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 현대판 고려장 보고서

2014.12.22 13:41:03 호수 0호

부모봉양 옛말…연락 끊고 남남처럼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현대판 고려장’의 실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노부모를 챙기지 않는 사람들이 늘면서 적지 않은 노인들이 거리로 나앉고 있다. 이는 고령화와 경제·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갖가지 사례를 통해 그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봤다.

 


한국사회는 저출산 인구고령화로 점차 늙은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문제는 노인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데 비해 정작 그들이 설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는 고사하고 자식들에게 쫓겨나지만 않으면 다행인 형국이다. 근래 노부모를 요양병원에 두고 찾지 않는 등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불릴만한 갖은 사연이 알려지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각박해졌다는 방증이다.

자식들에게
떠밀려 입원
 
지난달 5일 MBC <리얼스토리 눈>은 부모를 병원에 방치한 채 3년 간 나몰라라하는 불편한 세태를 다룬 바 있다. 당시 홍모(82) 할머니는 별다른 입원 사유 없이 3년 전부터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홍씨 앞으로 체납된 병원비와 간병비만 해도 1억원이 넘었다.
 
3년 전인 2012년, 홍씨는 혈당수치가 높아져 당뇨로 한 달여간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그러던 중 홍씨는 퇴원하는 날 우연찮게 넘어져 고관절 뼈가 부러졌다. 당시 홍씨의 자식들은 “환자가 병원에서 부상을 당했다면, 병원 측에서 보상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병원 측에 보상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에 병원 측은 적절한 보상을 취했고, 홍씨는 치료를 받고 정상적으로 퇴원했다. 하지만 홍씨는 퇴원한 지 불과 6시간 만에 복통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날, 보호자는 홍씨와 그의 짐만 두고 사라졌다. 결국 법적 분쟁까지 이어져 법원은 병원과실이 없다며 홍씨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자식들은 홍씨에게 병원 생활을 지속할 것을 종용했고, 홍씨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병원에 남았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홍씨가 이상행동을 보인 것이다.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등 홍씨의 상태는 매우 불안해보였다.
 
알고 보니 홍씨는 중기 이상의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었고, 가족들은 치매 노인을 돌볼 것이 걱정돼 할머니를 병원에 남겨뒀던 것이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막내아들이 홍씨를 퇴원시켜 집으로 데려가면서 사건은 일단락 됐다. 다른 병원도 사정은 비슷했다. 또 다른 병원에서는 찾는 이 없이 쓸쓸히 남겨진 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간절하게 병원 밖으로 나가기를 희망했으나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늙고 병든 노인들 사실상 냉방에 방치
먹고살 만해도…비통한 사건들 잇달아
 
앞서 지난 7월에도 외아들의 외면 속에서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한 할머니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이 집중 조명된 바 있다. 당시 김모(85) 할머니는 1년째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입원 중이었다. 무녀 독남 외아들은 통 소식이 없었다. 김씨의 외아들의 한 조카는 “현대판 고려장이다. 옛날 고려장이 차라리 낫다”며 울분을 토했다. 담당 의사는 김씨에 대해 “가족들이 자주 찾아오는 환자에 비해 상태가 안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요양병원에 홀로 남겨진 채 외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아들이) 자주 오길 바라지만 일하는 데 내가 그러면 안 되죠. 오면 좋긴 좋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의 친척들은 김씨의 외아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며 경찰서를 다녀오기도 했다. 가족들의 주장에 따르면 김씨는 거동이 가능한 정도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외아들이 어머니를 방치했다. 
 
 
반면 외아들과 그의 며느리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저 “알아서 하겠다”는 매몰찬 대답만 했던 것이다. 심지어 외아들은 “낫는 병이라면 모셨을 것”이라며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면 자신과 아내뿐 아니라 어머니가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매달 어머니 병원비로 버는 돈의 1/3 가량인 80여만원을 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요양병원에 모시는 게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살아 돌아와도
신병인수 거부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이 같은 세태에 대해 “처음에는 보호자가 모시고 오지만 그 이후에는 연락처나 거처가 바뀌어도 병원에 연락하지도 않는다”며 “(보호자가 병원에) 안 나타나고 병원비는 물론 안 낸다”고 말했다. 노인요양시설에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풍경이라고 알려졌다.
 

참여연대가 내놓은 ‘노인요양병원 및 노인장기요양제도의 문제와 대안’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요양 입원자 중 절반가량인 47.2%는 치료가 아닌 요양목적으로 입원했다. 하지만 노인요양병원 시설 수준은 일상적인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 노인요양시설에 비해서도 더 열악한 곳이 많았다. 실제 노인요양시설은 촉탁의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 외에 요양보호사가 입소가 2.5명당 1명꼴로 배치되지만 노인요양병원은 요양보호사를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
 
민간 노인요양병원의 급증도 문제로 지적된다. 2008년 전국에 690개였던 노인요양병원은 2013년에는 1232개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노인요양병원을 수익성 좋은 사업 아이템으로 생각하는 사업주가 늘어나면서 특별한 진료가 필요 없는 노인들도 마구 수용한 결과다. 전국에 많은 노인요양병원에 노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입원해 있지만, 열악한 시설로 화재 사고 등도 끊이지 않아 안전에도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요양병원만의 문제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지난달 20일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사망판정을 받은 60대 남성이 영안실 냉동고에 들어가기 직전 되살아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바 있다. 앞서 60대 남성 A씨는 18일 부산 사하구 괴정동 자택 방 안에서 쓰러졌다. 이웃의 신고로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당시 119구조대는 이송 과정에서 A씨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그러나 응급실에 도착한 A씨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당직의사는 결국 사망판정을 내렸다.
 
출산율 저하 노인인구 급증 
국가적 난제…대책이 없다!
 
이후 검안의와 검사관 등이 A씨의 상태를 살펴보던 중 A씨의 목울대가 움직인 뒤 호흡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놀란 경찰은 즉각 응급실로 A씨를 급히 옮겨 재차 치료를 받아 기적적으로 맥박과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비록 의식은 없었지만 몸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A씨의 가족들은 “부양의무가 없다”며 신병인수를 거부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 돌아온 아버지의 신병인수를 자식들이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려장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여론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오죽하면 가족들이 그랬겠냐”며 각박한 현실을 개탄했다.
 
노인인구 증가로 인해 실버문화가 확산되면서 각종 실버산업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지만 진정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는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범한 노인들에게 실버타운 입주는 ‘하늘의 별 따기’다. 서울의 한 실버타운에는 골프장, 노래방, 공연장 등 공동으로 이용하는 문화시설, 물리치료 등 의료를 위한 기본적인 시설을 완벽히 갖추고 있지만 9억여원에 달하는 보증금과 매달 수백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입주가 가능한 높은 진입벽을 형성하고 있다. 사회적 고려장이라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노인빈곤 증가

실버문화 양극화
 
지난 7일 한국경제연구원은 ‘특정 소득취약계층의 소득구조 실태와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서 “소득수준이 열악한 노인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복지정책도 수혜대상의 특성에 맞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경연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토대로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과 최저생계비 120% 미만의 차상위계층에 속하는 소득취약 노인가구는 2006년 72만가구에서 2013년 148만가구로 늘었다고 분석했다. 7년 만에 빈곤 노인가구가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소득취약계층 내에서 노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율도 2006년 34%에서 2013년 56%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홀로 지내는 노인이 많은 1인 가구가 소득취약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6년 31.5%에서 2013년 42.8%로 증가했다. 반면 모자가구의 비중은 4.2%에서 2.4%로 작아졌다.
 
 
평균 가구원이 1.4명인 소득취약 노인가구의 소득은 7년새 36만8000원에서 64만9000원으로 76% 늘어났지만 1인 가구의 최저생계비(57만2000원)보다 약간 많은 수준에 불과했다. 이들 소득취약 노인가구는 정부나 비영리단체 지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정부, 비영리단체, 다른 가구 등으로부터 이전되는 소득이 38만4000원으로 59%에 달한 반면 근로소득은 6만8000원, 사업소득 6만9000원, 재산소득 1만2000원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노인가구주의 연령이 평균 78.4세에 이르고 주요 소득원은 정부 지원인 점을 고려해 일자리 지원이나 서비스제공보다는 현물지원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껏 고려장은 ‘부모를 버린 자녀’라는 표현으로 줄곧 등장해, 비정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병들어 노동능력을 상실해 가계에 보탬에 되지 않는 늙은 노인을 보살피지 않고 산으로 데려가 굶어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는 몇몇 설화들만 존재한다. ‘기로전설’이라고 불리는 설화는 70세가 된 늙은 아버지를 풍습대로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함께 갔던 손자가 나중에 아버지가 늙으면 지고 온다며 지게를 다시 가져오려고 하자, 아들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 지극정성으로 봉양했다. 이후 풍습이 없어졌다는 설화다. 이외에도 비슷한 설화가 지역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고려장이라는 말은 병든 노인을 보살피지 않은 사건에서 이따금씩 등장하곤 했다. 고려장이라는 표현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건 일제강점기 전인 지난 1908년 11월 <대한매일신보>를 통해서였다. 이어 34년 6월 <조선중앙일보>는 ‘병든 장인을 고려장한 사위, 강경서 범인 엄중 탐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씁쓸한 현실을 보고했다. 36년 <동아일보>는 ‘가난한 부인이 유아를 고려장시켰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고려장을 생매장에 비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장 유래
확인되지 않아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고려장은 종종 언급됐다. 62년 10월에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영화를 바탕으로 연극을 기획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었는데, 이 영화 속에는 고려장 풍습이 소개되어 있었다. 즉 고려장이라는 풍습은 일본에도 고대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고려장이라고 하면 삼국시대 ‘고려’를 떠올린다. 고려의 풍습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자료나 고고학적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풍습과 관련된 설화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나타난다. 
 
일각에서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문화로 고려장이라는 말을 쓴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고려장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어서 일제의 잔재라는 해석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그저 추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죽어서도 외로운 사람들
5시간마다 1명 ‘고독사’
 
KBS가 지난해부터 1년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명백한 고독사는 1717건이었다. 고독사로 의심되는 것까지 모두 합하면 1만1002건에 달한다고 한다. 5시간마다 한 명씩 세상 누구도 모르게 죽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건 연령대다. 고독사라 하면 7, 80대 노인들에게 해당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사 결과는 보면 젊은층의 비율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독사 중 50대가 가장 많은 29%, 40대는 17%에 달했다. 30대 이하도 6.2%나 기록했다. 가장 많을 것 같은 70대는 9.1%, 60대는 17.7%를 차지했고 기타가 21%였다. 가장 많을 것 같은 70대는 9.1%, 60대는 17.7%를 차지했고 기타가 21%였다.
 
과거 고독사는 독거노인에게 집중됐지만 최근에는 저소득층이나 고소득층, 젊은층이나 노년층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가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1인 가구 추정치는 453만9000가구로 전체의 25.3%를 차지했다.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나홀로 가족인 셈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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