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탐사기획③> ‘박근혜 유산’ 혈세 먹는 창조경제혁신센터 대해부 -경남·세종센터의 민낯

중기부가 키운 ‘먼지 덩어리 ’

[일요시사 탐사보도팀] 박근혜정부의 유산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현재 문재인정부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만큼 투명한 예산 집행과 공정한 운영이 담보돼야 하지만 혁신센터를 둘러싼 잡음은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여전하다. <일요시사> 탐사보도팀은 지난 6개월간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서 일어난 비리를 집중 취재했다.

‘톱니바퀴 사이의 먼지.’ 한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혁신센터) 직원이 말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인 혁신센터의 현 상황을 꼬집은 말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와 지자체의 느슨한 관리·감독에 혁신센터는 ‘먼지 덩어리’로 전락했다.

세금 쓰는데
감시 안 받아

혁신센터는 박근혜 청와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주도로 설립·운영됐다. 창조경제운영위원회와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의 지시로 운영된 혁신센터는 문재인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도 명확한 내부 규정이 없었다.

문정부는 출범 직후 혁신센터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 작업에 돌입했다. 2017년 7월 형식상 관리·감독 권한을 갖고 있던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를 폐지했다. 중기부는 창업진흥원(이하 창진원)에 혁신센터의 예산집행을 관리하고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맡겼다.

담당 주체가 바뀌었지만 혁신센터의 내부 사정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2018년 7월 중기부는 서울과 경남, 세종 혁신센터에 대한 종합감사를 진행했다. 감사 결과 3곳의 혁신센터는 총체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문정부 들어서도 완비하지 못한 규정은 솜방망이 조치로 이어졌다.


중기부 감사서 경남 혁신센터는 9건, 세종 혁신센터는 13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중기부는 경남 혁신센터에 통보(2건), 개선, 주의(3건), 시정(3건), 기관주의(3건) 등의 처분을 요구했다.

세종 혁신센터에는 통보(5건), 개선(2건), 주의(4건), 시정(4건), 경고(2건), 문책, 기관주의(3건), 기관경고(2건) 등의 조치를 이행하라고 지시했다. 총 35건의 처분요구 중 세종 혁신센터 센터장에 대한 문책 요구가 가장 엄중한 조치였다.

감사 때마다 문제 쏟아져
정작 조치는 가벼운 처분뿐

중기부가 혁신센터의 채용비리를 적발했을 때와 판박이다. 2018년 중기부 조직혁신 태스크포스(TF)는 산하 공공기관과 공직유관단체의 채용 전반(2013∼2017년)을 특별점검했다.

그 결과 31개 기관서 총 140건의 지적사항이 나왔고, 그중 57건이 혁신센터서 적발됐다. 당시 중기부는 대부분 통보·시정·주의 등 가벼운 처분만을 요구했다. 울산 혁신센터서 부서장이 받은 문책 요구가 그나마 가장 센 조치였다.

채용비리는 혁신센터가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 대부분이라는 ‘변명’이 통했다. 공직유관단체는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재정지원과 임원 선임 등의 승인을 받는 공공성이 있는 기관·단체로, 공직 윤리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혁신센터는 2017년 1월1일부터 공직유관단체로 분류됐다. 앞서 2016년 10월 박근혜정부는 17개 혁신센터 센터장을 모두 ‘공직자’로 분류했다. 공직자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다. 2018년 중기부 감사 때는 이미 혁신센터에 공공성이 부여돼있던 셈이다.


2017년부터
공직유관단체

▲외부강의 미신고= 공직유관단체 임직원들은 외부 강의를 하려면 사전에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사례금도 기관장 40만원, 직원 20만원으로 시간당 상한 규정이 있다. <일요시사>가 분석한 종합감사 처분요구서에 따르면 경남 혁신센터서 외부 강의 사전 신고 누락 5건, 출장신청 누락 3건, 사례금 초과 수령 1건 등이 적발됐다.

한 직원은 다른 목적으로 출장을 신청한 뒤 외부 강의를 하고 강사료를 받았다. 중기부는 출장 신청을 누락한 직원 3명에게 주의 조치를 하라고 지시했다.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직원 교육과 제도 개선도 요구했다.

인사혁신처서 공개한 ‘공무원 징계 사례’ 자료에 경남 혁신센터와 비슷한 사안이 소개됐다. 공무원 A는 사전 결재나 신고 없이 근무시간과 연가, 휴일 등을 이용해 외부 강의와 자문을 하고 사례금을 받았다. 심지어 공무수행을 위한 출장명령을 받고 출장지가 아닌 곳에서 강의했다.

감사원 감사서 중징계 의결을 요구받은 A는 결국 강등(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공용차량 사적사용= 공무원 B는 허위출장으로 여비를 부당 수령하고 공용차량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공직기강 점검서 적발돼 중징계와 징계부가금 1배 부과 의결을 요구받았다.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와 청렴의 의무를 위반한 B는 최종적으로 감봉 3개월, 징계부가금 1배의 징계를 받았다.

혁신센터도 공용차량을 운용한다. 경남 혁신센터는 ‘법인차량 운영지침’을 통해 차량을 관리한다. 이 지침에 따르면 관리자에게 미리 신청하고 승인을 받아야만 차량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2017년 관리자의 사전 승인 없이 7회에 걸쳐 차량을 이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운행거리, 동승자 등 차량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중기부의 처분 요구는 ‘기관주의’에 그쳤다.

공무원 중징계
센터장 경징계

세종 혁신센터는 센터장이 공용차량을 자신의 출퇴근에 사용했다. 2015년 6월 취임한 최길성 센터장은 2015년 8월11일부터 2017년 12월18일까지 총 41회에 걸쳐 공용차량을 개인적으로 이용했다. 자신의 개인차량은 조치원에 있는 혁신센터에 두고 공용차량으로 서울 송파구 자택을 오갔다.

다음날 회의 참석 등의 이유를 들어 혁신센터서 자택으로 귀가, 다음날 회의에 참석한 후 당일이나 그 이후에 복귀하는 식이다. 이 과정서 차량 배차나 출장등록 절차를 밟지 않았다.

세종 혁신센터서 2016년 11월 개정한 임직원 행동강령 14조에는 ‘임직원은 차량 등 센터 소유의 재산을 정당한 사유 없이 사적인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 센터장이 3년에 걸쳐 사용한 공용차량 운행거리는 6000㎞에 이른다. 유류비 54만1372원, 하이패스 이용료 36만6740원 등 총 90만8110원의 부당 지출도 발생했다. 최 센터장은 중기부 감사서 “정상적인 출장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증빙자료는 제출하지 못했다.

중기부는 최 센터장에 대한 엄중 문책을 요구했지만 최 센터장은 2017년 연임에 성공, 여전히 기관장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

공용차 출퇴근 ·출장비 더 받아도
연임 성공해 여전히 센터장 업무

▲국외출장 관리= 인사혁신처는 2015년 10월 공무원 국외 출장의 철저한 사전·사후 관리를 내용으로 ‘공무 국외여행 관련 복무관리 강화 지침’을 신설, 각 부처에 전달했다. 국민의 세금이 사용되는 공무원 국외 출장을 확실히 관리하자는 취지다. 외유성 출장으로 적발될 경우 해당 공무원을 징계하고 소속기관에도 조치를 취하는 방식이다.

공무 국외출장을 두고 경남과 세종 혁신센터서 총체적 관리 부실이 드러났다. 경남 혁신센터 임직원들은 2015년부터 2018년 1월까지 총 22건의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이 과정서 ①출장비는 초과 지급됐고 ②비자발급 비용은 비싸게 지급했으며 ③출장보고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통보·시정요구·기관주의 처분으로 끝났다.

세종 혁신센터의 국외출장 관련 문제는 시의회서도 비판이 나왔다. 윤형권 세종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7월 시의회 본회의서 “(최 센터장이)글로벌펀드 유치사업 명목으로 2017년 11~12월 룩셈부르크와 핀란드로 출장 갈 때 퇴사한 직원, 민간인과 함께 갔다”며 “사업 담당자였기 때문에 멘토로 동행했다는데, 그를 위해 예산을 쓴 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항공료 명목으로 각각 200만원만 부담했다. 최 센터장은 나머지 비용을 행사용역비서 지원하도록 했다. 또 최 센터장은 해당 출장서 기존 여비산정기준이 아닌 장관급에 해당하는 공무원 여비 규정을 적용해 숙박비와 식비를 계산했다. 출장비 237만7000원이 추가로 지급됐다.

감사 전까지
규정 없었다

경남 혁신센터는 2018년 7월까지 여비 규칙·회의수당 등 지급지침·임직원 행동강령·법인카드 관리 및 운영지침 등의 규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 여비지급 기준을 임의로 높게 정해 초과 지급하고, 상위법에 근거해 규정을 개정해야 하지만 기존 내용으로 계속 운영했다. 법정공휴일, 주말, 근무지 외 지역, 비정상 시간대(23시 이후) 법인카드 사용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도 없었다. 중기부의 처분은 ‘개선 요구’였다. 경남과 세종 혁신센터 관계자는 “중기부 감사 처분 요구를 모두 이행했다”고 전했다.


<chm@ilyosisa.co.kr>
<jsjang@ilyosisa.co.kr>
<kjs0814@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