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탐사기획③> ‘박근혜 유산’ 혈세 먹는 창조경제혁신센터 대해부 -경남·세종센터의 민낯

중기부가 키운 ‘먼지 덩어리 ’

[일요시사 탐사보도팀] 박근혜정부의 유산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현재 문재인정부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만큼 투명한 예산 집행과 공정한 운영이 담보돼야 하지만 혁신센터를 둘러싼 잡음은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여전하다. <일요시사> 탐사보도팀은 지난 6개월간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서 일어난 비리를 집중 취재했다.

‘톱니바퀴 사이의 먼지.’ 한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혁신센터) 직원이 말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인 혁신센터의 현 상황을 꼬집은 말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와 지자체의 느슨한 관리·감독에 혁신센터는 ‘먼지 덩어리’로 전락했다.

세금 쓰는데
감시 안 받아

혁신센터는 박근혜 청와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주도로 설립·운영됐다. 창조경제운영위원회와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의 지시로 운영된 혁신센터는 문재인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도 명확한 내부 규정이 없었다.

문정부는 출범 직후 혁신센터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 작업에 돌입했다. 2017년 7월 형식상 관리·감독 권한을 갖고 있던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를 폐지했다. 중기부는 창업진흥원(이하 창진원)에 혁신센터의 예산집행을 관리하고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맡겼다.

담당 주체가 바뀌었지만 혁신센터의 내부 사정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2018년 7월 중기부는 서울과 경남, 세종 혁신센터에 대한 종합감사를 진행했다. 감사 결과 3곳의 혁신센터는 총체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문정부 들어서도 완비하지 못한 규정은 솜방망이 조치로 이어졌다.


중기부 감사서 경남 혁신센터는 9건, 세종 혁신센터는 13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중기부는 경남 혁신센터에 통보(2건), 개선, 주의(3건), 시정(3건), 기관주의(3건) 등의 처분을 요구했다.

세종 혁신센터에는 통보(5건), 개선(2건), 주의(4건), 시정(4건), 경고(2건), 문책, 기관주의(3건), 기관경고(2건) 등의 조치를 이행하라고 지시했다. 총 35건의 처분요구 중 세종 혁신센터 센터장에 대한 문책 요구가 가장 엄중한 조치였다.

감사 때마다 문제 쏟아져
정작 조치는 가벼운 처분뿐

중기부가 혁신센터의 채용비리를 적발했을 때와 판박이다. 2018년 중기부 조직혁신 태스크포스(TF)는 산하 공공기관과 공직유관단체의 채용 전반(2013∼2017년)을 특별점검했다.

그 결과 31개 기관서 총 140건의 지적사항이 나왔고, 그중 57건이 혁신센터서 적발됐다. 당시 중기부는 대부분 통보·시정·주의 등 가벼운 처분만을 요구했다. 울산 혁신센터서 부서장이 받은 문책 요구가 그나마 가장 센 조치였다.

채용비리는 혁신센터가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 대부분이라는 ‘변명’이 통했다. 공직유관단체는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재정지원과 임원 선임 등의 승인을 받는 공공성이 있는 기관·단체로, 공직 윤리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혁신센터는 2017년 1월1일부터 공직유관단체로 분류됐다. 앞서 2016년 10월 박근혜정부는 17개 혁신센터 센터장을 모두 ‘공직자’로 분류했다. 공직자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다. 2018년 중기부 감사 때는 이미 혁신센터에 공공성이 부여돼있던 셈이다.


2017년부터
공직유관단체

▲외부강의 미신고= 공직유관단체 임직원들은 외부 강의를 하려면 사전에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사례금도 기관장 40만원, 직원 20만원으로 시간당 상한 규정이 있다. <일요시사>가 분석한 종합감사 처분요구서에 따르면 경남 혁신센터서 외부 강의 사전 신고 누락 5건, 출장신청 누락 3건, 사례금 초과 수령 1건 등이 적발됐다.

한 직원은 다른 목적으로 출장을 신청한 뒤 외부 강의를 하고 강사료를 받았다. 중기부는 출장 신청을 누락한 직원 3명에게 주의 조치를 하라고 지시했다.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직원 교육과 제도 개선도 요구했다.

인사혁신처서 공개한 ‘공무원 징계 사례’ 자료에 경남 혁신센터와 비슷한 사안이 소개됐다. 공무원 A는 사전 결재나 신고 없이 근무시간과 연가, 휴일 등을 이용해 외부 강의와 자문을 하고 사례금을 받았다. 심지어 공무수행을 위한 출장명령을 받고 출장지가 아닌 곳에서 강의했다.

감사원 감사서 중징계 의결을 요구받은 A는 결국 강등(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공용차량 사적사용= 공무원 B는 허위출장으로 여비를 부당 수령하고 공용차량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공직기강 점검서 적발돼 중징계와 징계부가금 1배 부과 의결을 요구받았다.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와 청렴의 의무를 위반한 B는 최종적으로 감봉 3개월, 징계부가금 1배의 징계를 받았다.

혁신센터도 공용차량을 운용한다. 경남 혁신센터는 ‘법인차량 운영지침’을 통해 차량을 관리한다. 이 지침에 따르면 관리자에게 미리 신청하고 승인을 받아야만 차량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2017년 관리자의 사전 승인 없이 7회에 걸쳐 차량을 이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운행거리, 동승자 등 차량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중기부의 처분 요구는 ‘기관주의’에 그쳤다.

공무원 중징계
센터장 경징계

세종 혁신센터는 센터장이 공용차량을 자신의 출퇴근에 사용했다. 2015년 6월 취임한 최길성 센터장은 2015년 8월11일부터 2017년 12월18일까지 총 41회에 걸쳐 공용차량을 개인적으로 이용했다. 자신의 개인차량은 조치원에 있는 혁신센터에 두고 공용차량으로 서울 송파구 자택을 오갔다.

다음날 회의 참석 등의 이유를 들어 혁신센터서 자택으로 귀가, 다음날 회의에 참석한 후 당일이나 그 이후에 복귀하는 식이다. 이 과정서 차량 배차나 출장등록 절차를 밟지 않았다.

세종 혁신센터서 2016년 11월 개정한 임직원 행동강령 14조에는 ‘임직원은 차량 등 센터 소유의 재산을 정당한 사유 없이 사적인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 센터장이 3년에 걸쳐 사용한 공용차량 운행거리는 6000㎞에 이른다. 유류비 54만1372원, 하이패스 이용료 36만6740원 등 총 90만8110원의 부당 지출도 발생했다. 최 센터장은 중기부 감사서 “정상적인 출장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증빙자료는 제출하지 못했다.

중기부는 최 센터장에 대한 엄중 문책을 요구했지만 최 센터장은 2017년 연임에 성공, 여전히 기관장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

공용차 출퇴근 ·출장비 더 받아도
연임 성공해 여전히 센터장 업무

▲국외출장 관리= 인사혁신처는 2015년 10월 공무원 국외 출장의 철저한 사전·사후 관리를 내용으로 ‘공무 국외여행 관련 복무관리 강화 지침’을 신설, 각 부처에 전달했다. 국민의 세금이 사용되는 공무원 국외 출장을 확실히 관리하자는 취지다. 외유성 출장으로 적발될 경우 해당 공무원을 징계하고 소속기관에도 조치를 취하는 방식이다.

공무 국외출장을 두고 경남과 세종 혁신센터서 총체적 관리 부실이 드러났다. 경남 혁신센터 임직원들은 2015년부터 2018년 1월까지 총 22건의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이 과정서 ①출장비는 초과 지급됐고 ②비자발급 비용은 비싸게 지급했으며 ③출장보고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통보·시정요구·기관주의 처분으로 끝났다.

세종 혁신센터의 국외출장 관련 문제는 시의회서도 비판이 나왔다. 윤형권 세종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7월 시의회 본회의서 “(최 센터장이)글로벌펀드 유치사업 명목으로 2017년 11~12월 룩셈부르크와 핀란드로 출장 갈 때 퇴사한 직원, 민간인과 함께 갔다”며 “사업 담당자였기 때문에 멘토로 동행했다는데, 그를 위해 예산을 쓴 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항공료 명목으로 각각 200만원만 부담했다. 최 센터장은 나머지 비용을 행사용역비서 지원하도록 했다. 또 최 센터장은 해당 출장서 기존 여비산정기준이 아닌 장관급에 해당하는 공무원 여비 규정을 적용해 숙박비와 식비를 계산했다. 출장비 237만7000원이 추가로 지급됐다.

감사 전까지
규정 없었다

경남 혁신센터는 2018년 7월까지 여비 규칙·회의수당 등 지급지침·임직원 행동강령·법인카드 관리 및 운영지침 등의 규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 여비지급 기준을 임의로 높게 정해 초과 지급하고, 상위법에 근거해 규정을 개정해야 하지만 기존 내용으로 계속 운영했다. 법정공휴일, 주말, 근무지 외 지역, 비정상 시간대(23시 이후) 법인카드 사용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도 없었다. 중기부의 처분은 ‘개선 요구’였다. 경남과 세종 혁신센터 관계자는 “중기부 감사 처분 요구를 모두 이행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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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