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식탁을 그리는 동양화가 유진희

2014.12.08 10:54:52 호수 0호

가지가 동동∼ 거북이가 둥둥∼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무중력 상태에 있는 야채와 과일들. 동양화를 전공한 유진희 작가는 '식탁의 꿈'이라는 주제로 일곱 번째 개인전을 준비했다. 그가 그린 식탁에는 식재료가 있고, 주방용품이 있다. 때로는 동물들이 부유하고, 소파와 같은 일상용품이 떠다닌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경험을 담은 작품이지만 관객에게는 생활 속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이 진한 여운으로 스민다.



유진희 작가는 식탁을 그린다. 식탁 위에 있을법한 재료와 그렇지 않은 무생물(가끔은 생물)을 함께 올려놓는다. 솜씨 좋은 요리사인 유 작가는 이들을 한데 버무린다. 가족 혹은 작가 자신이 조미료처럼 그림 속 한 요소로 불려나온다. 유 작가의 식탁은 화가의 일상과 그 주변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신선한 정물로 가득하다.

예술가의 원재료는 자기 자신

유 작가가 그리는 대상은 작가의 기억 속에서 소환되거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형성시켜준 지층으로부터 캐낸 원재료다. 식탁 위로 펼쳐진 사물들은 현실세계와 달리 우와 열이 없고, 경과 중이 없다. 모든 사물은 똑같이 비중의 의미를 부여 받고 세심하게 그려진다. 그림의 모티브가 된 것들은 유 작가에게 하나같이 의미 있고 귀한 존재들이다.

유 작가의 정물은 평면 위에 동일한 강도와 밀도로 그려진다. 마치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화면 여기저기 배치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와 같이 각각의 대상은 여행을 떠난 모양이다. 꿈을 안고 둥실 떠오른 채소들은 일반 관객에게도 보편적인 정서를 환기시킨다.

작가는 식탁 위에 여러 사물을 그리고 일상의 소탈한 순간을 한지에 표현했다. 생활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의 편린과 이후의 소회를 푸른 바탕에 풀어냈다. '식탁의 꿈'은 보통 사람의 감정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꿈'은 유 작가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모티브다.


작가의 그림은 현실에서 못다 이룬 이상을 좇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단순히 이상을 표면화한 작업은 아니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꿈 자체를 그린다기보다는 생활인으로서의 소회를 그리고, 일상인으로서의 소박한 이상이며 희망을 꿈결처럼 그린다"고 했다.

'식탁의 꿈' 주제 일곱번째 개인전
패턴형태로 그려진 섬세한 문양
귀얄 이용해 쓱쓱 그은 붓 자국

고씨는 유 작가의 식탁을 생활인으로서의 여성주체와 연관시켰다. 여성주체로 본 식탁은 개인의 정체성이 처음 생성되고 형성돼나가는 장이다. 식탁은 따뜻하고 온화하며 호의적이다. 이에 반해 남성주체를 상징하는 '바둑판'은 이해 타산적이고 계산적이며, 전략적이다.

고씨는 식탁을 "생명을 품고 있는 자궁의 또 다른 형태일지도 모른다"고 풀이했다. 상을 차려내는 일은 태아를 양육하고, 사랑으로 보듬는 일과 맞닿아있다. 때문에 작가의 그림은 자궁에 담긴 생명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또 서로 다른 차원의 세계가 하나로 모이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일상에 기반을 둔 일종의 가상현실인 셈인데 작가는 개체에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작업을 완성하고 있다.

무, 오이, 고추, 피망, 아스파라거스와 같은 야채들과 기린, 코끼리, 거북이, 낙타, 곰과 같은 동물들이 보랏빛 공간에 어울린다. 각종 주방용품과 세발자전거, 자동차, 로봇 등 장난감, 소파와 같은 일상용품이 무중력 상태로 등장한다. 이 모든 소재들은 작가가 삶을 살면서 경험해 온 친숙한 모티브다. 유 작가의 그림은 동물원인가 하면 식물원이기도 하고, 거실을 보여주다가 불현듯 물속 정경으로 시선을 옮아가기도 한다.

고씨는 "한지의 스며드는 성질 탓에 모티브가 배경화면 안쪽으로 침잠하기도 하고, 밑층에 그려진 모티브를 붓질로 덮어서 가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지에 패턴 형태로 그려진 섬세한 문양은 귀얄을 이용해 쓱쓱 그은 붓 자국과 오묘하게 조합된다. 이는 과거 분청이나 청화백자의 고급스런 색감 또는 질감을 연상시킨다.

친숙한 소재를 일상에서 찾다

유 작가는 흐릿한 화면을 구성한 다음 호분으로 붓터치를 점층적으로 쌓아나가는 방식을 이용해 서정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과거 그의 작업노트에는 "어떤 이의 아내, 어머니, 딸, 선생, 친구로서의 다양한 관계 속에 정작 '나'라는 존재의 의미는 퇴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고 쓰여 있다. 어쩌면 개인의 삶은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들이 하나둘 덧씌워지면서 빛을 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림을 그리며 따스한 마음을 느껴보고 싶고, 그림을 보는 사람들도 따스한 마음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하는 유 작가. 우리의 일상은 한 어머니의 따스한 그림이 있어 더욱 풍요롭다.

 

<angeli@ilyosisa.co.kr>

 


[유진희 작가는?]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개인전 모로갤러리(2002) 영아트갤러리(2011) 가나인사아트센타(2013) 갤러리그림손(2014) 등 7회
▲그룹전 독일 WB갤러리(2002) 예술의전당(2003) 서울시립미술관(2009) 정동경향갤러리(2010) 두산아트스퀘어(2011) 서울여성플라자(2013) 평화화랑(2014) 등 다수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상(2003) 월간 <미술과 비평> 대한민국선정작가전 선정작가상 (2009·2010) 서울시 여성가족재단(2013)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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