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7월’ 공수처와 검찰 인사 관전포인트

윤석열, 추풍에 낙엽 될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7월, 검찰 조직이 또 한 번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청와대와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범 시기를 7월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엔 검찰 인사도 예정돼있다. 지난 1월, 두 번의 인사로 손발이 다 잘린 경험이 있는 윤석열 총장에게 7월도 잔인한 달이 될까.
 

▲ 윤석열 검찰총장 ⓒ문병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청와대 상춘재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태년,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와 오찬을 겸한 회동을 가졌다. 이날 회동서 문 대통령은 “공수처 7월 출범이 차질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열리면 공수처법 시행을 위한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특수부 죽고
형사부 살고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정세균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서도 공수처의 7월 출범을 위해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을 신속하게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에는 공수처장 임명 절차가 규정돼있지 않아 법안 처리가 되지 않으면 공수처의 7월 출범은 어려울 수 있다. 

당장 청문회 대상을 정하고 있는 국회법에 공수처장이 빠져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를 담당할 국회 상임위도 국회법을 통해 정해야 한다. 또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통해 ‘임명동의안 회부’ 조항에 공수처장을 포함시켜야 한다. 민주당은 20대 국회에서 이를 개정해 통과시키려 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검찰 입장에선 공수처 출범보다 더 가시권에 들어온 게 인사 문제다. 추미애 법무부의 시그널이 여러 차례 감지되면서 검찰 내부에선 이미 7월 인사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취임한 이후 폭풍처럼 진행됐던 1월 인사 규모에 버금가는 큰 폭의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검사장은 총 다섯 자리가 공석이다.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이 물러난 자리에 고기영 전 서울동부지검장이 영전했고 이수권 대검 인권부장이 서울동부지검 직무대리를 맡고 있다. 대전과 대구, 광주고검 차장 자리도 현재 비어있다. 

이미 인사의 틀은 어느 정도 정해졌다. 지난달 18일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권의 공정한 행사를 위한 검사 인사제도 개혁’에 대해 심의·의결하고 18차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에는 검찰 인사서 특수·공안·기획 분야가 주요 보직을 독점하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검사장 등 기관장 임용 때 형사·공판부 경력자를 우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 공수처 다음달 출범 강조
추, 같은달 검찰 인사 예고

위원회는 검찰의 중심을 형사·공판부로 이동하기 위해 검사장과 지청장(차장검사가 있는 지청)에 전체 검찰 내 분야별 검사 비중을 반영해 형사·공판부 경력 검사를 5분의 3 이상 임용하라고 권고했다. 또 전국 검찰청의 형사·공판부장과 대검찰청 형사부·공판송무부 과장은 형사·공판부서 재직 기간의 3분의 2 이상 형사사건을 처리한 경력이 있어야 맡을 수 있도록 권고했다. 

위원회는 “검사가 기수와 관계없이 관리자 또는 전문가로서 각자의 역할을 하는 수평적인 구조로 재구성돼야 조직 내·외부 영향서 벗어나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권고안을 차기 검사 인사부터 즉시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 추미애 법무부장관

법무부는 위원회 권고에 대해 “검사 인사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적극 공감하고 지속해서 개선을 추진해왔다”며 “향후에도 권고안 등을 참고해 추가 개선 방안을 검토·추진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1월 인사 때와 마찬가지로 7월 인사 역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힘을 빼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검찰 내 특수통 검사들은 이번 인사에서도 법무부의 칼날을 피해가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찰 특수부는 문재인정부 들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부침이 심했다. 특수부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대형 경제사건 등을 수사한다. 경찰서 송치한 일반 형사사건이나 일부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부와 달리 자체적으로 범죄 사실을 인지해 수사한다. 이른바 인지수사 부서다.

문정부서 검찰 특수부는 적폐 청산의 칼이면서 축소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문정부 초대 검찰총장 문무일 총장은 취임 직후 특수부 인력을 줄이고 형사부 검사를 늘리는 자체 개혁에 나섰다. 

조직 엘리트서
개혁 대상으로

당시 대검은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강화, 지청 단위 특수전담 부서 폐지, 형사부 전담 엄부 ‘브랜드화’ 추진, 고검의 항고사건 직접수사 강화 등 형사사건 처리 충실화를 뼈대로 하는 형사부 강화 방안 시행에 들어갔다. 그 결과 전국 41개 지청 특수전담과 일부 지검 특수부가 폐지됐고, 대검 반부패부와 강력부를 통합하는 등 문무일 총장 체제서 특별수사 조직은 큰 변화를 맞았다. 

지난해 7월 윤석열 총장이 문정부 두 번째 검찰총장으로 취임하면서 특수통 검사들은 반짝 약진했다. 윤 총장 취임 이후 진행된 검찰 중간간부 인사서 특수통 검사들은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서울중앙지검 1∼3차장검사부터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주요 보직까지 ‘윤석열 사단’이 전진 배치됐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검찰과 청와대의 갈등이 시작됐다. 이 과정서 특수부는 문 전 총장 때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검찰 개혁이 언급될 때마다 특수부는 축소와 폐지의 대상으로 언급됐다. 
 

▲ 윤석열 검찰총장 ⓒ문병희 기자

윤 총장은 지난해 10월1일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하고 전국의 모든 검찰청에 설치된 특수부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검찰 개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가 나온 지 하루 만에 나온 개혁안이다. 그러면서 문 전 총장 체제서 7개 지검으로 줄었던 특수부는 윤 총장 체제서 3개로 또 다시 축소됐다.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조 전 장관은 윤 총장의 개혁 방안 발표 일주일 만에 검찰 개혁 추진 관련 대국민 발표를 진행했다. 법무부는 검찰의 특수부 폐지 건의를 반영해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3개 검찰청에만 ‘반부패수사’ 부서로 명칭을 변경해 최소한도로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서울·인천·수원·대전·대구·광주·부산지검에 남아있던 특수부는 현재 서울과 대구, 광주지검에만 남아있다.

수원·인천·부산·대전 4개 검찰청의 특수부는 형사부로 전환됐다.

50→7→3
특수부 잔혹사

검찰 조직서 특수부라는 명칭이 사라진 건 1973년 이후 46년 만이다. 특수부는 1973년 1월 대검에 특수부가 창설되면서 수사국 역할을 물려받았다. 이듬해 서울과 부산지검에도 특수부가 생겼다. 대검 특수부는 1981년 중앙수사부(중수부)로 확대 개편됐다. 검찰총장 하명사건 수사는 물론 범죄 정보와 형사 정책 관련 여론 수집도 맡았다. 


대검 중수부와 검찰청 특수부를 오간 특수통 검사들은 조직 내 엘리트로 통했다. 하지만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수사에 특수부 검사들이 자주 투입되는 만큼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특수부 검사들은 국민검사와 정치검사를 오가며 입방아에 올랐다. 

특수부 축소를 골자로 하는 문정부의 검찰 개혁 방향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지난해 10월 자유한국당(현 통합당) 김도읍 의원은 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 규모가 이전 정부에 비해 늘어났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김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매년 8월 기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는 2013년 16명, 2014년 23명, 2015년 28명, 2016년 23명, 2017년 25명, 2018년 43명, 2019년 35명을 기록했다. 

특히 박근혜정부 말기인 2016년 8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는 23명이었지만 문정부 출범 이후 2017년과 2018년에는 각각 25명, 43명으로 늘었다고 지적했다. 해당 시기는 문정부 출범 초 적폐 청산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던 때와 맞물린다. 
 

김 의원은 당시 “현 정부는 출범 직후 적폐 청산을 한다며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2배 가까이 키우더니 검찰이 조국 수사를 하자 갑자기 특수부를 없앤다고 한다”며 “검찰 개혁의 진정성을 누가 믿겠는가. 문정부의 검찰 개혁을 명분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문정부 들어 여러 차례에 걸쳐 조직이 축소된 특수부는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추 장관이 법무부에 입성하면서 또 다시 된서리를 맞았다. 조 전 장관 때는 특수부 부서 자체를 뒤흔드는 방식이었다면 추 장관은 인사를 통해 검찰총장의 손발을 자르는 식이다. 

1월 인사만큼 큰 규모?
검찰 장악력 높이려고?


추미애 법무부는 지난 1월8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과 박찬호 공공수사부장을 비롯한 윤 총장의 대검 참모진은 모두 교체됐다.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전보된 한동훈 부장은 조 전 장관의 가족 비리와 청와대 감찰무마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이었고, 제주지검장으로 전보된 박찬호 부장은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을 수사 중이었다.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감찰국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대검 공공수사부장 등 전통적으로 특수통 검사들이 독식해온 자리가 물갈이됐다. 검찰 조직 내 빅4로 불리는 요직 중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인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보된 이성윤 지검장 정도였다. 추 장관의 첫 검찰 인사로 특수통이 몰락했다는 말이 나왔다.

여기에 검찰의 직접수사를 축소하고 형사·공판부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검찰직제 개편안이 시행되면서 반부패수사부와 공공수사부는 또 다시 쪼그라들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는 4개서 2개로, 공공수사부는 3개서 2개로 줄었다. 검찰이 특별수사단 같은 임시 수사조직을 만들 경우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됐다. 

1월23일 단행된 검찰 중간간부 인사서도 법무부는 옛 특수부 등 특정 부서 중심의 기존 검찰 인사를 ‘조직 내 엘리트주의’로 규정하고 이를 탈피해 형사·공판 업무를 맡아온 검사들을 우대한다는 인사 원칙을 내세웠다. 형사·공판부 우대 원칙은 일반검사 인사서도 적용됐다.

법무부는 “일선 기관장이 추천한 우수 검사들의 인사 희망을 적극 반영하되 형사·공판부서 업무를 수행해온 검사를 주요 부서에 발탁하겠다”고 밝혔다. 

추 장관이 취임한 후 두 차례 단행된 검찰 인사, 직제개편 등을 통해 ‘윤석열 사단’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법무부서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을 받아들여 7월 인사를 단행할 경우 검찰 조직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일각에선 법무부가 윤 총장과 직접적인 힘겨루기가 아니라 간접적인 압박으로 검찰 조직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 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명숙 의혹
인사 전 포석?

추 장관의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언급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검은 한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사건서 검찰 수사팀이 증인에게 허위 증언을 종용했다는 진정을 인권감독관에게 배당했다. <뉴스타파>가 한 전 총리 사건 수사 과정의 의혹을 제기한 지 한 달 만이다. 추 장관은 사건이 배당된 날 언론 인터뷰서 “이번 사건을 진정 사건 정도로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 장관의 언급은 당시 한 전 총리 수사를 담당했던 수사팀이 특수통 검사들이었다는 점에서 ‘윤석열 힘빼기’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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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