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강남 판자촌 ‘성뒤마을’ 가보니…

2014.11.24 10:31:49 호수 0호

“어려운 사람들, 살게만 해주세요”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제2의 구룡마을로 불리는 ‘성뒤마을’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우면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남부순환로를 따라가면 보이는 마을이지만, 이곳에 판자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성뒤마을은 구룡마을과 닮은 점이 많다. 그만큼 곳곳에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잠재적 화약고로 지적되는 성뒤마을의 오늘을 짚어봤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마지막 판자촌 ‘성뒤마을’을 찾았다. 마을 맞은편에는 방배 래미안 아파트가 있다.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판자촌과 고급아파트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구룡마을 맞은편 타워팰리스가 오버랩 될 정도로 빈부의 격차가 느껴진다. 마을 입구를 따라 언덕을 오르면 판넬로 지어진 집들이 여럿 보인다. 대부분의 가정은 연탄을 사용하고 있다. 재가 된 연탄 덩어리가 성뒤마을의 온도를 말해준다.   

서초에 이런 데가?
 
인기척은 거의 느낄 수 없다. 개 짖는 소리, 고물상 고철포크레인 작업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릴 뿐. 마을 내 구멍가게도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 담배 판매를 알리는 스티커만 덩그러니 붙여져 있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 마을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여 지내고 있는 걸까.
 
주민자치회관을 찾아 주민 대표의 말을 들어봤다. 주민자치회장에 따르면 성뒤마을 주민 대부분은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마을 내에는 독거노인도 있다고 한다. 기초생활수급혜택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투기를 목적으로 거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성뒤마을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안전은 어떤 편일까. 이곳은 육안으로 봐도 화재·수해에 무방비인 상태다. 각 가정마다 소화기가 비치돼 있지만 최근 구룡마을 화재 사건을 비추어봤을 때, 실효성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횡단보도 사이로 고급아파트와 공존
안전 사각지대…화재·수해에 무방비
 
이에 대해 주민자치회장은 “한 달에 한 번 소방훈련을 실시한다”며 화재를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는 화재 시 소방차가 올라올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주민들의 차 키를 복사해 주민자치회관에 보관하자는 안건이 올라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성뒤마을 주민들은 안전에 매우 민감하다. 매달 주민회의를 진행하는데, 우선적인 안건은 단연 화재, 그 다음이 위생상태 등이라는 것이다.
 
마을 곳곳에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지만 주민들은 현재 거주지에 큰 불만이 없다. 그저 “이대로가 좋다”는 것. 무허가 판자촌이라는 사실을 주민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제기. 고물상 소음 문제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주민자치회장은 “입장 바꿔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고물상이 있을만한 곳은 여기밖에 없고, 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 조금만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서울시와 서초구는 성뒤마을을 개발을 놓고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녹지보존’, 서초구는 ‘공영개발’이다. 그런데 주민들은 개발에 대한 이해가 낮은 편이다. ‘투기’를 목적으로 거주하는 주민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한 뒤 재기하고자 하는 주민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 주민은 “정부가 우리 마을 주민들에게 무슨 혜택을 줄까.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조그마한 무언가를 제공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그저 그저 좋은 정책을 보여주길 바랄 뿐. 모든 일이 순리대로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보존’ VS 서초구 ‘개발’ 
 
성뒤마을은 방배동 565-2 일대 17만9044㎡ 규모의 토지를 일컫는다. 무허가로 지어진 건물과 고물상 등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현재 156가구, 28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전체 207동의 건물 가운데 허가를 받은 건물은 20동이고, 나머지는 무허가 건물이다. 겉모습은 허름해 보이지만 서울지하철 2·4호선 사당역과 서울시 연수원 사이에 있어 교통의 요지라 할 수 있다.
 
 
서초구는 성뒤마을 공영개발을 추진한 바 있다. 난개발 우려와 부동산 잠재가치 때문이다. 서초구는 2008년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이곳을 ‘글로벌 타운’으로 개발하기로 했지만 2011년 LH가 사업구조를 손보는 과정에서 사업이 취소됐다. 2012년에는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성뒤마을 도시개발계획 용역을 추진했지만, 2013년 8월 SH공사 이사회에서 용역을 중단시켰다.

대부분 연탄 사용
 
서초구는 체계적인 개발을 위해 지난해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신청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서울시 사전심의에서 부결됐다. 재상정한 2014년도 지구단위계획 수립안도 지난 7일 부결됐다. 서울시는 자연녹지지역에 지구단위계획을 세운 선례가 없다는 입장이다. 자연녹지지역은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초구는 여전히 공영개발을 검토하고 있지만 개발 여부는 미지수다.
 

성뒤마을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원활한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공영개발할 경우 토지 수용에만 약 5000억원의 보상금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뒤마을 일대는 모 교회의 사유지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초글로벌타운은?
 
서초구가 추진했던 ‘서초 글로벌 타운’ 계획은 성뒤마을 지역에 외국인 전용 저층 고급아파트 700여 가구와 외국인 학교, 소형 컨벤션센터, 병원 등을 짓는 것이었다.
 
계획에 따르면 이 단지는 평균 3층짜리 저층 아파트가 건립되고, 타운하우스 등 다양한 설계를 활용해 국내 대표적인 명품 외국인 주거촌으로 만들어 외국 대사관이나 외국 기업 근무자들을 입주시킬 예정이었다. 서초구는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서래마을도 인근에 위치한 점을 활용해 일대를 글로벌 문화타운으로 특화해 발전시킬 계획이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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