이끌 테니 도와 달라,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도록 앞장섰어야 합니다. DJ였다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뒤에 한미워킹그룹이 탄생해 시간을 끌면서 합의가 빛을 바랬습니다. 기다리라는 ‘속도조절론’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생각일 뿐입니다.

-두 후보를 비교한다면?

▲트럼프는 국회 본회의장에 연설 왔을 때 봤고, 바이든은 상원외교위원장이던 시절 다보스 포럼에서 만나 두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바이든은 한반도 상황에 대해 비교적 많이 알고 있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동북아 전략이나 한반도에 대해 잘 모릅니다. 다만, 바이든이 최근 기자회견서 오바마를 계승하겠다고 말했는데, 굉장히 위험하단 생각입니다.

오바마의 대한반도 정책은 ‘전략적 인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결국 무시와 방치였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최악의 정책입니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원했기 때문입니다. 바이든은 오바마가 아닌 클린턴의 인게이지먼트 폴리시(포용정책, engagement policy)를 계승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추석을 맞은 <일요시사> 독자들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성경의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코로나도 끝이 있을 겁니다. 캄캄한 터널 속에 있지만, 터널이 끝나는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코로나로 잃은 것이 크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과 지혜도 쌓였다고 봅니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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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