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이 부른 참담한 사건이 잇달아 벌어졌다. 게임을 말리는 어머니를 살해한 패륜아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한 게임중독자는 설 연휴 닷새 동안 게임에 빠져있다가 끝내 사망했다. 설 연휴 끝에 발생한 흉흉한 사건으로 게임중독자의 실상이 관심과 우려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게임중독도 마약이나 알콜중독처럼 뇌의 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명백한 병이라고 말한다. 게임중독의 위험한 세계를 살펴봤다.
20대 중독자 “게임 그만하라” 나무라는 친어머니 살해
30대 남 설 연휴 닷새 동안 온라인 게임하다 북망산길
경기도 양주에 사는 오모(22)씨는 특정한 직업 없이 온라인 게임에 빠져 사는 무직자다. 이런 오씨에게 유일한 방해꾼은 함께 살고 있던 어머니(53)였다. 나이 꽉 찬 아들이 게임에만 빠져 사는 것이 마땅할 리 없었던 어머니는 평소 “인터넷 게임 좀 그만하라”며 아들을 나무랐다.
이에 불만을 품은 오씨는 자신을 방해하는 어머니를 살해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지난 7일 오후 1시쯤 자신의 집에서 낮잠을 자던 어머니 곁에 다가갔다.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하고 얼굴을 가린 오씨는 어머니를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숨지게 했다.
범행 후 태연히 TV시청
오씨의 패륜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범행 직후 어머니의 시신이 있는 안방 문을 잠근 뒤 거실에서 4시간 동안 태연히 TV시청을 보다 어머니의 신용카드를 들고 의정부시내 PC방에서 또 다시 게임을 한 것이다. 경찰의 눈을 따돌리기 위해 모텔과 PC방을 전전하던 그는 결국 지난 16일 경찰에 검거됐고 추궁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아들에게 죽음을 당한 오씨의 어머니는 지난 14일 설을 맞아 찾아 온 오씨의 형에 의해 발견돼 무려 1주일 간 방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임중독이 부른 참극은 이번 달 또 발생했다. 설 연휴 기간을 포함해 5일 동안 PC방에서 온라인게임을 하던 남성이 졸도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진 것.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8시10분쯤 용산구의 모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손모(32)씨가 화장실로 가다 갑자기 쓰러진 것을 종업원 강모(25)씨가 발견해 119구급대에 신고했다. 손씨는 서울 종로구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곧바로 응급조치를 받았으나 2시간 40여 분 뒤 숨을 거뒀다.
강씨는 경찰에서 “손씨가 화장실로 가려고 문 쪽으로 걷다가 갑자기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졌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손씨는 지난 12일부터 숨지기 전까지 하루 15시간 PC를 사용할 수 있는 1만원권 정액권을 끊고 닷새 연속 생활하면서 온라인게임에 빠져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충북 음성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손씨는 평소 온라인 게임에 중독되어 수시로 PC방을 찾았다.
그러다 석 달 전부터는 벌어둔 돈으로 이 PC방에서 살다시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손씨는 한번 PC방에 오면 10~15일 간 게임에만 열중했다.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했다. PC방에서 파는 라면과 햄버거 등이 식사의 전부였다.
경찰은 손씨가 설 연휴를 포함해 최근 닷새 동안 PC방에서 식사를 자주 거른 채 온라인게임만 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이처럼 게임중독으로 인한 살인사건과 사망사고가 연일 벌어지면서 게임중독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청소년들의 학업을 방해하는 정도의 피해를 끼치는 줄로만 알았던 게임중독이 예상보다 심각한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것에 놀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게임중독도 마약중독이나 알콜중독에 버금가는 ‘병’이라고 말한다. 장시간 게임에만 빠지게 되면 뇌 기능이 약해지면서 각종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판단력과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이 약해져 난폭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기 쉽다. 어머니를 살해한 오씨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자신도 모르게 판단력이 약해지고 과격해져 참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증상은 마약중독이나 알콜중독 환자에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내 연구진이 게임 중독자의 뇌와 마약 중독자의 뇌 구조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내기도 했다.
게임에 빠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사람들의 뇌 영상을 찍어 본 결과 일반인의 뇌에서는 볼 수 없는 노란색으로 활성화된 부분이 발견됐다. 이는 마약중독자의 뇌와 거의 비슷한 모양이란 걸 알 수 있다. 즉 게임중독도 단순한 반복 행동이 아니라 마약중독과 마찬가지로 뇌 질환이나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인터넷 게임은 또 우울증이나 비만증을 불러 게임중독에 더욱 깊이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영국 리즈(Leeds)대학 심리학과 연구팀들의 보고에 의하면 온라인 게임에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울증이 잘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에는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서는 온라인게임에 빠진 사람들은 평균 35세의 비만하고 호전적이며 내성적인 남성이었고 우울증이 많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10대 때부터 게임에 빠져들었고 신체활동량이 크게 낮아진 상태로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울증·비만 부르는 중독
그러면 게임중독을 치료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게임중독치료는 비만치료와 마찬가지로 자기통제력을 회복하는데 중점을 둔다. 시작부터 게임을 끊는 것보다는 하루에 게임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서서히 그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다. 알콜중독처럼 불안감이나 초조함이 나타나는 금단증세도 나타나지만 힘든 고비를 넘기면 서서히 정상인으로 회복이 가능하다.
행동치료와 함께 약물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도박이나 폭식장애 치료에 이용되는 충동장애조절 약물을 처방하고 상담을 통해 본인 문제를 자각하게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에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이다. 게임 중독도 엄연한 질병인 만큼 혼자 힘으로 이겨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반드시 조기에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