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특별대담> ‘안개 정국 키맨’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야권 뭘 고민하나? 이대론 무조건 진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몸값’이 더욱더 오르는 분위기다. 그는 여권을 향한 합리적인 쓴소리로 남다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특집으로 지난 21일 국민의당 당사서 그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여러 현안을 짚고, 정치인 안철수의 과거와 미래를 들어봤다.
 

▲ 일요시사와 대담 갖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문재인정부에 ‘낙제점’을 줬다. 그는 화합과 통합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부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조국 사태’에 이어,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특혜 의혹 등으로 2030세대의 갈등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또 여권발 악재가 터질 때마다 양 극단의 목소리가 과잉 대변되면서 한국은 두 갈래로 나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음은 안 대표와의 일문일답.

-문재인정부가 강조했던 ‘공정’과 ‘정의’의 가치에 위배되는 여권발 악재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문정부는 위선적이다. 도덕적인 규범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우리 사회의 근본을 흔드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다.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라면 그걸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이 정부가 행동을 교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용 지식인, 어용 언론, 강한 팬덤이 정부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민심을 못 읽는 정부는 교만해지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의 불행이다.

-양 극단으로 갈라지는 경향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치는 화합과 통합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잘못을 비판하는 소수를 ‘악마화’ 해서 다수의 국민과 싸우게 만든다. 정부를 향한 비난의 방향을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택자와 무주택자,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심지어 의료인과 비의료인이 싸우고 있다.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이간질시키는 정치는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권력으로 탈영을 무마한 것이다. 일반 군인들은 조금만 늦게 귀대하더라도 영창을 간다. 누구한테는 엄격하게 적용되는 법이 권력자의 자녀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히려 ‘이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나오는 태도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과 규율을 흔들고 있다.

“위선적인 정부 낙제점”
“갈등 조장에 분열까지”

‘조국 사태’를 한창 겪을 때 조국 전 장관을 옹호하던 사람들은 “대리시험이 뭐가 문제냐”고 했다.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가 있나. 우리 사회가 추락하고 있다. 기본이 안 지켜지는 사회의 슬픈 단면들이다.

-집권 4년차인 문정부에 주고 싶은 점수는.

▲낙제점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굉장히 어려웠던 경제는 바닥 수준이다. 부동산 정책,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 근무제 등이 대표적인 실패 정책이다. 좋은 뜻에서 세운 정책이겠지만, 아마추어적으로 접근했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이며, 중국으로부터는 푸대접을 받고 있다.


대북관계 역시 문정부 출범 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 사회적으로도 국민은 분열되고 공정이라는 가치가 바닥에 떨어졌다. 대학 입시, 군 문제 등 정부여당 관계자들에게 특혜가 주어지고 있다. 합격점을 줄 수가 없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고성준 기자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전문가들이 내년 말에 코로나19가 진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코로나 종식까지 긴 터널이 있다고 하면 고작 3분의 1을 지나온 셈이다. 우리가 지나온 기간의 두 배를 더 지나야 하는데, 대통령이 직접 코로나19 종식을 이야기했다. 국가 지도자로서 무책임한 발언이다. 또 정부는 소비 쿠폰을 발행하고 임시공휴일을 만들면서 또다시 코로나19 2차 확산 문턱에 갔다.

코로나19 내년 말 종식 예상
“언택트로 전 세계가 재편될 것”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대규모 2차 확산을 막아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이 굉장히 고통받고 있고, 경기 침체로 중소기업이 타격을 많이 받고 있다. 이들을 살리는 건 정부서 해야 할 일이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전개된다. ‘언택트’라는 키워드로 전 세계가 재편될 것이다. 코로나가 종식 된 후 국민이 바로 적응할 수 있도록 지금 준비해야 한다. 정부가 어느 것도 뚜렷하게 잘하고 있지 않아 걱정이다.

-의사 출신이다. 최근 의사 파업 사태를 어떻게 봤는가.

▲정부가 왜 하필 지금 이러한 정책을 내놨는지 의문이다. 공공의대 도입 정책의 성공 여부는 10년 후에야 평가 가능하다. 코로나19가 종식된 내년 말 이후에 꺼낼 순 없었나. 일선서 코로나19와 열심히 싸우고 있는 의료진에게 돌을 던진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정책을 두고 이해관계자들과 일체 소통도 안 했다.

2016년 ‘녹색돌풍’을 일으킨 안 대표의 정치는 늘 외로웠다. 그는 양당제가 공고한 정치권서 기존 정당의 틀과 관성을 깨는 중도정치의 길을 걷겠다고 했다. 첫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서 진영논리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고, 신생정당이 원내 38석을 얻는 기염을 토했다. ‘삼김시대’ 이후로 교섭단체(20석)를 충족하는 유일한 3당이였다.

하지만 국민의당의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6년 국민의당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으로 안 대표가 물러난 이후 당내 극심한 내홍이 계속됐다. 안 대표는 이를 두고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가장 악독한 정당 탄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17 대선과 2018 서울시장 선거서 낙선한 후 해외 유학길에 올랐다. 그로부터 2년 뒤, 안 대표는 21대 총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양 진영의 극단적 대립이 이어졌고, 중도 세력이 설 곳은 없었다. 국민의당은 정당 득표율 6.8%를 기록하면서, 원내 비례대표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2016년 국민의당은 여야를 견제할 수 있는 제3당으로 자리 잡았지만, 결국 당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3당으로 출범해 많은 국민들이 기대를 가졌다. 이 세력이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청와대가 우리 당 의원들이 선거서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의혹을 씌워 10여명을 기소했고, 3년 뒤 대법원서 전원이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라는 판결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가장 악독한 정당 탄압이었다.

그런 사태가 생길 때는 한 번 피를 봐야 진정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 대표직을 사퇴했다.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당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 판단했다. 이후 당은 3당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첫째는 부정부패 정치다.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가 아니라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두 번째는 패거리 정치다. 좀 더 신랄하게 표현하면 ‘조폭 정치’다. 조폭 패거리의 판단 기준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다. 우리 편이면 아무리 잘못해도 감싸 안는다. 지금 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세 번째는 ‘자뻑’ 정치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왕 같은 정치, 국민을 하인 취급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의 폐해다.

-이를 답습하지 않는 ‘새정치’를 하겠다고 했는데.

▲상식적인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우리 편이라도 잘못했으면 잘못한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벌을 받고 다시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공익을 위해 봉사하고, 상식에 기반해 판단하는 정치다. 국민 아래서 국민을 섬기고자 한다. 이는 8년 전 정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변함이 없다.


-일각에선 정치 노선이 애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호하다는 비판이 많아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모호하다는 평가가 나아지질 않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기득권 정치 세력의 공격 수법이었다. 그들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날 공격하는 것이다. 내가 설명하는 목소리는 작고, 기득권 정치 세력의 목소리가 훨씬 크기 때문에 국민들에게는 모호하다는 이미지가 박힐 수밖에 없다. 낡은 정치의 이미지 조작 수법에 국민 분들이 많이 속으셨다.

8년 전 같은 실용정치 고수
“야권, 혁신경쟁 필요”

-중도실용정치를 어필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치 노선에 대한 왜곡이 많았다고 하지만 이는 변명이 될 수 없다. 농부가 밭을 탓하면 되겠나.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유튜브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 진중권 교수와 세 편 정도 대담을 냈는데 총 조회 수가 200만을 넘겼다.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는 조회 수가 10만~20만에 육박한다. 다른 당은 고작 2000뷰에 불과하다. 본질을 고민하고 정확한 사실을 전하려는 노력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3월 대구 의료 봉사활동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당 지지율이 올랐다.

▲아내를 의료 봉사활동 현장서 만났다. 대구에 의사가 부족하다고 해서 둘이 같이 대구로 내려갔는데 경황이 없어서 사진이 찍힌 줄도 몰랐다. 진심이 전달돼서 다행이다. 무엇보다 국민 분들에게 의료진들이 얼마나 힘든 환경서 일하고 있는지를 알려드려 보람 있었다.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표심과 직결되는 정치인의 ‘퍼포먼스’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나온다.

▲난 이미지보다는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국회의원 시절 나름대로 많은 일들을 했고 보람을 느꼈다. 2016년 김영란법 논의가 멈췄을 때, 여야 원내대표들을 만나 설득하고 논의해 본회의에 올렸다. 국회의원으로서 소신을 지키는 의정활동을 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런 노력은 결국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실 거라 믿고 있다. 그게 올바르게 정치가 발전하는 방향이라 생각한다.

내년 재보궐 선거를 앞둔 현재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는 국민의당과 국민의힘의 합당 여부다. 국민의힘은 그를 향한 러브콜을 꾸준히 보내고 있다. 국민의당이 가지고 있는 색과 상징성이 정치권서 적지 않을 뿐더러, 국민의힘이 가장 필요로 하는 중도 지지층을 당이 섭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여권에 대항하기 위해 양당이 합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하지만 안 대표는 야권의 정치 상황에 대해 “지금 이 상태라면 정권 교체는 물론, 내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승리도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야권의 혁신경쟁을 강조했다. 선거를 위한 연대보다는 야권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데 전념하겠다는 뜻이다.

-3석에 불과한 국민의당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의석이 많다고 해도 민심을 얻지 못하면 힘이 없다. 아무리 의석이 적어도 국민들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3석에 불과한 당이지만, 던지는 담론의 크기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국민 분들이 정부여당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일들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해 주신다.

-국민의힘과의 연대설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야권은 이 상태로 연대를 하든, 하지 않든 내년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서 이길 확률이 굉장히 낮다. 지금까지 야당은 4연패를 했다. 극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이기기가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면접원이 직접하는 여론조사 방식서 민심이 더 정확히 반영된다. 이런 방식서 여당 지지율은 40%, 제1야당은 20%를 기록했다.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가 난다. 낙관할 어떤 근거도 없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합당한다 해도 (여당 지지율에)훨씬 못 미치니 힘든 상황인 걸 객관적으로 알아야 한다.

-여러 언론을 통해 합당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의견이 바뀔 수도 있나.

▲지금까지 이야기한 건 바뀌지 않을 거다. 지금은 연대에 대해 고민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각자가 힘을 길러야 한다. 미래 담론을 향한 혁신경쟁이 필요하다. 국민 분들은 한 당에서 계속 같은 얘기를 하면 쳐다보지 않는다. 하지만 두 당이 경쟁하면 쳐다보는 분들이 생긴다. 국민들의 관심을 얻으면서 비호감을 없애는 것이 지지층을 넓히는 시작이다. 지금은 선거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훨씬 더 혁신하는 모습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지지자들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정치인 안철수는 역사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

▲묵묵히 실용정치의 길을 걸으면서, 나름대로 큰 변화들을 만들어냈다. 양쪽으로 나뉜 패거리 정치와는 다른 길을 가다 보니 굉장히 힘들었다. 양쪽에 속해 있었으면 편하게 정치를 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관심사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해결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초심을 잃지 않은 채 이 길을 걸어왔다는 것 자체가 보람된 시도였다.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 옳은 길, 최선의 길을 걷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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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