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최순실 게이트> ⑥그녀한테 물린 기업들

“안주면 죽인다는데 어쩝니까”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대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낸 기업을 대상으로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는 까닭이다. 외압에 따른 상납이 대가를 바란 술수쯤으로 비춰질까 염려하는 기색도 역력하다.

재벌닷컴과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기업은 모두 53개사로 집계됐다. 절반에 가까운 23개사는 10억원 이상의 출연금을 냈다. 최순실씨가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기부한 돈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800억원에 육박한다. 대부분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를 통해 모금됐다.

상납액 수백억
불똥 떨어지나

기부금 액수는 현대자동차가 68억8000만원으로 가장 많고 SK하이닉스 68억원, 삼성전자 60억원, 삼성생명 55억원, 삼성화재 54억원, 포스코 49억원, LG화학 49억원 등의 순으로 알려졌다. 그룹 전체로 보면 삼성그룹이 두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해 액수가 가장 많다. 이밖에 현대차그룹 82억원, SK그룹 111억원, LG그룹 78억원, 포스코 49억원, GS그룹 42억원, 한화그룹 26억원 등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여윳돈을 선뜻 내놨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낸 기업 4곳 중 1곳은 적자기업이었다. 지난해 적자로 법인세를 내지 않은 기업은 53곳 가운데 12개사로 전체의 22.6%를 차지한다.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해 별도기준 477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2년 연속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음에도 미르·K스포츠재단에 모두 10억원을 출연했다.


지난해 4500억원대의 적자를 낸 두산중공업도 미르·K스포츠재단에 4억원을 냈으며 대주주인 두산 역시 7억원의 출연금을 건넸다. 수백억대의 적자를 기록한 CJ E&M과 GS건설도 각각 8억원과 7억8000만원을 내놨고 2년째 적자를 낸 아시아나항공과 GS글로벌도 각각 3억원과 2억5000만원을 출연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내거나 최씨 개인비리 의혹에 연루된 대기업들은 검찰 수사망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에 이어 이틀 후에는 롯데그룹 정책본부 소진세 사장과 이석환 상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다음날 새벽까지 조사했다.

지난달 31일에는 박영춘 SK그룹 전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렀고 나머지 기업들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참고인 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와 SK를 시작으로 최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는 대기업 관계자를 우선적으로 소환할 예정”이라며 “재단에 출연한 나머지 대기업 관계자들도 차례로 불러서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53곳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 출연
은행 거래자료 검찰 제출…계좌 추적 본격화

당초 대기업들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내놓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안종범 전 수석 등 청와대가 지시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재단이 기업들의 제안에 따라 만들어졌고 모금과정도 자발적이었다는 기존의 주장을 번복한 것이다. 더욱이 기부금과 관련해 이사회를 열어 결의한 기업은 KT와 포스코 두 곳 뿐이었다.

정상적인 기부가 아닌 청와대 압력에 의한 불법적인 뇌물공여의 성격이었다면 법적 처벌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재계로 불똥이 튀지 말란 보장이 없다. 지금껏 드러난 사례들이 이 같은 견해에 신빙성을 더한다.
 


삼성전자는 최씨의 딸인 정유라씨를 지원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9∼10월 경 최씨 모녀가 소유한 스포츠 컨설팅 회사 ‘코레스포츠’와 10개월짜리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명마의 구입·관리, 말 이동을 위한 특수차량 대여, 현지 승마 대회 참가 지원 등을 컨설팅하는 35억원 수준의 계약이었다. 10억원은 그랑프리 대회 우승마 구입에 쓰였는데 독일서 이 말을 타고 훈련한 사람은 정씨 한 명뿐이다.

승마협회의 지난해 예산이 40억원인 점을 감안할 때 정유라 지원규모는 승마협회 한 해 예산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이다. 코레스포츠는 최씨 모녀가 100% 지분을 소유한 회사로 지난해 11월 비덱(Widec)스포츠로 이름을 바꿨다.

거미줄처럼…
엮인 연결고리

삼성전자는 정씨를 위해 승마장을 구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문구업체인 모나미의 해외 계열사가 지난 5월 230만유로를 들여 독일 엠스데텐의 ‘루돌프 자일링거’ 승마장을 샀는데 삼성전자가 모나미를 앞세워 구입했다는 것이다. 모나미가 삼성과 99억원대 프린터·사무기기 관리용역 계약을 맺었다는 점이 이런 의혹의 근거다.

포스코는 최씨가 실소유주인 스포츠컨설팅 업체 ‘더블루K’와 배드민턴팀 창단을 논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황은연 사장은 당시 더블루K 대표였던 조모씨를 본인 집무실서 만나 팀 창단 문제를 상의했다. 이후 포스코 측 실무자와 몇 차례 접촉한 조씨는 최씨에게 “포스코가 배드민턴팀 창단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문자메시지로 보고했다.

당시 더블루K는 설립된 지 불과 한 달 남짓된 소규모 회사였다. 이런 소기업 대표를 황 사장이 직접 만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황 사장이 조씨 배후에 최씨가 있음을 사전에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포스코는 지난해 광고대행 계열사였던 ‘포레카’를 매각하는 과정서 차은택씨 측근들에게 회사를 넘기려 했다는 논란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포레카의 전 대표인 김모씨가 매각 과정서 입찰에 참가한 A사 대표 B씨를 회유·협박했다는 의혹이다. 

KT는 차씨가 운영하는 광고 회사와 연루됐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포레카 인수가 무산된 후의 일이다. 올해 2∼9월 중 집행된 TV 광고 물량 상당수를 차씨와 그 측근들에게 몰아줬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이 기간 중 차씨가 대표인 아프리카픽쳐스는 6건의 방송광고 제작에 참여했고 차씨 측근인 김홍탁씨가 대표인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는 5편의 방송광고를 대행했다. KT 측은 “지적된 광고들 모두 정상적인 수주 과정을 거쳤다”며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K스포츠재단이 롯데그룹에 재단 출연금 이외의 돈을 요구하자 70억원을 따로 낸 것으로 밝혀졌다. 일각에선 궁지에 몰린 롯데가 정치권의 힘을 이용해 사건을 축소·무마하고자 했다는 정경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다만 롯데그룹은 K스포츠재단에 후원했던 70억원을 열흘 만에 되돌려 받았다. 한화그룹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3남 김동선씨가 승마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만큼 자연스럽게 최씨와 연결돼 있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은행 계좌추적
좁혀오는 수사


최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재계를 넘어 금융권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 검찰은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 IBK기업은행, SC제일은행, 한국씨티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 8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은 논란의 대상이다.

KB국민은행은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최씨 소유 건물 등을 담보로 여러 차례 담보 대출을 했다는 특혜대출 의혹을 받고 있다. 일단 최씨가 언니 최순득씨의 남편 소유 빌딩에 입점해있는 KB국민은행서 약 5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최씨 소유 서울 신사동 미승빌딩에 3억1200만원의 근저당을 설정한 곳은 KB국민은행 봉은사로지점이었다. 최씨는 지금은 매각한 경기도 하남 건물을 담보로 1억8000만원, 2013년에는 강원도 평창 땅을 담보로 1억원을 해당 KB국민은행 봉은사로지점서 빌렸다.

곳곳서 드러난 상납 흔적
권력 돈줄 의혹에 초긴장

KEB하나은행은 최씨의 딸인 정유라씨에게 편법 외화대출을 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12월 KEB하나은행서 딸 정유라씨와 공동명의인 강원도 평창의 10개 필지를 담보로 약 25만유로(3억2000만원)를 빌렸는데 계좌로 송금받지 않고 지급보증서를 발급받아 독일 현지서 외화로 받았다.

이를 두고 계좌이체나 송금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지급보증서을 발급받은 것은 특혜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씨가 연루된 비리 혐의에 재계와 금융권이 일조했다는 정황은 그만큼 최씨의 영향력이 막강했음을 짐작케 한다. 최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엄청난 후폭풍이 뒤따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구조건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이 대표적인 사례다.

재계에선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7월 추진됐던 이동통신사와 케이블TV의 1조원대 빅딜인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 불발에 최씨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최씨의 지시로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이 SK그룹에 80억원을 요구했지만 무산됐고 이후 인수합병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은 정치권과 학계서 1년 념게 찬반논쟁을 벌였던 사안이다. 업계는 찬반논쟁들을 종합해 볼 때 양사의 인수합병이 조건부 인수 쪽으로 가닥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양사의 M&A를 불허했다. 재계는 SK텔레콤의 M&A 불발이 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난감한 재계
발목 잡히나

한편 최씨와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는 기업들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확산될 경우 기업 활동에 차질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자칫 반 기업정서가 확산될 것을 염려하는 인상이 짙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피해를 입은 기업들이 제대로 항변할 수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진상규명 없이 의혹만 확산될 경우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최순실이 고마운 기업들

‘최순실 게이트’에 엮여 고생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 덕을 보는 곳도 눈에 띈다. 이번 사태에 앞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기업들이다. 롯데그룹 비리, 한미약품 공매도,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등은 최순실게이트가 집어삼킨 대표적인 사안이다.

4개월에 걸친 검찰의 롯데그룹 총수비리 수사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불구속 기소(횡령·배임 등)로 마무리됐다. 신 회장은 지난달 25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그룹 쇄신안을 발표했지만 계열사 순환출자 고리는 여전히 복잡하다. 

한미약품 주가 조작 의혹 수사 중인 검찰은 최근 증권사·운용사 13곳을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대상 기업들은 한미약품이 독일 제약업체 베링거인겔하임과 계약한 85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건이 해지됐다는 공시를 내기 전에 공매도를 한 곳들이다. 이들이 공시 전에 미리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게 확인되면 개미투자자들의 집단소송도 예상된다.

하지만 검찰은 공매도 혐의 입증에 애를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된 혐의가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자료를 분석하는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사안 역시 최순실게이트 탓에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발 비켜갔다. 정부는 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한 대우조선해양을 일단 살려두기로 방침을 세웠다. 지난달 31일 조선업 구조조정 내용 등을 담은 ‘조선,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빅3’(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와 조선 3사는 공공 선박 조기 발주로 수주 절벽을 해결하고, 2018년까지 직영인력 2만명을 감축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알맹이 빠진 구조조정이라는 비난과 함께 차기정부로 짐을 떠넘긴다는 뒷말이 계속되고 있다. <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